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동거사 MLB I 2026 WBC 대한민국 대표팀 결산
WBC(월드 베이스볼 클래식)는 월드컵이나 올림픽 같은 여타 메가 이벤트와는 태생부터 궤를 달리한다. 해당 종목의 국제기구가 주관하는 순수 국가 대항전이라기보다 메이저리그 사무국과 선수협회가 주도하는 철저히 설계된 상업적 무대에 가깝다. 야구의 세계화라는 목표는 말 그대로 전 세계에 유망한 상품인 메이저리그 야구를 파는 것이다.
모든 나라에 프로 리그는 없지만 혈통까지 따져 대회를 치를 수 있는 참가국을 만드는데 이 과정에서 세 가지 정도로 분류해 볼 수 있다.
첫 번째는 미국, 일본, 도미니카공화국처럼 국가 정체성을 걸고 우승을 노리는 유희의 장으로 즐기는 나라들로 최상위 포식자들이다.
두 번째는 자국 리그는 없지만 MLB 베이스 선수들로 팀을 꾸린 이탈리아, 체코 같은 국가들이다. 이들은 대회의 구색을 맞추고 시장의 외연을 넓히는 마케팅 대사 역할을 한다.
마지막으로 한국, 대만 그리고 일본이다. 독자적인 프로 리그를 운영하는 이들에게 WBC는 자국 리그의 자존심이 걸린 시험대이자 선수들이 빅리그라는 더 큰 시장으로 진출하기 위한 오디션장이다. (물론 일본이 양쪽에 모두 걸치고 있는 것처럼 자국 리그가 있는 곳은 비슷한 성격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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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년 만의 8강 진출은 철저한 준비 속에 거둔 성과라는 점에서 분명 칭찬해야 마땅하다. 그리고 도미니카전에서 당한 0-10 콜드게임 패배는 순수 실력에서 밀린 결과다. 이는 감정적인 질책보다는 한국 프로야구의 현실을 냉정하게 바라보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상대적으로 좋은 평가를 받은 젊은 타자들의 경우도 짚고 넘어가야 할 지점이 있다. 메이저리그의 에이스급 좌완 크리스토퍼 산체스는 컨디션이 좋은 날이면 빅리그 타자들도 꼼짝 못 할 구위를 가졌다. 헛스윙률 58%라는 데이터가 이를 증명한다. 다만 산체스가 인터뷰에서 기억에 남는 한국 타자를 묻는 말에 원론적인 칭찬으로 대신했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그가 한국 타자들을 아주 편안하게 상대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는 좋은 구위를 가진 곽빈 선수가 존에 공을 제대로 넣지 못한 것과 대조된다.
김도영, 안현민, 문보경 등 젊은 타자들은 메이저리그급 공을 외야로 보내며 타격 능력만큼은 합격점을 받는 듯했다. 그러나 현재 MLB에서는 타격 하나만으로는 살아남을 수 없다. 오타니나 슈와버 급의 압도적 장타력을 갖추지 못했다면 수비와 주루는 필수적이다. 미국 현지에서 우리 선수들에 대한 기사가 많지 않은 것은 다 이유가 있는 법이다.
사실 진짜 메이저리그 투수들이 즐비한 2라운드는 1경기에 그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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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수진의 경우, 단순히 류현진처럼 던지지 못해서 무너진 것인가? 우리의 젊은 투수들이 뿌리는 150km대의 강속구는 도미니카 타자들에게 마치 배팅볼처럼 보일 정도였다. 구속도 평범했고 구위마저 가벼운 상황에서 제구력만으로 상대를 제압하기엔 한계가 명확했다.
중요한 것은 지금부터다. 또다시 연습량과 제구력 타령만 한다면 해법은 나오지 않는다. "구속이 없어도 제구력만 갖추면 된다", "제구가 좋지 않은 건 연습 부족 탓"이라고 말하는 이들은 사실 자신들이 가진 밑천이 연습을 시킬 권리밖에 없다는 사실을 자인하는 것과 같다.
구속이든 제구력이든 무작정 많이 던진다고 느는 투혼의 산물이 아니다. 과학적인 메커니즘과 데이터 기반의 연구와 훈련이 경기력을 향상시킨다는 것은 멀리 미국까지 갈 것도 없이 이웃 일본만 봐도 알 수 있다
WBC 같은 국제 대회 성적이 없어도 관중 1,000만이 넘어가니 KBO의 미래가 밝다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이 흥행이 오로지 야구가 재미있어서인지 아니면 여러 환경 변화에 따른 결과인지를 냉정하게 바라봐야 한다.
누군가에게는 쇼케이스였겠지만 KBO 리그 전체에는 우리의 경쟁력을 체크해 보는 뼈아픈 계기가 되어야 한다. 결과에 대한 아전인수격 해석과 처방을 반복한다면 우리는 또 다른 콜드게임의 희생양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