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과만이 성과가 아니다

위안부 피해자 문제와 사드 배치 논란을 보며

by 노완동

예전에 다니던 회사는 HQ(본부)의 성격을 띠고 있어서 외부인력 충원이 빈번하게 있었다. 우수 인재들 영입이야 좋은 것이지만 외부 인력은 와서 성과를 내어야 하기 때문에 기존 프로젝트나 시스템을 비판적으로 보기 마련이었다. 사실 내부 인력의 역량 부족 혹은 관성 때문에 해결되지 않는 일들이 많았기 때문에 일견 타당한 문제의식이기도 했다.


문제는 굳이 성과를 낼 필요가 없는 일들에 해결책을 내는 경우였다. 양측의 입장이 너무나 팽팽해서 어느 쪽으로 해결을 내던 반발이 있을 수밖에 없고 심할 경우 기존의 문제가 오히려 확대되기 일쑤인 문제들이었다. 오랜 역사와 복잡한 맥락을 보지 못하고 표면적으로 드러난 이슈에만 집중한 결과였다.


모든 외부 인사들이 그런 건 아니었지만 그런 사람들의 공통점은 성과를 강조한다는 것이었다. 좀 심하게 말하면 눈에 보이는 결과가 없으면 불안해하고 해결되지 않는 문제는 절대로 없다고 믿는 쪽이기도 했다. 가장 최악은 해당 분야를 잘 모르고 자기가 알던 가치나 방법으로 강행하는 경우였다. 그때는 정말 일이 가관도 아니었다.




위안부 문제로 일본이 정식으로 사과를 한다는 기대는 정말 순진한 발상이다. 전 세계적으로 우파들의 영향력이 넓어지는 가운데 신사 참배 조차 대놓고 하는 일본에서 위안부 문제를 공식적인 사과로 해결할 필요는 전혀 없다. 게다가 위안부 피해자들이 모두 세상을 등지는 경우 어영부영 넘어가기 더 좋은 상황이 오는데 말이다.


우리 입장은 너무나 다르다.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 언제 돌아가실지도 모르고 일본을 힘으로 압박할만한 국력도 부족하다. 친일청산이란 말을 구태로 몰아가는 세력도 존재한다. 명백한 사실임에도 불구하고 모른 척하는 하는 일본이 꼴 보기 싫고 얄미울 수밖에 없다.


사드가 우리 안보에 얼마나 필요한가에 대한 논의도 중요하지만 그에 앞서 중국은 왜 그토록 반대하고 미국은 오매불망 기다리는 이유가 뭔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당연히 자국의 이익과 배치되거나 부합되기 때문에 그러는 것이다. 이전 정권에서 계속 모호한 입장은 취한 것은 결정하기 어려워서가 아니라 하지 않는 것이 우리에게 유리해서는 아닐까.


북한의 핵 위협은 언제나 우리에게 최우선 순위가 될 수밖에 없고, 작대기 하나도 더 가지고 있으면 좋을 것이고, 가장 오래되고 믿을만한 우방이 미국인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사드 배치가 가장 최선의 방책이다란 논리는 너무나 헐겁다. 경제적으로 밀접한 중국이 반대를 해서 하면 안 된다는 논리 역시 단편적이다.




모든 일에 결과가 있어야만 성과가 나는 것은 아니다. 때론 과정 자체가 성과인 경우도 있고 성과를 얻지 못할 수도 있다. 그렇다고 억지로 결과를 내면 - 본인들은 성과라고 주장하고 싶겠지만 - 오히려 역효과가 훨씬 클 수 있다.


마지막으로 피해 보상금은 잘못을 인정하고 정식으로 사과를 하면 부수적으로 따라오는 것이지 돈 자체가 어떤 의미를 가지거나 무엇을 상징하진 못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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