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채색의 고깃덩이 어른(1)

by 윤지수

어려서 본 어른들은 뛰어들기보다는 에둘렀고, 연연할 바엔 돌아섰다.

용기는 잃고, 겁은 얻은, 사랑은 잃고, 그리움만 안은.

그런 모습의 어른은 무채색의 고깃덩이 같았다.

분명 사람인데, 분명 생명일 건데, 색이 하나도 없어 보였달까.


내지르는 마음 없이 사는 것은 어린 눈에도 퍽 애처로움이었던 터라

저런 어른은 되지 말아야지 했었다.

나는 만져도 뜨겁지 않을 것 같은 저 무채색의 고깃덩이 어른 말고

꼭 싱싱한 피칠갑에 뜨거운 어른이어야지.

그렇게 사는 듯이 살아야지- 했었다.


열아홉쯤 그때의 일기장엔

보고 싶은 게 하나둘 늘어가는 게 어른의 삶이라고는 한다만

나는 그리 살지 않겠노라-하는 다짐도 잦게 쓰였다.

그즈음 그런 글을 쓴 건 담임 선생님의 이별 때문이었다.


고2, 고3 2년 간 나의 담임을 맡아주었던 그 선생님은 솔직하고 밝은 여자였다.

여자 반을 만나 참 좋다며 자신의 얘기를 종종 꺼내주시곤 했다.

학교 근처 방을 계약했던 이야기, 임용고시에 여러 번 낙방했던 이야기,

그리고 참 좋은 사람을 만나고 있다는 것까지.

그 사람과는 삼겹살 집에서 소개팅을 했는데, 너무 시끄러워 입모양으로만 대화했다고 했다.

숨 막혔던 첫 만남 탓에 기대 없이 다음 만남을 가졌는데 선생님이 좋아한다고 했던 음식점에, 좋아하는 음악에, 좋아하는 영화까지 준비되어 있었다고. 그 시끄러운 와중에도 자기 얘길 다 들었구나 싶어서 예뻤고, 다음 만남에 기대가 생겼다고 하셨다. 그 후로도 몇몇의 이야기를 더 들려주셨지만 선생님이 굳이 말로 꺼내지 않으셔도 나는 선생님이 얼마나 사랑받고 계신지 알 수 있었다.

종종 바뀌는 목걸이

문득 피식 거리는 버릇

묘하게 상기된 금요일 아침 같은 것에서 말이다.

사랑에 빠진 여자는 참 예뻤다. 사랑받고 있음은 안 그래도 예쁜 그 여잘 더 예쁘게 했다.

그리고 그 여잔, 고2 겨울 방학을 끝으로 사라졌다.


고3 개학과 동시에 그 수다쟁이 선생님이 내리 수업만 하셨다.

하다못해 오늘 먹은 급식에 대한 평가와 같은 잡담도 없이 우리는 지루하게 책만 봤다.

아이들은 변한 선생님의 모습에 우리를 고3에 길들이려 한다고 생각했지만

나는 알았다.

웃다가도 문득 차분해졌고 가끔은 교정에 앉아 먼발치를 그리곤 하셨다.

휑해진 목에서 텅 빈 선생님의 마음을 가늠하곤 했다.

헤어졌구나.

그 예쁘던 여자가 무채색의 고깃덩이가 되었다.

저 표현은 그때 생각난 것이다.

저렇게 살아도 사는 것 같지 않게 살 거라면 왜 헤어졌을까.

이별의 이유를 나는 감히 짐작할 수 없었지만 그래도 이거 하난 확실히 알 것 같았다.

선생님은 괜찮지 않았다.

그리고 괜찮아지지도 않았다.






졸업을 얼마 앞두지 않은 시점에서야 선생님은 다시 그 남자 얘길 꺼내셨다.

눈치 없는 아이들이 선생님 대체 그 남자랑 결혼은 언제 하냐고

졸업하고도 우리를 꼭 결혼식에 초대해 달라고

가서 춤도 추고 노래도 불러 드리겠다고

1년 내도록 들들 볶았던 탓이었다.

사실은 1년쯤 전에 그 남자가 함께 미국에 가 살자고 했었고, 선생님은 많은 게 어려웠다고.

그때 택할 수 있는 것 중 가장 쉬운 선택인 이별을 택했다고.

