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엔 짤막하게 써둔 저의 잡생각들을 모아봤습니다.
이런 저런 그런 아주 다양한 생각을 하고 삽니다.
일기장, 메모장, 블로그에 끄적인 글들을 조금 모았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1.
안다. 삶은 언제나 뫼비우스고, 제로섬이고, 도돌이다. 연속된 불행도, 계속되는 행복도 없다. 이따금 처절하게 내려앉기도 또 언제 그랬냐는 듯 날아오르기도 하는 것이 우리네 삶이다. 그러니 오늘의 불행에 너무 매몰되지 않아야 하겠다. 오늘의 행복에도 너무 취하지는 않고 살아야 하겠고. 스물셋에 했던 생각에서 한치도 달라지지 않은 걸 보니 나는 여전히 그 어린 날의 나보다 조금도 성장하지 못했는가 보다. 뭐 아무렴 어때. 나이를 먹는다고 해서 꼭 그만큼의 성숙도 함께 먹어야 하는 건 아니니까. 스물 언저리의 내가 지금의 나보다 더 어른이면 뭐 어때. 그래 다 아무렴.
행복하다는 말을 이따금 뱉고 사는 요즘. 불행하다는 말이 종종 튀어나오던 때로부터 불과 한 계절 밖에 지나지 않았음은 나를 또 참 멋쩍게 한다. 허물어지던 세상 속에서 스스로를 더욱 벼랑 끝으로 몰아넣던 미련스러운 나는 어쩌면 오늘 같은 행복의 순간을 오롯하게 누릴 자격이 없는 지도 모르겠다. 스스로가 정말 행복하길 바랐던 사람이 맞아? 진짜 괜찮아지고 싶었던 거 맞냐고. 한 계절을 꼬박 괴로워하던 나는 이제야 한숨을 돌리고 인정도 한다. 나를 괴롭게 했던 건 모두 다 나였음을, 다름 아닌 내가 나의 행복을 바라주지 않고 있었음도.
2.
요즘의 저는 생생히 지내요. 생생. 갑자기 쓰고 보니 단어가 참 좋네요. 생생하다, 생생해. 생각해 보니 요즘 저 되게 생생해요. 뭐가 그리 생생하냐면요. 일단 매일 아침 예쁜 옷을 챙겨 입고 운동을 해요. 운동하는 저를 거울로 흘긋거리며 젊음과 생기를 만끽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운동 그냥 하는 거 아니고요, 진짜 빡세게 합니다. 그러고 나면 '생생'이라는 단어가 눈앞에 띄워집니다. 게임 캐릭터가 퀘스트를 완료했을 때 공중에 뜨는 그런 글씨처럼요. 툭 눌러 보상을 받고 싶어 집니다.
그리고는 언제나처럼 청소하고 밥하고 책을 봐요. 글도 물론 쓰죠. 그리고 주기적으로 일도 하고 산책도 가고 사람도 만나고 청승도 떱니다. 중간중간 자주 웃고 자주 즐거워하는 것도 절대 빼먹지 않아요. 더없이 생생한 날들이고요, 내가 이곳에 발 붙이고 '잘'살아있음이 언제나 직관적으로 목도되는 삶입니다.
말이 길었는데요, 실은 그냥 단순해요. 행복해요. 그게 답니다.
아, 덕분에요. 덕분에 행복합니다. 제 곁에 있어들 주심에 감사합니다. 언제나 제가 조금 더 잘하겠습니다.
3.
긴 글과 사투하는 날엔 되려 짧은 글로 도망치고 짧은 글에 허덕이는 날엔 외려 긴 글로 숨는다. 어떤 글도 쓸 수 없다고 느껴지면 다른 이가 쓴 글을 읽는다. 더 이상 글을 붙잡고 있을 수 없다 판단되면 그제서야 글을 놓아준다. 그리고 침대에 누워 긴긴 상념에 빠진다. 오늘 내가 했던 그 말에 대한 반성을 시작으로 하루의 끝부터 거슬러 하나씩 짚어본다. 출발도 전에 이미 아, 그래 그때 그랬음 안 되었던 건데- 하는 후회가 짚인다. 근데 그게 늘 수두룩이다. 늘, 말이다. 그러니 얼마나 알량한 반성인가. 매일 반성을 해대어도 여전히 후회가 남는 하루이니 말이다. 그렇게 한숨을 푹푹 내어 쉰다. 생각을 정리하기에 가장 좋은 건 역시 글이다 싶어 따듯한 차 한잔을 내려 다시 글 앞에 앉는다. 이때는 원고를 이어 쓰기보다 일기를 쓰거나 이렇게 낙서 같은 글을 쓴다.
