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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재능에 대하여

계란 후라이가 돼도 나쁘진 않겠다

by 보름달


징글징글한 장마가 지나가고 폭염이 화살처럼 지면에 내리 꽂힌다. 오늘은 밖에서 내다 팔 던 계란이 폭싹 익을 날씨다


<계란을 스스로 깨고 나오면 병아리지만, 남이 깨 주면 계란 후라이 밖에 안 된다>는 우스갯소리가 생각난다

센스 있는 농담에 피식하려던 찰나 올라간 입꼬리가 이내 정적이다


이 자그마하고 애매한 나의 재능은 처치곤란한 유정란과 닮았다. 관심을 기울여 잘 키워야 하는 걸까? 뜨뜻미지근한 정성과 시간을 끊고 다른 곳에 몰입해야 하는 걸까?

애초에 무정란이라 생각하고 살면 그만 일 것인데 애정으로 품어온 유정란이라 결정이 그리 간단치 않다.


그러고 보니 내 재능이 유정란이라는 증거가 있나? 어차피 병아리가 되는 게 아니라면, 무정란이나 유정란이나 똑같은 결말이 아닌가 싶다가

<가능성과 애정의 차이가 있다면 다르지> 하며 데구르르르 굴러가는 알을 끌어안아 품는다.


무한정 기다릴 수도 방치할 수도 없는 알 품기는 문득 잊고 있던 가스불이 생각난 사람처럼 두려움과 자책의 연기를 피운다


내 재능은 병아리가 될 상인가? 후라이 될 상인가? 처치 곤란한 흰 코끼리 같지만 우선 판단보류다

계란 후라이가 되면 또 어떤가? 단백질 가득한 영양만점 후라이. 다시 생각해 보니 계란 후라이도 나쁘지 않다. 깨든 깨지든 그대로 곯는 것보단 낫겠다.


똑똑똑! 안녕 거기 잘 있니?

아직 병아리가 되지 못해 의심과 관심으로 품어온 나의 작은 유정란아

사실 이건 엄청난 스포인데 병아리가 돼도 그게 끝은 아니란다.

마당을 나온 암탉이 될 수도 있지만 치킨이 될 수도 있어

그러니 이것저것 눈치 보지 말고 너만의 시간에 너만의 모습으로 나오면 된단다.


노릇노릇 익어가는 영양만점 후라이가 되든

총총총총 마당을 노니는 노란 병아리가 되든

너는 나에게 여전히 작고 소중한 알일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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