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명 이모

故 손영희 여사를 추모하며

by 노완동

나의 큰 이모 호칭이다. 친족 호칭 앞에 사는 지역명을 붙이는 건 지금도 왜 그런지 궁금하지만 실제로 만나 부를때 호명 이모라고 불러본 적은 없는 거 같다.

어머니쪽 남매들은 유달리 우애가 깊어 자연스럽게 이종사촌간의 왕래도 잦았다. 어릴적 여름방학을 하면 경북 영천의 외갓집에 가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는데 가는 길이나 오는 길 중간에 있는 호명 이모집(경주 강동면 호명리)에 들러 며칠간 묶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호명 이모집도 시골이지만 정말 깡촌인 외갓집에 비하면 가게도 있고 차도 다니는 소위 말해 신식 시골이었는데 돌아가신 이모부는 거친 경상도 사나이가 모여있는 외가 모임의 중재자 같은 역할을 하셨고 호명 이모는 신식 시골과 달리(?) 그야말로 전형적인 시골의 아낙네였다.

나는 “아이고~ (다른 애들이) 별나다, 별나다해도 버미에 비하면 양반이지”란 소리를 듣는 말썽꾸러기였는데 호명 이모는 그 어떤 사고를 치고 들어와도 크게 야단치는 법이 없었다.

다정한 애정표현도 없고 맛있는 것을 따로 챙겨주는 것도 없었지만 “우리 버미~ 왔나” 이 한마디면 충분했다. 성인이 되고 가족 모임에서 호명 이모네 식구에게 큰 실수를 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도 호명 이모는 나에게 따로 원망하신 적이 없었다.

나이가 들어 허리가 굽고 무릎이 아프다면서도 일하는 게 제일 좋다고 매일 밭일과 온갖일을 하시던 호명 이모. 집안 행사가 있으면 알록달록한 한복을 입고 나타나던 시골 할머니. 어처구니 없는 이름을 가진 어머니와 둘째 이모와 달리 ‘영희’란 고운 이름을 가진 나의 큰 이모.

부디 평온속에서 편히 쉬시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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