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서는 엄마와 주에 한 번씩은 꼭 목욕탕엘 갔다. 그건 내가 태어나고부터 중학생이 될 때까지라, 꽤 긴 시간 이어온 우리 모녀의 주말 루틴이었다. 엄마와 나는 함께 탕에 들어가 서로의 등을 밀어주고 냉커피를 나눠마시며 모녀간의 우애를 다지곤 했었다. 그런데 문득, 엄마와 마지막으로 목욕탕에 간 게 언제였더라?-하고 떠올려보니 영 떠올려지지가 않는 거다. 매주 가던 목욕을 언제부터 가지 않았나 돌이켜 보니 그건 꽤 오래전, 내가 고등학교에 진학하고 나서부터였다.
나는 치열한 학창 시절을 보냈다. 목욕탕에서의 여유는 사치로 느껴질 정도로 치열한 학창 시절을 말이다. 전교 10등 안에 들면 학비가 무료라는 말을 듣고 얼결에 시작했던 공부였는데, 나중에는 인서울 대학에 수석 입학을 해낼 정도로 학업에만 몰두된 학창 시절이었다고 정리할 수 있겠다. 그러니 한가로이 주말에 엄마 등이나 밀어줄 시간 같은 건 없었던 거다. 목욕은 무슨 목욕이야, 책 한 자라도 더 봐야 하는데. 스무 살엔 아예 서울로 거주지를 옮겼고, 다시 아래로 돌아오고 난 후에도 엄마집으로는 돌아가지 않았다. 그렇게 자각도 못할 새, 이미 예전에 우리 모녀는 목욕 이별을 한 것이었다.
그러나 집 안 한 켠, 여전한 내 딸기 무늬 목욕바구니. 엄마는 이걸 여태 버리지도 내버려두고 있었다. 어느새 소복이 먼지가 쌓인 내 바구니 옆으로 아직도 반딱 반딱한 엄마의 목욕 바구니가 보였다. 새삼 세어보니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엄마는 홀로 목욕을 다니고 계셨다. 이제는 등을 밀어줄 딸도, 함께 탕에 들어갈 친구도, 커피를 나눠마실 동료도 없는데 말이다. 늘 함께 가던 길을 홀로 걷고 쓸쓸히 탕 속에 빠져 있는 엄마 모습이 떠올라 어딘가 시큰한 기분이 들었다.
작년 여름, 나는 혼자 살던 집을 정리하고 엄마집으로 돌아갔다. 당장은 계획이 없지만 만약 내가 결혼이라도 한다면 엄마와 함께 살 날은 정말 지금이 마지막일 거 같았기 때문이다. 집으로 들어온 날, 바로 근처 다이소에 들러 튼튼한 새바구니를 샀다. 샴푸, 린스, 오일, 워시, 그리고 때밀이 수건까지 완벽하게 준비된 목욕 바구니를 만들어 엄마와 목욕탕으로 향했다. 다시 그 옛날의 우리처럼 함께 등을 밀어주고, 냉커피를 나눠 마시고 우애를 다졌다. 긴 시간의 공백이 무색하게 우리 모녀는 그때처럼 씻고, 불리고, 밀었다. 무려 십수 년 만에 우리 모녀의 감격스러운 목욕 재회가 성사된 것이다.
그 옛날과 변한 게 있다면, 이제는 엄마가 나를 씻겨주는 시간보다 내가 엄마를 챙겨주는 시간이 더 길어졌다. 목욕비를 비롯 점심값도 다 내가 낸다. 내가 모는 차를 타고 동네를 벗어나 다른 지역의 목욕탕에도 간다. 포지션이 완벽하게 바뀌었다. 그래도 괜찮다. 계속 챙겨주고 목욕비도 내주고 운전도 할 테니까 엄마가 계속 건강만 했으면 좋겠다. 훗날 내 딸에게도 울 엄마가 목욕 방법을 알려줘야 하니까 꼭 오래오래 건강했음 한다. 언제 시간이 이렇게 흘렀는지, 울 엄마가 벌써 일흔을 바라보고 있다. 가는 시간이 아쉽고 먹먹한 걸 보니 나도 나이를 먹긴 먹은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