100일
人生不願智(인생불원지) 인생살이 지혜는 필요치 않아
智慧自愁殺(지혜자수쇄) 지혜란 원래 근심만 안기는 걸
百慮散冲和(백려산충화) 오만 걱정 다 만들어 내 평정심 깨뜨리고
多才費機械(자재비기계) 별의별 재주 부려 기심(機心)을 꾸며내지
古來智囊人(고래지낭인) 예로부터 지혜롭다 소문난 이들
處世苦迫隘(처세고박애) 세상살이 몹시 힘들었다네
- 장유(張維, 1509 ~ 1638), <어리석음을 사며[매치애(賣癡獃)]>
작년 파견 가 있으며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시작한 글쓰기가 어느덧 처음 마음먹었던 100일 글쓰기에 이르렀습니다. 그 옛날 우리네 어머님들이 달 밝은 밤 맑은 물 한 그릇 떠다 놓고 가족의 안녕과 무탈함을 기원한 정성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글쓰기를 지속하고 있다는 사실에 감사할 따름입니다.
파견 때는 닫힌 일상보다 바쁘지만 열려 있는 학교의 일상들이 그리웠습니다. 그런데 막상 복귀하여 다시 겪게 되니 무료(無聊, 지루하고 심심함)하지만 여유 있던 파견 생활로 다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건 왜인지요? 교직 생활 이십 년을 바라보고 있고 그간 수많은 풍파를 겪어 왔지만 아직도 제가 서야 할 곳을 잘 알고 있지 못하니 저의 미련함과 어리석음을 탓할 뿐입니다.
어제는 아이의 영재교육 입학식이 있어 경남 의령에 소재한 미래교육원을 다녀왔습니다. 아이가 10시 입학식을 시작으로 오리엔테이션, 오후 수업 일정을 소화하면 마치는 시간이 오후 4시였습니다. 아이를 담임교사에게 맡긴 뒤 인근 전통시장에서 간단히 요기를 한 후 조용한 카페를 찾아 들렀습니다.
카페가 자리 잡은 곳이 마을 안 주민들의 빛나는 삶이 영그는 곳이었기에 감히 차를 끌고 들어가는 두 손이 부끄러워 인근 강 둔치에 세우고는 한동안 강물을 바라보다 이런 ‘시골 학교에서 근무를 하면 어떨까’하는 생각을 잠시 해보았습니다.
마을을 지키는 고목(古木)을 살리고자 나무를 사이에 두고 길을 낸 점, 우리 경제를 일으킨 세 명의 기업 총수,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킨 홍의장군이 이 곳 출신인 점, 그리고 학생 교육을 담당하는 수련원이 여러 곳인 점이 이 지역의 생명 사랑의 정신을 잘 말해주고 있습니다.
오늘 여러분과 함께 읽을 시는 조선 중기 문장가이자 자연과 일상의 깨달음에 관한 글을 많이 남긴 계곡(雞谷) 장유의 <어리석음을 팔며[매치애(賣癡獃)]>입니다.
일찍이 노자는 “성스러운 자, 지혜로운 이 되기를 과감히 끊어버려라[절성기지(絶聖機智)]”를 주장하였습니다. 유가(儒家)에서 말하는 성인(聖人), 불가(佛家)에서 말하는 부처 되기를 소망하지 말라는 상대적인 견해를 내비치고 있습니다.
사람의 욕심이 담긴 인위적인 말과 행동, 그리고 바람, 기교가 담긴 솜씨와 재주, 화려한 외모와 언변, 남을 구슬리는 말은 자연스러움이 아닌 무언가 내가 의도하고자 하는 바를 대상에 투영하는 행위입니다.
삼라만상에게 동의와 허락을 구하지 않은 채 일상의 편의를 위해 기계를 다루는 마음[기심(機心)], 우주 만물을 나의 의도대로 다루고자 하는 태도는 우리 인간이 보기에는 ‘지혜롭다’ 말들 하지만 우주 대자연과 우주 지성의 입장에서 보면 그것은 하찮은 ‘잔재주’에 불과합니다.
이러하기에 순수한 우주적 바람과 동기가 녹아 들어가 있지 않은 인간의 지헤와 재주는 우주 대자연은 들어주지도 않을뿐더러 알량한 그것을 행사한 그 사람을 곤란과 곤경에 빠뜨려 왔음을 역사가 말해 주고 있습니다.
순수한 의도와 바람,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은 채 자신의 소명과 사명을 묵묵히 성실하게 한 사람의 바람은 대자연이 그것을 이룰 수 있게 했음을 우리는 또한 잘 알고 있습니다.
우주 만물이 인자하게 우리를 대하지 않을[천지불인(天地不仁)] 때까지 방관하고 있을 것이 아니라 조건 없는 무한한 사랑을 베풀어 준 지구 공동체의 안녕을 위해 우리가 이들처럼 댓가를 바라지 않고 묵묵히 할 수 있는 일에는 어떤 것이 있을지 고민해 보는 하루하루가 되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