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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은 Aug 17. 2024

사랑(仁愛)

4) 말을 잃고서


♣ 나를 돌아보는 물음                    

1. 여러분이 생각하는 죽음의 의미는 무엇인가요?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에 대해 2~3줄 적어보세요.

2. 사람과 인공지능이 죽음의 의미에 대해 받아들이는 측면(정서, 이성, 태도 등)에 있어서 공통점이나 차이점을 자유롭게 적어보세요.  






 오늘도 평온한 하루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한낮의 더위로 인한 짧은 산책이 아쉬워 비교적 날이 선선한 저녁 아랫동네를 한바퀴 돌고 왔습니다. 주말인데도 불구하고 동네 어귀에는 인적이 드물었습니다. 고개를 들어 보니 미망(未望:보름 전)인 보름달을 뱉어내는 구름 여신이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냈습니다. 맡은 편 교회 첨탑에는 흰 빛깔의 십자가가 함께 비추니 우리나라는 동서양의 기복신앙이(祈福信仰)이 ‘조화를 참 잘 이루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은 부모를 잃은 큰 슬픔[천붕지통(天崩之痛)]에 비할 바는 못되지만 요즘 반려동물은 신분 고하,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는 평등안(平等眼)과 충심(衷心), 순수함으로 인해 사람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저는 아이가 태어나고 2년, 잠시 분가하고 1년을 제외하면 처가와 합가(合家)하여 산 지 십여 년이 됩니다. 결혼 전 아내 집에 인사를 드리러 갔을 때 처가에서 함께 살던 갈색 푸들이 저를 경계하며 식탁 아래에서 제 무릎을 살짝 물었던 기억이 납니다. 이때가 사람 나이로 7년을 살았고 작년 가을 20년을 갓 채우고 자기가 살던 곳으로 다시 돌아갔습니다.      


 견공도 나이가 드니 사람과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귀가 안 들리고 눈이 멀며 치매가 와서 대소변을 잘 가리질 못했습니다. 무릎이 좋지 않아 계단은 오르내릴 수 없었고 죽음에 임박해서는 잠만 자다가 처할머니를 모시기 위해 잠시 따로 떨어져 살던, 가족 중 1순위로 좋아하던 장인을 보기 위해 억지로 생명줄을 붙잡고 있다가 장인을 만나보고는 이내 숨을 거두었습니다. 저는 작년에 파견 중이라 그 자리에는 없었으나 장인의 블로그와 주말 집에 들르는 날 화단의 꽃을 보고서야 이 친구가 아픔 없는 좋은 곳으로 갔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장인의 블로그에는 견공의 지난 세월이 묻어나는 사진들이 짧은 영상으로 편집되어 올라와 있었습니다. 장인의 소감을 잠시 소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영웅아, 오늘 하루만 슬퍼할게... 이십년간 너로 인해 많이 행복했다. 좋은 곳으로 가거라.”    

 

 그러고는 화장터 모습, 그가 한창 어릴 때 재롱을 부리던 모습을 영정 사진으로 대신하였고 꽃 한 다발이 놓여 진 무덤 사진이 마지막으로 올라와 있었습니다.      


 이 장면을 보니 장인의 현재 모습과 앞으로의 제 모습이 겹쳐지며 20년이란 세월이 압축된 듯 마음에 찐한 울림과 감동을 주었습니다. 팔 백년을 앞서 살다간 이규보의 마음도 이와 다르지 않으리라 생각됩니다.




 吾欲退懸車(오욕퇴현거)    벼슬살이 그만두려고 

 一昨方上書(일작방상서)    이제 막 임금님께 글을 올렸네

 上書未云幾(상서미운기)    글 올린 지 얼마 되지도 않아

 我馬忽然殂(아마홀연조)    내 말이 갑자기 죽어 버렸네

 吾雖已莫騎(오수이막기)    내 이미 타지 않게 되었지만

 棄去何早歟(기거하조여)    그리도 빨리 날 버리고 가는가

 惻惻傷我懷(측측상아회)    쩌릿하게 마음이 아파

 出門久踟躕(출문구지주)    문을 나와 오래도록 서성거리네

 天以老佚我(천이로일아)    하늘께선 늙었다고 날 버리시고

 奪我所曾跨(탈아소증과)    내가 타던 말까지 앗아 가셨네

 如今伏枕時(여금복침시)    지금처럼 누워 있을 때에야

 捨爾亦或可(사이역혹가)    네가 없어도 괜찮을지 모르지만

 若也有所如(약야유소여)    만약 가야 할 곳이 생기면

 吾豈徙行者(오기사행자)    내 어찌 걸어다니겠는가

 此生事可知(차생사가지)    인생사도 참으로 알 만하구나 

 老境反無馬(노경반무마)    늘그막에 말까지 없게 되다니

 이규보(李奎報,1168~1241), <말을 잃고서[십이월십이일마폐상지유작(十二月十二日馬斃傷之有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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