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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름달 Nov 15. 2022

나는 왜 책을 읽을까?

우리를 향한 타인의 보살핌


10년 전쯤 ‘문학의 힘’이란 주제로 작성한 학교 과제가 있었다. 오래전에 썼던 이 글을 다시 꺼내보면서 내가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이유에 대해 다시 생각해봤다.




우리는 단 하나의 시선을 가지고 살아간다. 내가 태어난 곳에서, 몇 안 되는 사람들과 만나고 헤어지며, 내게 일어난 사건만이 나를 스치며 지나간다. 내 주변의 작은 세상을 전부라 여기며, 지금의 생각과 느낌이 가장 절대적이라고 믿는다. 그렇게 쌓아온 나만의 세상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강력해져 나는 결국 내가 만든 세상에 갇힌다.

타인의 목소리(책)는 그 세상을 깨고, 밖으로 나올 수 있는 힘을 부여한다. 타인의 생각을 통해 나의 시선, 나의 감정, 나의 생각은 더 넓은 세상으로 인도된다.

나의 시선을 넓혀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작가는 김 훈이다. 그의 더하거나 뺄 것이 없는 글. 과장 없고, 수식어가 붙지 않아 매끈하고 날렵한 글이 좋다. 그의 수필과 소설을 읽으면서, 내가 가졌던 이 작고 좁은 시선을 조금씩 넓혀갈 수 있었다. 김 훈 작가의 많은 글 중에 내 시선을 강력하게 바꾼 <기다려라 우리가 간다>를 소개해주고 싶다.


도심을 뒤흔드는 소방차의 사이렌 소리는 다급하고도 간절하다.
질주하는 소방차의 대열을 바라보면서 나는 늘 인간과 세상에 대해서 안도감을 느낀다.
인간만이 인간을 구할 수 있고, 인간만이 인간에게 다가갈 수 있으며, 인간만이 인간을 위로할 수 있다는 그 단순 명료한 진실을 나는 질주하는 소방차를 바라보면서 확인한다.
달려가는 소방차의 대열을 향해 나는 늘 내 마음의 기도를 전했다.
살려서 돌아오라. 그리고 살아서 돌아오라.

김 훈 <바다의 기별 中 기다려라 우리가 간다>


이 글을 읽기 전, 소방차를 바라본 나의 시선과 생각은 어땠는지 떠올려봤다. 도심 한복판에 울리는 사이렌 소리에 흠칫 놀랐고, 잇따라 선 소방차 수로 재난의 크기를 판단하며, 막연한 걱정과 불안함에 사로잡혔다.

그러나 이 글을 읽고 난 후, 소방차 행렬을 보면 이전엔 느끼지 못했던 생각과 감정에 가슴이 뭉클해진다. 이제 소방차를 보면 사고의 두려움보다 인간에 대한 인간의 사랑, 그 인류애를 먼저 떠올린다. 타인을 위해 전력을 다한 질주를 보며 인간과 세상에 대한 건재함을 느끼고 안도한다. 숨 가쁜 소방차 뒷모습을 바라보며 귓가에 크게 울리는 사이렌 소리에 나의 응원의 목소리를 함께 태워 보낸다. 그리고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누군가를 위해 기도한다.


‘살려서 돌아오라. 그리고 살아서 돌아오라!’


책은 내가 가진 시선의 한계를 타인을 통해 넘어설 수 있게 한다. 책의 힘을 믿는 사람들 그리고 그 힘을 실제로 경험한 사람들은 자기만의 세계를 깨고 나와 새로운 시선과 세상을 가질 수 있다. 우리를 향한 타인의 보살핌은 글 속에서 오랜 시간을 살아남아 당신에게 닿기를 고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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