4,
잠이 많은 사람으로 사는 건 상당히 불편하다.
별로 잠들고 싶지 않은 순간에도 어느새 잠에 취해있다.
깊게 자놓고선 또 자고 또또 잔다. 근데 그래야 살아진다.
달리 말하면 잠이 줄거나 부족하면 못살아진다는 말이다.
스트레스를 받는 순간엔 웬갖 잠이 다 달아나버리는데 정말 죽을 지경이 된다.
안 그래도 스트레스에 미치겠는데 잠까지 못 자니 지옥이 따로 없다.
그러니 모쪼록 힘든 일 없이 잘 살아야 하는데 삶의 주도권이 꼭 내게만 있는 것은 아닌지라.
나 잠 좀 잘 자게, 이제는, 정말 이제는 나를 좀 제발 힘들게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빠도.
당신도.
그리고 그 많은 것들도 이제는 나를 좀 놓아주면 좋겠다.
나는 자유롭게 살고 싶다.
그간 많이 바빴던 인생, 이제는 좀 쉬어가려 하니 내 뜻도 조금은 따라주시고 나를 조금은 가여히 여겨주시면 참 좋겠다.
찡찡거릴 재간은 영 부족하여 이만 줄이겠다.
5.
폭싹 속았수다에서 금명이가 영범이를 보내며 그랬다.
내 20대를 기억해 줄 사람이 너라서 참 다행이라고.
영범이는 아무도 없는 서울에서 가족이고 친구고 연인이었다고.
내게도 그런 사람이 있었다. 혈혈단신인 내게 세상 모든 것이 되어준 고마운 사람들이 있었다.
덕분에 팍팍한 서울 살이를 잘 버텨냈었다.
내내 옹졸하고 작았던 탓에 고맙다는 인사를 이제야 할 수 있을 것 같다.
우리 모두 어렸고 어리석었고 그때 그런 이별도 사랑도 다 처음이라 서로에게 얼마나 서툴렀니.
그땐 미안했고 그리고 그땐 또 고마웠어.
잘 지내지?
잘 지내길.
6.
미워하는 마음보다는 사랑에 아픈 게 낫다는 게, 스물셋 이후 내가 내린 이별 지론이다.
헤어진 이의 저주를 빈다 거나, 문득 마주친 그에게 자존심 세워 냉담하는 일은 당장은 씩씩해 보일 수 있다.
이별자를 걱정하는 이들에게도 꽤 보여주기 좋은 안심일 테다. 사랑의 반대는 미움이니.
하지만 사람은 무가 아니고 나도 사람이라 무가 될 수 없다. 내가 아무리 대문자 T인간이래도, 사랑은 싹둑 칼로 썰어내 댕강 잘려나가지 않아서, 실은 죄다 어거지였다. 보이는 것과 마음은 늘 가장 반대에 있었다. 그걸 나만 알고 있는 것은 덤이었고.
겨우 겨우 버텨내다 간헐적으로 무너지기도 했다. 다시 간신히 일어나 바짝 미움을 곧추 세워도 이내 사랑을 포함한 이별의 모든 정서가 물밀듯 밀려와 나를 살지 못하게 했다. 차라리 처음부터 울고, 아프고, 감정을 다 쏟아냈었다면, 무너질 때 확실히 무너졌었다면. 이별에 자존심 같은 거 세우지 말고, 헤어짐 앞에 남기는 마음 같은 거 두지 말고, 그렇게 사랑에 열심히 아팠다면.
그랬다면, 나는 그 애를 그렇게까지 애달파하진 않았을 것 같다.
모든 것이 다 사라진 지금에도 그때의 내가 참 처절하게 기억되지도 않았을 거 같고.
없는 힘을 어디서 그렇게 끌어 와서 웃어댔는지.
있지도 않은 미움을 대체 어디서 데리고 와서 쏘아댔는지.
자존심 그게 뭐라고, 걱정 끼치고 싶지 않은 이타심이 뭐 그리 대단하다고.
그래서 나는 어차피 무너질 거 완전 무너져버리기로 했다. 그런 이별 앞에 놓이면 퓨즈를 죄다 끊어놓기로 다짐도 했다.
뭐 어때.
한 번뿐인 인생 그런 멍청한 짓도 하면서 사는 거지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