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情有萬變(인정유만변) 인정이란 수시로 변하고
世故日多端(세고일다단) 세상일 날로 번다하다네
交契亦胡越(교계역호월) 친하고 멀어짐 반복되니
難爲一樣看(난위일양간) 한결같음이 귀하다네
- 허목(許穆, 1595~1682), <관계에 관하여[신수작자경(愼酬酢自警)]>
벌써 오월입니다. 오늘은 근로자의 날이기도 합니다. 늘 서로가 서로에게 빚지고 있음을 압니다. 이 땅의 모든 수고하는 생명들에 감사드립니다. 간밤에 비가 내려서인지 제법 날이 쌀쌀합니다. 오월 오일은 어린이날이자 여름에 들어서게 되는 입하(立夏)입니다. 오월 여드렛날은 어버이날, 오월 보름은 부처님 오신 날, 오월 열여드렛날은 광주민주화운동의 날, 이십 일은 부부의 날, 오월의 마지막 날은 바다의 날...
문득 돌아보니 우리는 매월 ‘날’들의 홍수 속에 살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날’들을 만들어 기념하는 건 그만큼 세상살이가 밋밋하고 힘겹다는 반증이기도 하겠지요. ‘날’의 수만큼 관계의 의미도 감사하는 마음의 횟수도 많이지고 그 깊이도 깊어졌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봅니다.
미수(眉叟) 허목은 조선 중기 문신이자 유학자, 역사가, 교육자 겸 정치인이며, 화가, 시인, 서예가, 사상가로 다재다능한 역량을 지닌 융합형 인재엿습니다. 인조의 노여움을 사 55세까지 과거시험을 보지 못하게 되자 시골에 은거하며 독서와 마음공부를 하며 지내다 효종의 총애로 오십 육세에 늦깎이로 정계에 입문하게 됩니다. 여든에 정승에 오르고 서인(西人)의 정치적 공격을 받아 86세에 낙향하기까지 삼십 여년간을 많은 우여곡절과 정치적 부침을 겪게 됩니다.
요즘으로 치면 정년을 하여 제2의 삶을 편안히 꾸려나갈 시기에 그는 거꾸로 정치에 입문하여 복잡다단한 영욕(榮辱, 영예와 욕됨)을 겪었습니다. 교육자로서 시인이자 화가, 사상가, 서예가로서 노후의 삼십여 년의 삶을 저술과 후학 양성에 매진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위 시는 미수가 88세의 일기로 돌아가시기까지의 관계에 대한 철학이 농축된 시로 한 마디의 시어로 줄인다면 ‘한결같음[일양(一樣)]’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나에게 그리고 나 아닌 타자에게 나를 대하듯 ‘한결같은 정성’과 ‘바라봄’으로 모호하고 복잡다단하며 불확실한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우리를, 품이 넓은 느티나무와 같은 ‘따뜻한 성실함’으로 서로에게 위안이 되고 둥지가 되어주기를 바래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