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4일
我於物無心(아어물무심) 나는 무심히 만물을 보살피니
萬化自紛敷(만화자분부) 만물은 제각기 살아가는 거라네
榮萎與脆韌(영위여취인) 꽃핌과 시듦 부드러움과 강함
物性各自殊(물성각자수) 이렇듯 만물의 성질은 고유하다네
我本一視之(아본일시지) 나는 본래 만물을 하나로 여겨
疇疾疇呴濡(주질주구투) 두루 베풀기도 두루 미워하기도 한다네
- 장유(張維, 1587-1638, <조물주가 답하다[조물답(造物答)]>
신학기가 시작된 지도 한 달 하고 보름 정도가 지났습니다. 중국 발 황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우리 아이들은 시험 준비에 여념이 없는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저는 173명의 중학교 1학년 아이들을 맡고 있는데 한 아이 한 아이의 내면의 결이 모두 달라 지도에 애를 먹곤 합니다. 심한 우울증을 앓아 자살까지도 생각하고 있는 아이, 경계선 지능에 정서 행동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아이, 성적으로 예민한 아이, 수없이 같은 말을 해보지만 돌아서면 같은 행동을 반복하는 아이 등 지도해도 지도해도 당장에는 티가 잘 나지 않는 아이들이 대부분입니다.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공허한 구호보다 학생 1인당 다수의 교사(상담, 특수, 담임, 인성부 소속 교사, 관리자, 보건 교사 등)와 지역의 사회복지사, 상담 및 특수 교육 지원센터 소속 직원들이 달라붙어 몸과 마음이 아픈 아이를 신속하게 지원할 수 있는 제도적, 인력적 기동성이 뒷받침되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오늘 함께 살펴볼 글은 조선 중기 문장가인 계곡(谿谷) 장유(張維)의 <조물답(造物答)>입니다.
만물이 타고난 본성대로 제각기 살아가듯 심신이 건강한 아이, 마음이 아픈 아이, 지능이 남들보다 부족하거나 넘치는 아이, 예민하거나 둔감한 아이, 자기주장이 강하거나 고집이 센 아이, 내향적이고 말수가 적어 벗을 사귀는 데 어려움을 겪는 아이, 부모의 사랑이 부족하여 벗의 관심을 받고자 하는 아이, 과잉 행동이나 과소 행동을 하는 아이, 이성에 예민하거나 둔감한 아이, 삶의 목표가 뚜렷하거나 그렇지 못한 아이, 불우한 가정 환경을 배경으로 가지고 있거나 부모의 지지와 사랑을 듬뿍 받는 아이들을 가리지 않고 우리 어른들이 천수천안(千手千眼, 천 개의 눈과 손)을 지닌 조물주의 마음으로 이들을 일관되게 지지하고 보살피는 훈풍이 되어주어야겠다는 바람을 가져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