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가벼운 맘으로 글 앞에 앉고 싶은, 보다 산뜻한 글씨들로 한 편을 내리고픈 날입니다.
이어지는 글은 주말에 쓰도록 하고, 오늘은 오늘의 이야기를 써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냥 저는 원래도 그렇게 두서없이 글을 씁니다.
그게 잘못된 글쓰기의 방법임을 모르지 않지만 싫증은 언제나 제게 큰 포기 사유가 되기에
저를 잘 달래 가며 결말까지 이어 쓰려면 이 방법이 가장입니다.
그래도 다행인 건, 스스로가 스스로의 제어법을 잘 안다는 것이라는 정신 승리와 함께 글을 시작하겠습니다.
써야 한다는 강박, 무언가라도 집어 들어, 어떤 것이라도 끄적여야, 다만 자리에 앉아, 불안한 맘을 이리저리, 그런 고독하고 번잡한 겨울을 보냈다.
꼬박 닷새쯤이었을 것이다. 내가 아무것도 쓰지 못하고 멍하게 모니터 앞에 늘어진 것은. 날이 차가워지며 보일러 온도를 상당 수준 높여 놓았는데도 어쩐지 계속 추웠다. 손이 시려 짜증이 오르고 입에서는 급기야 김도 났다. 일단 그날은 그것을 첫 번째 이유로 뽑았다. 이거 원, 추워서 글을 쓸 수가 있어야지. 온도를 더더 높이고 급기야는 장판도 깔아 방의 훈기를 더했다. 조금만 기다리면 천천히 온도가 올라 적정 수준까지 오를 텐데, 그 조금을 기다리지 못하고 마구 온도를 올려댄 탓에 결국 내 방은 사우나가 되어버렸다. 스스로의 급한 성질머리를 잠깐 탓하다 다시 보일러 온도를 조정하였다. 의사결정의 거의 모든 부분을 의탁하고 있는 제미나이에게 겨울철 적정 실내온도 설정법에 대해서도 물어 맞췄으나 한 번 올라간 온도는 쉬이 내려가지 않았다. 태생이 문과라 그 원리를 짐작조차 못하겠지만 암튼 보일러는 이제쯤 괜찮은 온도다-싶으면 꼭 몇 단계 더 위로 올라갔다. 온도를 급히 낮춘다고 해서 바로 낮아지지도 않았고. 결국 웬 겨울에 땀이 이렇게, 아무래도 씻어야 하겠다. 그리고 이것을 두 번째 이유로 뽑았다.
씻는 건 또 금방 씻었다. 원체가 오래 물 맞고 선 걸 즐기지 않는지라 씻고 말리고 다시 책상 앞에 앉기까지 채 삼십 분도 걸리지 않았다. 그 사이 다행히 온도도 적정 수준에 이르러서 앞서 말한 두 가지의 이유가 소거되었다. 이제 정말 글을 쓰면 되는, 아차, 물! 정말 큰일이 날 뻔했다. 목욕 후 수분 섭취는 필수인데.! 스물여덟부터는 하루 음수량 2l를 느슨한 강박으로 챙기고 있다. 이때 주의할 점은 식도가 놀라지 않게 미지근한 물을 여러 번에 나누어 먹는 것이다. 큰 한 컵을 몽땅 들이켜고 보니 아뿔싸, 아직 제대로 된 식사를 하지 않은 거다. 벌써 해가 중천이고 일어난 지 다섯 시간이나 되었는데도 공복이었다. 탄수화물이 들어가지 않으면 뇌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한다고 하더라니. 이제쯤 정말 집중해서 글을 쓰려고 했건만.. 어쩔 수 없이 뭘 챙겨서 먹기는 해야 하겠다. 자칫 글 쓸 시간이 부족해질 수 있으니 간단하게 샌드위치나 만들어 먹기로 했다.
