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은은 Sep 05. 2024

창의(創意)

포도의 시련


♣ 나를 돌아보는 물음


1. 여러분이 경험한 시련(試鍊겪기 어려운 고난이나 단련)과 그것을 통해 얻은 점을 소개해 주세요.

2. 인공지능에게도 시련이 있을까요인공지능이 경험하는 시련과 사람이 겪는 그것의 같고 다른 점이 있다면 자유롭게 여러분의 생각을 적어보세요.






 오늘이 음력 팔월 하고도 사흘째 되는 날입니다. 벌써 한 해의 삼분지이에 접어들고 있습니다.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공기가 자연의 선풍기 역할을 하니 한낮의 더위도 견딜만합니다.     


 염려해 주신 덕분에 저희 아이가 지난주 수요일에 입원했다가 이번주 월요일 아침에 퇴원하였습니다. 병은 나으려고 할 때 더 조심해야 하는 것 같습니다. 아이 병간호하며 제가 무리를 하게 되었는지 어제부터 몸이 간질간질하며 빨간 여드름 같은 것이 오른쪽 신체부위(목줄기, 어깨, 겨드랑이, 팔)로 덩쿨을 짓더니 오늘은 왼팔로 점프를 해서 넘어오려고 합니다.     


 마음 같아서는 피부과에 얼른 달려가고 싶으나 직장에 매인 몸이라 이마저도 여의치 않습니다. 요즘 학교의 아이들은 계절의 변화에 더 민감한지 백일해, 폐렴 등으로 많이 고생하고 있습니다. 생명은 늘 흔들리고 아픈가 봅니다. 댁내 늘 평안 하시길 기원드립니다.      


 늘 그렇듯 동네 주변을 산책하다 어느 예쁜 주택 앞에서 발걸음을 멈춰 섰습니다. 담장이 낮아 뜰이 훤히 내다보이는 집이었습니다. 마당에는 포도나무 가지가 유려한 곡선을 그리며 포도송이가 곤색으로 혹은 연초록으로 잘 익어가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마음 흐뭇하였습니다. 그리고 문득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한여름의 뙤약볕이 사람에게는 기피 대상이지만 자연에게는 꽃피우고 열매를 맺고 곡식이 여물기 위해 꼭 필요한 과정임을 잠시나마 잊고 지낸 것 같아 민망하고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자연은 한낮의 땡볕, 태풍을 동반한 비바람, 폭설, 추위, 소나기, 안개, 우박 등 기상 현상과는 무관하게 태연히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생명 활동을 쉼없이 이어가고 있습니다. 이에 반해 한낱 미물인 저는 날씨와 환경, 시간, 여유, 주변 사람을 탓하며 원하는 성취를 이루어내지 못함에 늘 조바심을 내고 안달한 것 같아 이 또한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창의성과 내가 원하는 성취는 무심히 과정을 즐기되 원하는 결과이든 그렇지 않든 그것을 겸허히 순리대로 받아들이며 인내심을 가지고 다음을 기약하게 될 때 찬란하고 영롱한 포도송이를 얻을 수 있게 되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여담입니다만 퇴근 후 아이의 폐렴 증세 결과를 먼저 들은 뒤에 피부과에 들렀습니다. 어처구니없게도 어젯밤 대학원 수업이 있어 강의실 밖 나무 아래에서 대기하던 중 목에 무언가 이물감이 느껴졌습니다. 손으로 스윽 훔쳤더니 연초록의 애벌레가 제 목 주위를 꿈틀꿈틀 기어가고 있습니다. 손가락으로 가볍게 퉁겨서 다른 곳으로 보내고 강의실 자리에 돌아와보니 이번에는 짙은 연두색 바탕에 밤색 줄무늬가 있는 송충이 한 마리가 제 손가방 위를 탐색하고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또 밖으로 나와서 다시 손가락으로 퉁~     


 집에 와서 샤워할 때 오른쪽 목 뒷덜미를 만져보니 약간 부은 것 같기도 하고 긁힌 상처 같기도 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어디서 긁혔거나 모기에게 물렸겠지 하고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고 샤워를 끝내려는데 마치 모기 100마리 정도에게 물린 듯 앞서 언급한 부위를 뒤덮고 있었습니다.      


 피부과 의사 선생님께서 말씀하시길 “송충이 균입니다.” 의사는 웃고 저는 어이가 없는 해프닝이었습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다음주가 벌초인데 피부병 걸리지 않게 송충이, 애벌레를 조심하자 혹시 본의 아니게 만지게 되더라도 손을 깨끗이 씻자는 교훈을 얻게 되었습니다.     




 다음은 채근담에 나오는 생명붙이들의 처세의 지혜와 관련된 내용입니다. 자연이든 사람이든 떠나야 할 때 떠나지 못하면 생명의 곤란함을 피하기가 어렵고, 빨리 결실을 거두고자 하는 조급함은 ‘미성숙’이라는 쓰고도 떫은 우주의 참맛을 맛보게 되니 인내심을 가지고 하늘의 뜻에 맡겨보자는 권유입니다. 


      

 恩裡(은리)                  은혜 주고받는 관계 속

 由來生害(유래생해)   원한 생길 일 많으니

 故快意時(고쾌의시)   마음 즐거울 때

 須早回頭(수조회두)   서둘러 그 자리 뜨기를 

 敗後(패후)                  실패가   

 或反成功(혹반성공)   때로는 성공일 때가 많으니

 故拂心處(고불심처)   뜻대로 되지 않는다 하여

 莫便放手(막변방수)   조급히 손 놓지 말기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