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은은 Mar 17. 2024

생태적 삶을 위한 한시 읽기

99일


 去歲乖雨暘(거세괴우양작년 이상 기후로

 農家未插秧(농가미삽앙모 한 포기 심지 못했네

 萬民落饑坎(만민락기감삼라만상이 굶주려

 相視顔色涼(상시안색량바라보면 서로 슬플 뿐

 今年春又旱(금년춘우한올봄도 또 가뭄

 拱手愁愆陽(공수수건양두 손 모아 간절히 기도드렸네

 青泥井水涸(청니정수학진흙은 검푸른 빛 우물은 말라

 赤血朝暾光(적혈조돈광핏빛 띤 아침 해 더 붉어 보이네

 최해(崔瀣, 1287-1340), <삼월 이십삼 일빗님이 내리시네[三月二十三日雨]>     


  겨울이 봄에게 자리는 양보하는가 싶더니 어느새 슬쩍 여름이 봄의 자리를 넘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어제 오후 간만에 집 근처 경화역 산보를 갔습니다.  목련이 마치 땅 위의 연꽃인가 하는 착각을 불러일으키며 개화하고 초승달도 제법 살이 올라 보는 이의 마음을 흐뭇하게 합니다. 이들이 존재하기에 삭막한 도시풍경에 생기를 더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시선을 돌리니 외딴 길로 저 혼자 먼저 가는 손녀딸을 부르는 할머니의 미소와 웃음, 마음의 품이 넉넉해 보입니다. 도로변 키다리 소나무는 길가는 까마귀의 쉼터가 되어줍니다.     


 학기 초 바쁘다는 핑계로 글쓰기에 소홀하였습니다. 봄은 왔으나 내면은 여전히 번다한가 봅니다. 제 몸과 마음을 돌아보라고 입안 혓바늘이 신호를 주는 요즘입니다.     


 오늘 여러분과 함께 살펴볼 시는 고려 후기 시인이자 말년에 농사를 지으며 여생을 보낸 최해의 <가뭄 끝 빗님이 내리시네>라는 시입니다.     


 저는 이 시를 읽으며 떠오른 첫 번째 생각은 ‘기후 온난화’입니다. 얼마 전 마트에 가서 아이에게 먹일 과일을 사는 데 방울토마토의 가격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불과 몇 개월 사이 토마토의 가격이 두 배나 뛰어 있었습니다. 가장 큰 원인은 일조량이 부족해 과일의 생산량이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더워야 할 때 비 내리고 추워야 할 때 따뜻하니 사람도 동식물도 삼라만상도 적응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우리네 삶의 방식을 바꾸지 않는다면 먹거리 문제, 대기오염, 전염병 유행, 쓰레기, 핵 시설 처리 문제, 내가 사는 곳에 혐오 시설을 들이지 않겠다는 집단 이기주의, 각 나라 간의 식량과 에너지 쟁탈을 위한 전쟁, 서로가 서로를 삼키는 등 최악의 상황은 한 걸음 한 걸음 우리 눈앞에 다가옴을 점점 더 자주 보게 될 것입니다.     

 우리와 후세대들의 마음이 검푸른 빛, 핏빛을 띄며 말라가기 전에 어른인 우리가 아이들과 함께 취해야 할 사랑의 행동이 무엇인가를 지구 생명공동체가 더 망가지기 전에 고민하고 실천해 나가야겠습니다.     


 지구 공동체의 안녕을 늘 가슴 속에 품고 사랑과 건강, 친절, 하나 됨, 상호 연결됨을 늘 의식하며 서로를 위하는 나눔과 베풂이라는 선행의 실천이 일상화될 때 ‘가뭄에 단비 내리는’ 일상의 기적과 기쁨을 삼라만상이 다 함께 누릴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생태적 삶을 위한 한시 읽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