흰 유유 한 컵과 직접 만든 샌드위치를 챙겨 거실 테이블에 앉았다. 한 입 한 입, 이걸 다 먹고 나면 꼭 바로 글 앞에 앉기로 하자는 스스로와 약속도 샌드위치와 함께 (곱)씹어댔다. 진짜 글 써야 돼. 벌써 이게 며칠 째야. 오늘은 그냥 넘어갈 수 없어. 정말, 정말로 써야 해. 쓰던 원고를 이어 쓰든, 어제 쓰다만 일기를 마무리 하든, 암튼 그게 뭐라도 써야 해.
급한 성격은 태생인 걸까나. 한국 사람은 안 그래도 빨리빨리의 민족인데 그중에서도 경상도 사람은 최고라고 했다. 그래서 이렇게 5분 만에 다 먹어버린 걸까나.. 나와의 약속이 채 다 곱씹어지기도 전에 이미 손에는 아무것도 들려있지 않았다. 아쉬웠다. 배가 덜 차서 아쉬운 게 아니고, 샌드위치가 지나치게 맛있어서도 아니고, 글쎄 그냥 그게 다 아니고, 이제 더 이상 남은 변명 거리가 없어서. 더는 탓할 게 남아있지 않아서. 꼼짝없이 저 방에 들어가 글 앞에 앉을 때였다. 다른 걸 아무리 찾아봐도 내가 할 일은 너무 하나로 명백했다. 닫힌 작업실 문이 천근만근 억근과도 같이 보이는 거다.(조근....경근....해근........)
하지 않으면 무한정으로 하지 않을 수 있다. 오늘 당장 글을 쓰지 않는다고 해서 누구 하나 내게 뭐라고 할 사람 같은 건 없다. 결재 서류가 올라가지 않거나, 해야 할 업무 준비를 하지 않으면 큰일이 나는 회사와 달리 글쓰기는 당장 하지 않는다고 해서 큰 일 같은 건, 아니 작은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특히나 나 같은 지망생에게는 더욱. 그냥 어제와 같은 오늘이 되고, 오늘과 같은 내일이 올뿐이다. 그냥 안 쓰면 그만이고, 그저 안 읽으면 끝이다. 글로 먹고살아보겠다 결심한 지도 벌써 꽉 채운 2년이 다 되어가지만 나는 아직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그건 나의 재능이 부족한 탓도 있겠지만, 나의 충실함의 부재도 분명 클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결국 나를 조바심 속에 빠트렸다. 얼른 해내야 한다는, 빨리 이뤄야 한다는, 이제쯤이면 무언가 하나라도 되어야 한다는. 어제와 같은 오늘, 오늘과 같은 내일. 그건 다행이기도 했지만 불행이기도 했다. 나는 여전히 지망생일 뿐이었으니까. 돈을 벌지 않고 있었음 오히려 더 열정을 갖고 매진했으려나. 언제든 도망칠 곳이 있다는 게 나를 나태하게 하나. 이유야 뭐가 됐든, 나아가지 못하고 있음은 자명했다.
거듭된 실패가 이어지자 서점에 가 원래는 절대 발길을 들이지 않는 베스트셀러 코너를 살피는 버릇을 들였다. 요즘 사람들은 어떤 글을 좋아하고, 요즘엔 뭐가 잘 팔리고, 나는 어떤 걸 써야 하는지 알아야 했기 때문이다. 지망생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어엿하고 싶었다. 그러나 베셀 매대를 보면 볼수록 나는 내 글이 저 매대에 실리기란 쉽지 않겠다는 자조적 분석만 쌓였다. 얼른 이 지겨운 지망생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시장이 원하는 것을 써내야 한다. 전달하고픈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받고픈 말을 써내야 한다. 그래야 벗어날 수 있다. 하지만 내가 써내는 글들은 하나같이 그것과는 결이 달랐다. 아이유도 처음부터 이름에게와 같은 곡을 부르지 않았고, 지드래곤도 원옵카를 내기까지 시간이 걸렸다. 대중이 원하는 것을 착실히 내 명성을 얻은 후에야 하고픈 예술을 할 수 있는 건 초입 예술가의 서글픈 숙명이다. 나에게만 세상이 그리 각박한 것은 아니니, 억울해 말고 쓰면 될 일이다. (내가 독자에게)읽히고 싶은 책 말고, (독자가 스스로)읽고 싶은 책. 바로 나는 그 책을 써야 한다.
