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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섬돌 Jan 13. 2023

당신은 이미 ‘명상’을 즐기고 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명상을 한다. 미안하지만, 사람 아닌 여타 동물도 명상을 하는지는 알지 못한다. 하지만 ‘동물계 포유강 영장목 사람과’에 속하는 존재는 어떤 식으로든 명상을 할 수 있는 심리구조를 갖고 있다. ‘사유, 언어, 자기반성’ 능력을 타고나기 때문이다. 이런 능력이 없었으면 지금의 ‘호모 사피엔스’라는 한 종(種)은 지구촌을 석권하지 못했을 것이다.      


문제는 자신이 가끔이라도 명상 상태에 돌입하는지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다. 당신은 이미 하루 중에 여러 차례 명상을 하면서도 그것이 바로 ‘명상’ 임을 모르고 있을 수 있다. 김춘수 님의 “꽃”이라는 시, 앞부분은 다음과 같이 시작한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 그는 다만 /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 그는 나에게로 와서 / 꽃이 되었다.  

     

천부적으로 ‘사유와 반성’의 능력을 타고 난 ‘당신’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그런 심리적 행위를 한다. 우리말 대백과 사전에 나오는 명상(冥想, 瞑想)의 의미 풀이에서도 ‘사유와 반성’은 드러난다. 그런데 그것을 당신은 ‘명상이라는 이름’으로 불러주지 않는다. “그는 다만 /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상태에서 머물러 있는 셈이다. 당신이 만약, ‘내 사유와 반성의 이름을 명상이라고 불러 주었을 때’ 그것은 무엇이 될 것 같은가. 그 “사유와 반성은 나에게로 와서 ‘명상’이라는 의미”가 돼줄 터이다.   


한 사람을 사랑하게 되는 과정 또한 마찬가지다. 몇 년씩이나 한 공간에서 별다른 감정 없이 지나치던 그가 언제부턴가 나에게 ‘하나의 의미’가 되었을 때 나는 비로소 ‘사랑’을 발견한다. 당신의 사랑처럼, 명상 또한 당신의 내면에 이미 있던 것에 대한 ‘발견’이다.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던’ 꽃의 흔들림에 대해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비로소 나에게로 온 ‘꽃’이 되었듯, 명상 또한 그러하다.  


명상은 당신의 생명 활동에 놓여 있는 ‘어떤 상태’의 발견이다. 식물학자는 산야초들이 자라는 시골길을 걸으면서 남들은 ‘보면서도 보지 못하는’ 식물 품종을 발견한다. 같은 길을 걸으면서도 음식 전문가는 음식으로 만들 만한 산야초를 냄새만으로도 찾아내곤 한다. 같은 길을 걷는 조류학자는 주변 수풀 안팎에서 다른 사람이 들으면서도 구별하지 못하는 새 이름과 새의 상태 따위를 해석해주기도 한다. 명상 또한 마찬가지다. 명상 훈련이 잘 된 사람은 온갖 소음들로 시끄러운 가운데서도 내면의 고요를 찾아, 그 마음 상태에 머물곤 한다. 

    

수풀이 우거진 시골길에서 귀한 산야초나 음식 거리, 희귀한 곤충들이 벌써 준비돼 있었듯, 명상이 갖고 있는 내면의 고요함도 이미 당신의 내면에 준비돼 있다. 다만 그것이 ‘명상’ 임을 알지 못할 뿐이다. 이미 경험한 사실의 의미를 발견하지 못한 것이다.      


하지만 당신은 오늘도 틀림없이 명상을 했다. 오늘 하루 어느 순간에 당신이 스스로에게 ‘내가 아까 왜 그런 말을 했지?’라고 자문한 순간이 있었다면, 당신은 바로 그 순간 ‘명상’이라고 이름할 만한 행위를 한 것이다.      

‘내가 아까 왜 그런 말을 했지?’라고 자문하는 순간 당신의 심신은 두 가지 요소를 경험했을 터이다. 하나는 멈춤이고, 다른 하나는 고요함이다. 이 두 요소는 마음이 자신을 바라보게 됐을 때 발생한다. 일종의 마음의 영점 상태라고 할 수 있다. 명상은 이처럼 마음의 해수면 ‘제로’에서 시작한다. 즉, 당신의 영적성장, 인류의 영적 성장에는 고요와 평화라는 심리적 제로섬이 있다. 고요와 평화가 함께 가지 않은 명상은 없다.  

   

그 고요와 평화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마음에 있는가? 아니다. 몸과 마음을 굳이 나눈다면, 당신의 몸부터 살펴볼 일이다. 어머니의 태반을 짐작해 보면 느낌이 올 것이다. 당신은 하루 한번, 그 모태와 유사한 이불속에서 태아 자세를 취한다. 고요와 평화는 잠에 빠진 당신의 몸 세포 하나하나에 깃들어 있다. 하루 7~8 시간의 수면이 심신의 재부팅 시공간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잠에 빠진 사람의 가장 큰 특징은? 몸의 이완이다. 당신은 손가락 마디 하나, 위장 가장자리 어느 한 군데라도 뻣뻣해있으면 잠들 수 없다. 모든 근육의 긴장이 풀린 시점. 태생적으로 노동강도가 높은 심장이나 노동강도가 낮은 뇌, 간, 위장 등의 기관들도 상대적으로 평안한 신체적 이완의 시공간이 수면이다.  

   

그런 몸의 환경을 자주 만들자. 당신이 멈춘 그 어느 곳이든, 앉거나 서서 몸을 고요하고 평화롭게 이완시키는 일. 당신은 어쩌면 여전히 ‘명상’이라는 개념과 체험이 없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다. 그렇더라도 몸을 멈춘 그 자리를 고요와 평화의 처소로 만들어보라. 반복적으로 만들어보라. 그러면 저절로 알게 될 것이다. 평상시와 다른 의식 차원임을. 아, 이것이 명상이구나, 하고 확신하게 된다.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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