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적 삶을 위한 한시 읽기

26일

by 은은


白露郊原冷(백로교원랭) 이슬 내리자 들판은 서늘해지고

汚邪早稻黃(오사조도황) 낮은 땅 올벼들은 황금물결 이루었네

屯雲卷䆉稏(둔운권파아) 묶인 볏단은 구름처럼 쌓여 있고

積水見蒼茫(적수견창망) 파란 논물은 넓게 깔려 있네

出碓精如玉(출대정여옥) 방아 찧어 나온 쌀은 옥과 같아서

翻匙滑更香(번시활갱향) 수저에 담긴 밥이 윤기 나고 향긋하구나

前溪秋潦盡(전계추료진) 가을장마 지나간 앞개울에는

更有蟹銜芒(갱유해함망) 게도 벼 까끄라기를 물고 있구나

- 장유(張維, 1587-1638), <벼베기[확도(穫稻)]>


제가 서식하고 있는 이곳 함안은 복숭아, 포도, 감나무, 자두 생산지로 유명합니다. 창원 북면의 외곽에 자리하고 있으며 창녕과 영산을 가기 위한 길목이기도 해서 아침 저녁으로 출퇴근 차량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교육원 아이들과 함께 아침 7시가 되면 생명의 근원인 몸을 깨우는 활동을 합니다. 교육원 주변을 왕복 40분 정도 걷는데 앞서 말씀드린 복숭아, 포도, 감나무, 자두 이외에 호박, 고추, 방울토마토 그리고 논밭을 쉬이 볼 수 있습니다.


산책길을 걷다 보면 어김없이 동네 개들이 저희를 맞아주고 파아란 벼들이 한들한들 손을 흔들어 줍니다. 가끔은 무거운 짐을 지지 않은 민달팽이 친구를 만날 때도 있고 엄지 손톱만한 청개구리 벗을 만나기도 합니다. 오늘은 태풍이 올라오기 전야이자 입추(立秋)입니다. 이곳은 도시보다 기온이 2~3도 가량 낮아 체감상 조금 일찍 가을을 느낄 수 있어 좋습니다.


선현들은 한 해 중 가장 중요한 절기로 추수를 꼽았습니다. 풍성한 먹거리와 관련되기 때문이고 한 해의 결실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청렴하고 소박한 삶을 추구한 계곡 장유 또한 ‘방아 찧어 나온 쌀은 옥과 같아서/수저에 담긴 밥이 윤기 나고 향긋하구나’라고 추수의 의미, 먹거리에 대한 경탄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우리 10대들 또한 농부에 대한 감사, 쌀을 보내주시던 할머니에 대한 추억, 조상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떠올리는 것을 보며 농촌은 심미적·생태적으로 빼어난 자연경관을 제공할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어머님과 같은 품을 느끼게 해줍니다.


후손들을 위해 농업과 농촌, 농민이 잘살 수 있는 제도적 배려와 함께 우리가 누군가에게 늘 빚지고 산다는 마음을 가지고 서로에게 감사하고 베풀 줄 아는 마음을 지녔으면 좋겠습니다. 이런 마음이 일상화될 때 게가 편안히 벼 까끄러기를 물고 다닐 수 있으며 노루나 개, 고양이, 지렁이가 차바퀴에 깔리는 안타까움이 아닌 생물 다양성이 보장되는 좀 더 아름다운 세상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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