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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섬돌 Jan 13. 2023

명상은 하나의 현상을
여러 각도에서 보려는 마음이다

 가끔은 상대와 내가 둘이 아님을 실감할 때가 있다. 그의 마음이 고스란히 나의 감정과 일치하고 있음을 느끼는 경우다. 그때 일어나는 현상은 내 몸 감각의 변화다. 대화 중에 가슴이 답답해오거나 시원하게 뚫리는 느낌이 들 때가 있지 않은가. 그 순간 나는 그의 마음 상태와 접속했음을 느낀다.    

 

아침 일찍 전화가 오면 80퍼센트 정도는 불편한 목소리를 듣게 된다. 주저하는 마음으로 전화기를 쥐게 된다. 내 일터와 관련한 전화지만 그의 이름은 내 기억에 없다. 그가 말했다. “내일쯤 토지 감정평가 결과가 나오는 모양입니다.” “아, 네, 저도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근데, 들리는 말에 의하면 세 개 감평사 중 두 개 평가사가 형편없는 결과를 냈다고 하더군요.” 그는 말하는 중에 화가 끓어오르는 듯했다. “아니, 이게 말이나 됩니까?”      


그 시간 이후 다른 사람에게도 그와 유사한 하소연 전화를 두 건 더 받게 되었다. 그때마다 내 몸 감각은 다양한 곳에서 다양하게 반응한다. 허리가 뻐근하거나, 정수리가 뜨거워지기도 했다. “죄송하지만, 이건 제가 대답해 줄 수 있는 내용이 없어 보입니다.” “그걸 모르는 건 아닙니다. 그렇지만, 일단 상황이 이렇다는 걸 들어줄 수는 있어야 하는 거 아닙니까? 시민들이 이런 어려움에 처해 있단 걸 알아줄 누군가는 있어야 할 것 아니냐고요?”     


나는 그들이 말하는 용어조차 모르기 일쑤였다. 이쯤 되면, 상담자가 내담자의 삶 속에 완전히 담기지 못하면서도 심리 상담을 해주는 격이다. 그럼에도 나는 왜 그들의 사연을 계속 듣고 있는 걸까. 지나고 보니, 그가 내 속내를 이미 헤아리고 있을 거라는, 약간 황당한 믿음이 있었던 것 같다. 어쩌면 그도 나의 속사정을 빤히 들여다보고 있으리라. 당신 또한 내 상태를 알고 있지 않겠어? 하는.     

   

대화란 언어만으로 하는 게 아님은 분명하다. 서로 말을 나누는 순간에만 대화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진짜 대화는 언어 교환이 그친 이후, 혼자 있거나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고 나서 시작되기도 한다.     


통화 후, 뒤늦게야 나의 솔직한 감정이나 견해가 터져 나오기도 한다. ‘당신은 갑자기 그린벨트가 풀려서 농사짓던 땅들이 하루아침에 비싼 땅이 됐잖소? 그린벨트가 택지로 전환되면서, 수용지 땅 값이 몇 배는 올랐을 텐데 그거 너무 욕심부리는 거….’   

  

그러던 중 문득 한 생각이 올라왔다. 이건, 그곳에서 상추씨 한번 제대로 파종해 본 적 없는 내 고정관념 아냐? 나는 토지 수용에 대해 어떤 경험도, 관심도 가져본 적 없는 사람 아닌가. 어느 때인가 무심코 듣게 된 ‘토지 수용에 관한 여러 말’들이 기억나긴 하지만, 시절도 다르고 위치도 다르다. 이럴 땐 어떻게 해야 바보가 안 되는 거지?    

   

4분면 관찰은 이럴 때 유용하다. 저런 외통수 판단을 벗어나거나 객관화할 수 있는 방편이기 때문이다.       

백지를 꺼내 십자가 모양으로 세로 측 중앙을 2등분 하고 가로 측 중앙을 2 등분하면 4분면이 된다. 윗면 왼쪽에는 ‘내 생각’이라고 적는다. 아랫면 오른쪽에는 ‘네 생각’이라고 적는다. 아랫면 왼쪽에는 ‘마음에 떠오르는 제3의 인물’을 떠올려서 ‘그의 생각’이라고 적고, 윗면 오른쪽에는 ‘하느님’ 혹은 ‘부처님’ 아니면 ‘공자님’ ‘우주신’ 등등 당신 내면의 절대 존재 이름을 적어본다. 

     

각 분변에 따라 그의 말을 받아 적는다. ‘내 생각’을 적을 수 있는 면에는 말 그대로 ‘내 생각’을 말하듯이 적으면 된다. 그다음, ‘네 생각’의 면에는 당신의 생각보다는 가급적 상대의 견해나 판단, 생각 따위를 적으려 노력해 보라. 당신의 생각을 포기하면서 그의 입장에 서보는 것이다. 처음에는 당신 생각이 더 강하게 작용할 것이다. 하지만, 그 생각을 단념하고 ‘너의 입장’을 한사코 헤아리다 보면 이내 그가 하고 싶은 말을 적을 수 있게 된다.      


같은 방법으로 ‘제삼자의 입장’이 되어서 이 사안에 대한 ‘잔소리’를 주절주절 읊어보라. 그러면 당신은 곧 이 사안에 대해 그다지 이익도 손해도 볼 일 없는 사람의 공정한 말을 받아 적게 된다. 마지막으로, 당신 내면의 절대 존재가 하는 ‘말씀’이 무엇인지 경청한다. 그 절대 존재는 인간의 천부적 윤리⋅도덕의식에 준하는 기준을 드러내줄 것이다.     


4분면 관찰을 여러 차례 실천해 보면 분명히 알아지는 게 있다. 내가 어떻게 해서 너의 생각, 그의 생각, 심지어는 초월적 존재의 생각까지도 알고 있는 거지? 필요하다면 4분면을 넘어 6분면, 8분면으로 다른 존재의 마음을 드러내봐도 이미 스스로 알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놀랍게도 나는 어떤 사안에 대한 타인의 견해나 판단조차도 이미 접속해 있음을 느낀다. 이렇게 되면 나를 직시하지 않을 수 없다. 도대체 “나는 누구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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