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만한 자만임을 모르지 않지만, 언제나 연애는 내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보다 솔직하자면 쉬웠다. 게 중 골랐다, 라는 표현도 꽤 천박하게 읽히나 가장 적확한 문장이 아닐 수 없다.
열여덟 열아홉에 한 명, 스물 스물하나 스물둘에 한 명, 스물셋 스물넷까지 또 한 명.
나는 스물넷 여름쯤 이미 세 번의 연애 경험이 있었다. 각각 2년, 3년, 1년 반씩을 만났다.
공백 없이 이어진 연애. 이렇다 할 자의에 의한 것은 아니었다. 자의 없이 연애할 수 있느냐 물으면 그것도 앞뒤말이 맞지는 않지만, 타의가 보다 컸다. 내가 헤어지기만을 바라던 사람들이 언제나 있었기 때문이었다. 지금은 순진과 거리가 멀다만 어려서는 아니었다. 이성적 호감과 인간적 호감을 구분할 수 없어 벌어진 일이었다. (호시탐탐이라는 단어가 머릿속에 빙빙 맴돌아 쓰고 싶지 않으나, 적지 않을 수 없다.)
늘 헤어지고 한 달이 채 지나지 않아 다음 연애를 시작했다. 그때도 분명 그건 너무 짧은 텀이 아니냐-하는 핀잔을 듣긴 했지만 나는 그 우려가 세련되지 못하다고 생각했다. 헤어졌고 끝났고 이미 안녕인데 그게 뭐 어떻냐는 입장. 게다가 그들도 그들이지만 그때는 나도 좀처럼 나를 가만두지 않았었다. 연고 없는 서울살이가 퍽 녹록지 않았던 터라 이별은 쉬웠지만 친밀한 누군가 없이 지내는 것은 어려웠다. 늘 연애 중인 이유엔 이것도 큰 비중을 차지했다.
다시 말하지만 이별은 쉬웠다. 헤어진 날 잠깐 속상하고, 다음 날 약간 아프고, 그다음 날에 조금 허하다가 일주일 정도면 다시 일상을 살 수 있었다. 그게 그간 내가 해온 이별이었다. 무미건조하고, 군더더기 없는. 그런데 무슨 자숙기간도 아닌 것이 1년을 만났으면 최소 몇 달, 3년 정도 만났음 그래도 반년은 쉬어야 한다니. 사람들은 다 저렇게 감정적이어서 어떻게 인생을 살아가나. 타인의 유약함을 안타까워했다. 내가 이상하다는 생각은 조금도 하지 않았다. (자의식 과잉이라면, 과잉이다.)
그렇다 보니 이별 노래는 (지금도 잘 듣지 않지만) 플레이 리스트에 끼워질 수 없었다.
작위적이었다. 보고 싶어 미치겠다는 가사, 너 없이 하루도 안 된다는 가사, 네가 그리워 살 수 없다는 상투적인 말들이 모두 현실적이지 않았다. 내게 이별은 무 자르기보다 깔끔한 것인데 세상의 이별 노래들은 이렇게 질척일 수가 없는 거다. 상대도 마찬가지였다. 우리 애진작에 끝낸 이별을 뭘 그리 내내 붙잡고 늘어지는지. 무려 한 계절이나 지나서까지도, 심지어는 해가 바뀔 만큼 긴 시간이 흐른 후에까지도 내게 연락해 오는 전 연인들이 있었다. 물론 이해할 수 없었기에 나는 그들의 연락을 다정히 받아주지 않았다.
그렇게 쿨-한 이별만 세 번을 겪은 스물넷의 어느 날이었다.
모처럼 무려 두 달씩이나 남자친구가 없던 유일한 20대의 어느 날이었다.
졸업 논문과 토익에 치여 또 모처럼 도서관에만 박혀 유일하게 심심했던 대학 4학년 어느 날이었다.
오만한 내가 첫사랑을 만난 건, 그런 어느 가을날에였다.
첫사랑 클리셰는 내 인생에도 여지없이 적용되었다.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뜻이다. 우리는 3개월의 짧은 연애를 끝으로 헤어졌다. 지금에 와 생각해 보면 3개월이나마 우리가 우리였을 수 있음에 감사하는 마음이지만, 그때는 아니었다.
잃음과 부재에 따른 사무침이 내 온 방안을 헤집어 놓았다. 돌아누운 창가엔 당신의 이름이 떠다녔고 눈을 뜨면 아침이라는 자각보다 앞서 당신의 얼굴이 떠올랐다. 자고 깨는 모든 순간이 다 고통이었다. 당신과만 누빈 것도 아니다만, 당신과 만나고 헤어진 서울은 당신의 온상이 되어버렸다. 기껏해야 석 달 남짓, 다녀봐야 얼마나 다녔겠냐마는 그 도시 전체가 죄 당신인 거다. 어디도 편하게 다닐 수 없었다. 그리움의 크기는 날로 커졌고 나는 나날이 병들어 갔다. 괜찮지 않았고, 괜찮아지지도 않았다.
당신을 잃은 나는 그제야 세상의 온갖 이별 문장들에 다 공감할 수 있게 되었다. 내 전 연인들의 질척스런 연락의 이유를 그제야 온전히 이해할 수 있었다. 다음 연애까지의 공백 기간에 대한 핀잔도 어떤 마음인지 그제서야 받아들일 수 있었다. 거기에 내 안에서도 낯선 결의 문장들이 쏟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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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를 잃고 남겼던 포스팅의 모음집이다.
사랑이었다.
나는 처음으로 연애가 아닌 사랑을 했다. 사랑은 연애와 달랐다.
나는 연애에 능숙했지만 사랑에는 머저리였다.
그리고 이별에는 더 그랬다.
좋고, 즐겁고, 웃고, 서운하고, 밉고, 고맙고, 미안하고 하던 보통의 연애에서는 느낄 수 없는 감정이 엉켜 뒹굴었다.
사무쳤다가, 아렸다가, 애석했다가, 원망스러웠다가, 아팠다가, 시렸다가, 몸 닳다가, 또한, 보고 싶었다가. 이 중 보고픔은 내가 가장 견딜 수 없는 감정이었다.
보고 싶었다. 정말 보고 싶었다.
짙은 보고 싶음은 당신의 부재를 더욱 명확하게 했다.
닿을 수 없음. 전할 수 없음. 죽음만이 갈라놓을 줄 알았던 우리가, 이렇게 버젓이 살아서도 공백 하게 되다니.
보고 싶다는 마음은 우리가 함께하고 있지 않음을 명백하게 하였다. 그 명백함이 날카롭게 나를 찔렀고, 찔린 나는 또 당신을 그리워했다. 벗어날 수 없는 뫼비우스 띠였다. 종착지가 없는 후미진 기차에 올라탄 기분이었다. 출구 없는 미로, 손잡이 없는 문 앞에 서 있는 것 같았다.
사랑하던 이와 하는 이별은 그렇게 막막한 것이었다.
3년이 걸렸다.
내가 괜찮아지기까지.
다시 잘 웃고, 잘 먹고, 잘 다니게 되기까지. 근심 없이 잠들고 상쾌하게 아침을 맞이하기까지 무려 3년이 걸렸다.
3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