그런 마음으로 앉게 된 글 앞은 예전과 달리 즐겁지가 않았다. 일필휘지로 갈겨쓰던, 언제나 나의 가장 큰 취미이자 놀이터였던, 가장 사랑해마지 않던 그 일이 정말 일 같아져버리고 말았다. 쓰고 싶지 않다-는 기분을 태어나 처음 느낀 겨울이었다. J양에게 이 고민을 말하자, 그녀는 드디어 네가 그 일을 전업할 준비와 태도를 갖추게 된 것이라는 긍정적 평가를 내려주었다. 본디 일이란 즐겁기만 해서는 안 되는 것이라고. 일정 부분의 스트레스와 강박과 부정의 마음이 있어야 그것이 진정한 일이 되는 거라고. 그래서 가장 좋아하는 일을 업으로 삼지 말라고들 하는 것 아니겠냐고 말이다. 그게 하기 싫어지는 걸 보니, 오히려 정말 작가스러워지는 것 같아 좋아 보인다고도 덧붙여 주었다.
다행이라면 다행인 분석이지만, 스스로는 그렇게 느끼지 못했다. 오히려 모든 걸 다 버리고 글 앞에서 여생을 살기로 한 선택이 정말 잘한 선택이 맞는 건지 의심이 되기도 했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인간 활동 중, 나는 언제나 글쓰기를 제일 좋아했고, 글을 쓸 때 비로소 살아있었고, 글 앞에 서는 것은 늘 두 팔 벌려 환영인 사람이었기에 이런 스스로의 모습은 낯섦과 동시에 실망이었다. 사랑한다며, 분명 글 앞에서 여생을 보내기만 하면 후회도 뭐도 없다며. 그런데 웬갖 핑계를 찾아대며 어떻게든 쓰지 않으려 왜 회피하는데. 실은 있어 보이는 직업이라 하고 싶었던 거야? 아님, 또 무언가로부터 도망치고 싶었나? 글이라면 다 좋다면서, 그럼 사람들이 보고픈 글도 써낼 줄 알아야지. 재능 부족이야. 자질 부족이고. 스스로가 그렇게 못날 수가 없는, 그런 속상한 겨울이었다.
대학 3학년 때였다. 우연히 들른 답사지에서 나태주 시인을 만났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고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는 시인의 명 문장은 학교2013을 보고 자란 내 세대에게는 상징(그리고 상식) 같은 것이다. 그런 시인을 우연히 만난 것도 행운인데, 시인께서는 그 많은 학생들을 모두 자신의 집으로 초대하시곤 예정에 없던 강연과 피아노 연주도 들려주셨다.(나중에 알게 된 정보, 시인께서는 교사 출신이셨다.) 작은 화이트보드에 투박하게 진행된 강의는 과장을 조금 더해 대학 4년간 들었던 어떤 강의보다 인상적이었다.
