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5일
扶笻登眺渺茫間(부공등조묘망간) 지팡이 짚고 올라 아득히 먼 곳 바라보니
萬頃滄波萬點山(만경창파만점산) 만 이랑 푸른 물결 수많은 산
口腹於吾眞一祟(구복어오진일수) 먹고 사는 일은 내겐 골칫거리
不將身世老江干(부장신세노강간) 산수에서 늙어가지 못하는 이내 신세
- 박계강(朴繼姜, 생몰년 미상 중종~선조 연간 활동한 시인)
오늘이 삼월 보름입니다. 어제는 지구의 날을 기념하여 저녁 8시부터 10분간 소등 행사를 가졌습니다. 오늘은 지구의 열기를 식히고자 하늘에서는 비바람이 몰아칩니다.
어제 동학년 선생님과 밀양을 다녀왔습니다. 월연정(月淵亭)과 월영대(月影臺)에서 밀양강에 비친 달빛을 내려다보며 나와 우주 삼라만상을 비추는 두 개의 거울[쌍경당(雙鏡堂)]을 구상하지 않았을까 추측해 봅니다.
적당히 흐린 날과 차고술금(借古述今: 옛것을 빌어 오늘을 새롭게 펼치다)의 가치를 몸소 실천하고 있는 산방 주인장과의 예기치 않은 만남은 평일에 애써 찾아온 길손을 위해 조물주가 미리 자리를 마련한 듯 느껴졌습니다.
산방에서 주인장이 따라주는 차와 다담(茶談), 풍류(風流)를 즐기기에 나할 나위 없는 소리, 주인의 어진 품성을 닮아 낯선 이를 경계하지 않고 따스히 맞아주는 영특한 리트리버, 지네, 닭, 산의 능선을 바라보고자 안배한 통창 등을 통해 옛 선현들의 자연 친화적 삶을 엿볼 수 있어 좋았습니다.
금시당(今是堂: 바로 오늘이 좋은 곳)과 삼백육십 살의 고령을 자랑하는 은행나무, 밀양강, 보름달, 위양지(位良池)는 나무, 강, 달, 못, 돌, 흙내음, 바람, 사람, 풀, 새가 어우러진 삼라만상의 보고(寶庫)이자 무릉도원(武陵桃源)이었습니다.
위 박계강의 시처럼 먹고 사는 일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자 골칫거리이긴 하지만 우리가 구복(口腹: 입과 배)만을 채우기 위해 지구별에 온 것은 아닐 것입니다. 흙과 나무, 산과 새를, 강과 바다를, 구름과 달을, 별과 우주를 우리가 왜 그리 애달아하고 그리워하는지 그리고 편안히 여기는지를 지나가는 봄의 끝자락에서 다시 한번 되짚어 보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