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살아 있는 공부

탄핵의 밤 대화

by 노완동

평범한 사람들이 그러하듯 며칠 동안 허탈하고 분노에 찬 시간들을 보냈다.


고교 야구부에 진학하는 조카 녀석에게 줄 글러브를 미끼로 막내 동생 식구들을 불렀다.

스포츠를 모르는 아내는 오겠냐고 했지만 자고로 장비빨은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잘 통한다.


근처에 살지만 한 번도 갈 생각을 하지 않았던 수원 통닭거리에 유명한 집에서 저녁을 먹기로 했다.

한참을 기다린 끝에 후라이드와 양념통닭이 나오고...

거의 동시에 탄핵이 가결되었다는 인터넷 뉴스를 막내 동생이 알려준다.


--

초등학교 4학년 조카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질문을 던진다.


“큰 아빠, 탄핵이 되면 감옥에 가는 거예요?”


“아니야, 탄핵이 가결되었으니 헌법재판소에서 인용이 되는지 지켜봐야지.

하지만 대통령은 그 즉시 직무가 정지돼”


“잘못한 것이 있다면 감옥으로 가야 하는 거 아니에요?”


“국회의원들은 대통령을 하지 못할 정도로 잘못했다고 생각해서 탄핵을 했지만

감옥에 가는 건 계엄에 대한 법원의 판결이 있어야 하겠지”


“계엄을 맘대로 했다고 하던데요?”


“맞아, 계엄도 헌법에 정해진 대로 행사해야 하는 것이고

윤석열은 마음대로 했지만

그것을 처벌하는 우리는 법을 지켜가면서 해야 하는 것이야”


“그러면 시간이 걸리겠네요?”


“그렇지, 원래 민주주의는 시끄럽고 오래 걸리는 법이야.

시끄러워서 못하겠다고, 시간 끌 거 없이 그냥 해 버리자고 하면 이런 사태가 발생해”


--

듣고 있던 큰 조카가 또 다른 걸 물어본다.


“탄핵이 되어서 이재명 대표가 대통령이 된다고 하던데요?”


“될 수도 있겠지만 탄핵이 인용되고 다시 선거를 치르기까지 아직 시간이 남아 있어”


“대통령이 되면 감옥을 안 갈 수 있기 때문에 빨리 한다고...”


“지금 현직에 있었던 대통령도 법을 어겨서 자리에서 내려오라고 하는데

만약 죄를 지었다면 감옥을 가야지 어디를 가겠냐”


“형욱아, 훌륭한 야구선수라도 법을 어기면 경기를 뛸 수 없고

아무리 높은 위치에 있다고 해도 법을 어기면 선거에 나갈 수 없는 거야.

대통령은 이쪽 아니면 저쪽이 아니라

적합한 사람을 뽑을 수 있도록 우리 모두가 눈을 똑바로 뜨고 있어야지.”


조카들이 언제 이만큼 컸냐는 감상에 빠지려고 하는 순간, 막내 동생이 한 마디 던진다.


“계엄해서 좋은 것이 딱 하나 있구먼. 이거야 말로 산 역사 공부가 아닌가”


- 2024년 12월 14일 토요일, 탄핵이 가결되던 저녁의 대화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