그래서 결혼 계획이 당장은 없지만 하게 되면 너희들을 꼭 초대할 테니

좋은 어른이 되어있었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분명 웃으며 말했지만 웃고 있는 게 전혀 아니셨다.

장난스레 우리가 먼저 결혼해 버리는 거 아니냐고

그럼 그땐 선생님이 우리 결혼식에서 춤춰 주셔야 해요-

발랄한 몇몇이 나와 춤을 추며 말했다.

덕분에 선생님의 이별 고백이 퍽 무겁게 끝나지 않을 수 있었지만

아직도 그날이 생생히 기억난다.

그 여자의 이별 고백은 눈물 없이도 사람이 울 수 있다는 걸 알게 해 준 첫 순간이었다.







졸업 후 스승의 날이면 나는 선생님을 종종 찾아뵈었다.

스무 살엔 나의 연애사를

스물한 살엔 나의 알바사를 들려드렸고

스물두 살에는 선생님의 결혼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그렇게 예뻤던 그 여자가 드디어 다시 돌아온 것이다.

그러나 그 여자는 예전 그 여자보다 예쁘지 않았다. 아니, 예쁘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여전히 무채색의 고깃덩이였다. 이번 겨울 방학에 식을 올릴 거고, 신혼 여행지는 어디이고, 남편 직업은 뭐고, 왜 결혼을 결심했는지 한참을 떠들었지만 분명히 아니었다. 이 여잔, 그때 그 예쁜 여자가 결코 아니다.

나는 참지 못하고 남편분을 사랑하시냐고 물었고, 연이어 그때 그분은 다 잊으신 거냐고도 덧물었다. 선생님은 내 물음에 잠시 멈추셨다가, 낮게 웃으며 아직은 때가 아니라고 하셨다.

두 질문 중 어느 때가 아닌지 정확히 답하지 않았지만 남편을 사랑할 때도, 그 남자를 잊을 때도 모두 아닌 것 같았다.

헤어지고 못해도 사 년은 넘었을 때인데도

선생님도 벌써 서른 중반을 넘어가고 있었을 때인데도.

심지어 다른 이와 결혼을 앞둔 순간에조차

때가 아직은 아니라고.

스물둘의 나는 아직도 때가 아니라면 대체 그때는 언제 오는 걸까 싶었다.

선생님은 대체 어떤 삶을 살고 있는 건지, 사랑 앞에 예쁘던 그 예쁜 여자는 다 어디로 가 버린 건지, 비겁해 보였다.

뛰어들기보다는 에두르고, 연연할 바엔 돌아서고,

용기는 잃고, 겁은 얻은, 사랑은 잃고, 그리움만 안은.

내가 되고 싶지 않아 하는 어른의 전형이 되어계셨으니까.

저런 어른은 되지 말아야지-라고 생각했던 어른의 전형 말이다.

그런 내 생각이 읽혔던 건지 선생님은 몇몇 마디를 덧붙이셨다.

누구나 어른이라면 내내 그리워해야만 하는 사람들, 내내 보고파야 하는 사람들을 다만 안은 채 그냥 그런 날들을 살아내기도 해야 해. 그리고 때는 잘 안 와. 원래가 다 그래.

자신이 특별히 비겁해서가 아니라 어른이란 그런 것이며 너도 어른이니 그런 삶을 자연히 살게 될 거라는 말처럼 들렸다. 심지어는 언젠간 너도 나처럼 무채색의 고깃덩이 어른이 될 거라는 저주 같은 예언 같기도 했다.

원래가 다 그렇다니 할 말은 없었지만

그럼에도 나는 그렇게 잊지 못할 사람이라면 내던졌을 것 같고

정말 나는 이렇게 애매한 마음이라면 결혼 같은 건 안 했을 것 같았다.

선생님에 대한 실망과 원망은 당장은 드러내지 않았지만 돌아서는 길목에서부터 자기 전까지 다이어리에 빼곡 적어 내렸다.

그리고 다짐했다.

저렇게는 살지 말아야지

나는 사랑에 언제나

사랑에는 기꺼이

꼭 그렇게 싱싱한 피칠갑의 어른으로

꼭.


절대, 저런 마음으로 누군가와 만나 결혼하는 일은

정말 절대, 내 생에는 없을 거라고.

그런 단언을 얼마나 해댔는지 모르겠다.



나도 결국 무채색의 고깃덩이 어른이 될 줄도 모르고 말이다.

























2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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