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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은 Apr 10. 2024

생태적 삶을 위한 한시 읽기

103일


 百一無人接緖言(백일무인접서언말 나눌 이 아무도 없어

 想攀瓊樹洗煩魂(상반경수세번혼고결한 그대 찾아 어지러운 마음 씻고자

 雨晴街上春泥滑(우청가상춘니활봄비 개인 진흙탕 길을

 踏作千跟始到門(노작천근시도문간신히 걸어 그대 문에 이르렀네

 이규보(李奎報 1168~1241), <비 온 뒤 마음의 스승인 벗을 찾아[우후방우인(雨後訪友人)]>     


  바람에 흩날리는 벚꽃잎이 마치 수많은 나비가 군무를 펼치든 장관을 연출합니다. 우리네 인생도 벚꽃잎처럼 한순간 피었다가 제 갈 길로 돌아가는 것 같습니다.     


 인생이라는 여정에서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고 어디로 향하고 있는 것일까요?     


 위로만 향하던 시선

 우연히 아래로 떨구니 

 흰 꽃잎에 연한 분홍빛 줄을 덧입힌 꽃잔디

 진분홍빛 꽃잔디,

 붉음, 다홍, 자주, 연보라, 흰빛 영산홍, 

 눈여겨보지 않으면 

 잘 뵈지 않는 

 연푸른 잎 하얀 마음을 지녔으되

 꽃명과 실상이 어울리지 않는 큰 개불알풀이

 도서관 초입 길 길손의 무심한 마음 

 반갑게 맞이해 주네

 - 자작시     


 벚꽃잎이 분홍에서 초록으로 자연스레 잎갈이하듯 우리네 마음의 때도 때가 되면 쉬이 덜어내 아름다운 새 마음으로 갈아타고 성숙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여러분과 함께 감상할 시는 이규보의 <우후방우인(雨後訪友人)>입니다. 모처럼 맞은 휴일이라 이십 년을 알고 지낸 벗과 전화 통화를 길게 하였습니다. 주로 지인이 저의 얘기를 들어주는 역할을 자처하기에 참 고마운 벗이자 인생길의 스승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저는 이제 나이가 반백살이 되었는데도 불구하고 사춘기 아이마냥 인생의 갈림길에 서서 어디로 발을 디뎌야 할지 모르는 철부지입니다. 마음속 깊은 곳의 목소리는 좌고우면(左顧右眄, 이쪽저쪽 곁눈질하며 재다)할 까닭이 전혀 없이 정해진 길을 따라 쭈욱 나아가라고 속삭이는데 세속의 이익에 눈과 귀가 멀어 자꾸 곁눈질하게 됩니다.      


 ‘이 길로 가면 좀 더 낫지 않을까’, ‘저 길로 가게 되면 힘들지 않을까’ 하고 편한 길을 자꾸 찾곤 합니다. 욕심과 조바심이 내면의 목소리를 잠재웁니다. ‘보다 더 큰 나’를 따라가는 길은 매미가 허물을 벗듯, 나비가 고치를 뚫고 나오듯 익숙한 습관을 과감히 내던지고 기도하듯 ‘큰마음’을 내어야 하는 일인 것 같습니다.      


 우리가 지구별에 온 소명을 잊지 않고 영혼이 일깨우는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천리 진흙탕 길도 마다하지 않는 날 선 시대 의식과 만물에 대한 깊은 사랑이 요구됩니다.      


 뚜벅뚜벅 걷다 어렵사리 ‘저의 길’에 이르고는 먼지처럼 조용히 사라지고 싶은 바람을 가져보는 오늘입니다.     

 목이 쉬도록 한 시간여를 못난 벗을 위해 기도하듯 벗의 앞길을 빌어준 지인에게 지면을 빌어 깊은 감사와 축복의 마음을 전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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