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놀이가 서사가 되는 순간

완동거사 MLB I 베네수엘라의 우승이 남긴 것

by 노완동

2006년 WBC가 첫발을 뗐을 때 사람들의 시선은 대체로 냉소적이었다. 메이저리그(MLB) 사무국이 주도한 이 대회는 '야구의 세계화'라는 거창한 구호를 내걸었지만 이면에 마케팅 목적이 너무나 선명하게 보였기 때문이다.


비시즌에 열리는 탓에 부상을 우려한 구단들은 주전급 선수들의 차출을 막았고 슈퍼스타들은 애국심보다는 시즌 준비를 우선시했다. 당시의 WBC는 축구 월드컵의 그림자조차 밟지 못한 채 MLB의 확장판 연습 경기라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이번 대회 우승 직후 베네수엘라 선수들이 시상대 위에서 국가를 제창하며 흘린 눈물은 이 대회의 성격을 완전히 바꿔놓을 것 같다. 비판론자들은 여전히 WBC의 촘촘한 상업적 설계를 지적한다. 투구 수 제한, 변형된 대진표, 그리고 특정 국가의 흥행을 고려한 일정 배치까지. 분명 이 대회는 자본의 논리에 의해 정교하게 세공된 상품이다.


하지만 상품을 작품으로 만든 건 결국 선수들의 진정성이었다. 억만장자 몸값의 슈퍼스타들이 단 한 번의 승리를 위해 몸을 던지고 시상식에서 눈물을 쏟는 모습은 연출될 수 없는 서사다. 상업적이라는 비난은 역설적으로 이 대회가 그만큼 거대한 자본이 흐를 만큼 매력적이라는 증거이며 그 자본을 움직이는 동력이 결국 선수의 눈물에서 나온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 되었다.


WBC의 진화 모델은 명확해 보인다. 미국 내 스포츠이지만 단일 이벤트로 최고치에 도달한 NFL 슈퍼볼의 상업성과 전 세계를 열광시키는 월드컵의 국가적 결집력을 결합하는 것이다.


과거 스타들의 외면을 받았던 시절을 지나 이제는 오타니 쇼헤이나 베네수엘라의 영웅들처럼 대회의 위상을 스스로 높이는 아이콘들이 등장했다. 이들의 참가는 단순히 경기력의 상승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 대회는 진지하다"는 선언이자 야구라는 종목이 가질 수 있는 국가 대항전의 가치를 증명하는 보증수표가 된다. 이 단계에서 상업적 성공은 목적이 아닌 진심의 부산물로 치환된다.


베네수엘라의 우승과 그들이 보여준 뜨거운 드라마는 WBC를 향한 모든 냉소를 잠재우기에 충분했다. 초기 메이저리그의 무관심 속에서 태어난 이 아이는 이제 자본과 명예가 가장 치열하게 충돌하는 세계 최고의 무대로 성장했다.


상업적이란 비판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하지만 시상식에서 울려 퍼지는 국가를 따라 부르며 눈물 흘리는 선수들이 있는 한 WBC는 멈추지 않고 한 걸음 더 나아갈 것이다. 단순한 공놀이나 영리한 마케팅 수단을 넘어 세계인의 심장을 뛰게 하는 가장 강력한 서사가 되었기 때문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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