강의의 주제는 시대가치. 아마 우리의 전공이 역사라 그것이 주제가 되었지 않나 싶다. 강의의 요지는 다음과 같다. 각 시대에는 그 시대 사람들의 가치가 있고, 그것은 세대를 가르고 사람을 한데 묶어주거나 흩어지게 한다. 50년대 우리나라의 시대가치는 가난의 극복이었고, 80년대에는 민주화였고, 00년대에는 개인이다. 민주화 시대에는 거대 악에 대항하기 위해 사람들이 뭉칠 필요가 있어서 연결이 중요했지만 그것을 다 이룬 지금은 사람들은 굳이 연결될 필요가 없어서 개인으로 이어진 것이라는 설명이었다. 끝으로 우리는 현재 어떤 시대가치 속에 살고 있느냐, 앞으로 너희가 살아갈 20년대, 30년대 그리고 그다음의 시대가치는 무엇일 것 같으냐 하셨다. 시대가치... 시대가치라. 나는 어떤 시대가치 속에 살고 있는가. 오늘날의 시대가치는 과연 무엇인가. 그때 그런 생각을 처음 해봤다.
그리고 베스트셀러 매대 앞에 서서 두 번째로 그런 생각을 했다. 어느새 202n년이나 되어버린 오늘날 우리의 시대가치는 무엇인가. 베셀 매대에서는 그 답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사람들이 원하는 주제, 읽고픈 이야기가 손이 가장 많이 간 순으로 나열돼 있기 때문이다. 그걸 엮어 생각해 보면 하나의 답이 나올 테다. 음, 골똘해본 결과 하나의 결론이 도출되기는 했다. 사실 그렇게 어렵게 갈 필요 없이 출판 공모전에 당선되는 작품만 봐도, 하다못해 인터넷만 조금 뒤적거려도, 그냥 주변 사람들과 조금만 이야기를 나누어도, 대충 아침 뉴스만 꼬박 챙겨보아도 알 수 있었다. 아, 작금의 시대가치는 이것이구나, 하고.
나는 나의 제자리걸음의 이유를 드디어 알아차렸, 아니다 거짓이다. 알고 있었다. 역사 전공자에게 시대가치를 파악하는 일은 그리 고난도의 작업이 아니다. 따라서 나는 알았고, 지금도 안다. 세상은 어떤 것을 추구해 나가고픈지, 어떤 글을 읽고픈지. 나는 그걸 다 알면서도 고집스럽게 내가 하고픈 말만 써서 냈다. 실패할 걸 알면서 썼고 떨어질 걸 알면서 그런 글들만 기고했다. 배짱이 두둑하기로서니 둘째가라면 서러울 고집을 피운 것이다.
그럼 이제 나는 영영 이렇게 살아야 하나. 실패만 잔뜩 껴앉은 장수 지망생으로 지내야 하나. 아님 나의 고집을 꺾고 세상과 맞는 글을 써내야 하나. 이번 거울 내 저작이 멈춘 건 나의 나태함도 분명 있지만 이 고민에 대한 답이 내려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대체 어느 장단에 맞춰 어떤 글을 써야 할까. 나는 어떤 작가가 되고 싶은 걸까.
그리고 최근에서야 그 답이 내려졌다.
축복스럽게도 멈춘 저작이 다시 활기를 맞았다.
몇 주 전 일기 한 편을 첨부하며 어수선한 이 글을 마치도록 하겠다.
아직도 겨울
매일 아침 시리에게 날씨를 묻는다.
시리는 정확한 최저 기온을 말해주지만
나는 자꾸 얇게 입고 다닌다.
춥다 추워-라는 말을 출근길 내내 뱉어가면서도
아직도 겨울이야? 하는 푸념을 늘어놓으면서도
여전히 매일 아침 얇은 옷차림이다.
시리는 거짓을 말한 적이 없고
나 또한 최저 기온을 모르지 않으나
그냥 계속 그러는 중이다.
다행히 지난주보다 이번 주 출근길이 덜 추웠다.
내가 뭘 더 껴입어서는 아니고
기온이 올랐기 때문이다.
아마 다음 주에는 딱 맞는 옷차림이 될지도 모르겠다.
늦어도 다다음주에는 딱 맞게 될 것이다.
그렇게 나의 글도 때를 기다리는 중이다.
언젠간 그 시대 가치와 맞게 될 것이다.
아직 오지 않았을 뿐.
반드시 딱 맞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