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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정엽 대만은 지금 Feb 23. 2021

타자화될 수 없는 관종에 대한 사색

대만 인터넷 스타 트랜스젠더, "임신 12주... 인간실험 참여"


대만에서 어처구니없는 세기의 대뉴스를 접하면서 관종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됐다. 나는 그냥 관심받고 싶어 남들의 주의를 끄는 행동을 하는 사람들을 두고 관종이라고 부른다.


관종은 관심종자의 준말로 사전에서 그 의미를 찾아보니 “일부러 특이한 행동을 하여 다른 사람들에게 관심을 받는 것을 즐기는 사람을 속되게 이르는 말”이란다.


내 주변에서 관종이라고 생각되는 지인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또한, 나도 과거 수년 전에는 관종이었던 것 같다. 나도 한 때 사람들의 관심을 즐겼고, 고마워했지만 특정 사건들을 계기로 관심이 부담스러워지기 시작했다. 그 뒤로 연예인이나 정치인과 같은 대중들 앞에 나서야 하는 직업은 기본적으로 멘틀(menta)이 엄청 강해야 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내게 이 단어를 팍팍 떠올린 이가 있으니 바로 대만에서 왕훙(網紅, 인터넷 스타)으로 꼽히는 트랜스젠더 왕야오다. 그는 자신이 “임신 12주가 됐다”며 일주일간의 음력설(춘제) 연휴가 끝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뜬금포를 날렸다. 대만은 우리나라에 비해 소위 LGBT라 불리는 성소수자에 대해 개방적이다. 동성결혼도 아시아 최초로 합법화됐다.


여성스러운 외모와 성격을 가진 왕야오는 2017년 태국으로 날아가 성전환 수술을 받았다. 그는 그 뒤 풍만한 가슴과 날씬한 몸매로 많은 대만인들로부터 여성보다 다 여성스럽다는 찬사를 받기도 했다. 또한 그는 자신의 SNS를 통해 섹시함을 과시하기도 하고 때로는 남자 친구와 알콩달콩한 모습들을 담은 사진들도 게시해왔다.


그러던 왕야오는 지난 2월 18일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자신이 자주 외출을 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 임신을 했기 때문이라며 병원 초음파 사진 및 배꼽 사진을 올렸다. 초음파 사진 속에는 아기가 뚜렷하게 보였다.


이에 대해 많은 네티즌들은 자궁 없이도 임신이 가능하냐며 왕야오의 임신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  


그러자 그의 남자 친구가 구원투수가 되어 말을 던졌다. 남자 친구는 실제로 관련 연구를 하고 있는 의사를 만날 기회가 있었다며 ‘인체실험’을 실시 중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한술 더 떠 비용은 비싸니 공개할 수 없다면서 시험관 이식 방식을 이용했으며 정자는 자신의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자신의 여자 친구 왕야오가 올해 복강 초음파 검사를 3차례 받았다며 임신을 위해 배에 구멍을 뚫었다고 강조했다. 이후 왕야오의 임신 소식이 급속도로 퍼져나갔다.


https://nowformosa.blogspot.com/2021/02/12.html



어처구니없는 소식을 접한 대만 의료인들은 왕야오가 대중을 기만했다고 했다. 대만의 한 의사는 자궁과 난소 없이는 임신이 불가능하며, 인체실험을 할 경우 별도의 기관 및 부처의 승인이 필요할 뿐만 아니라 의료보험도 피실험자에게 부담시키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대만 산부인과의학회 회장도 인간 임상실험이 있다는 것은 확인되지 않았으며 왕야오가 올린 초음파 사진은 복강이 아니라 자궁이라고 일갈했다. 그는 이어 대만에서는 자궁 없는 이식 사례가 없을뿐더러 발생할 수 없는 일이라고 덧붙였다. 거짓말을 했다는 것이다.


보건복지부 격인 대만 위생복리부의 차장(차관)은 “과거 같았으면 그런 거짓말을 하면 화형에 처해버렸을 것”이라며 왕야오가 환상에 빠져있다고 십분 강도 높게 비판했다. 미쳤다는 말을 하고 싶었지만 공개석상에서 인내심을 발휘한 발언으로 느껴졌다.


연이어 가오슝시청 위생국, 왕야오가 검사를 받았다는 병원까지 모두 기자회견을 열었다. 내용은 한결같이 그런 적 없다고 말이다. 심지어 가오슝시장도 나섰다. 인체실험법 관련 조항 위반이라며 조사를 벌이겠다고.


https://nowformosa.blogspot.com/2021/02/12_21.html



왕야오와 그의 남자친구는 임신을 가지고 관심을 끄는 데 제대로 성공했다. 대부분 대만 언론사 사이트 상단 주요 뉴스 및 핫한 뉴스에는 이들 관련 이야기로 도배됐다. 나는 ‘이들이 사회적 영향력이 없는 존재였다면 가능했을까?’라는 질문을 던지며 이들의 뉴스를 보던 중 ‘이들은 타고난 겁 없는 관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무엇이 이들을 이렇게 만들었을까라는 의문도 들었다. 조횟수? 명예? 돈? 부모? 트라우마?


대만 유명 트랜스젠더 왕야오를 비난하고자 하는 마음은 전혀 없다. 남자로 태어난 그는 어쩌다 트랜스젠더 수술을 받았고 어쩌다 임신했다는 말까지 하게 됐는지 궁금해졌다. 그가 최근 보인 SNS에서의 모습은 나에게 이런 말을 던지게 했다.


“당신은 ‘관심’ 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지금도 그 관심받고 있지요.”


사회적 동물인 사람은 누구나 관심받고 싶어 한다. 또한 이는 어릴 적부터 보이지 않는 집착의 형태로 나타나기 마련이다. 이러한 관심은 사회의 최소 단위인 가정으로부터 비롯되기 마련인데, 어쩌면 부모의 관심 부족이나 관심 과다로 인해 관종이 탄생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릴 적 부모의 관심이 부족하면 관심을 끌려고 행동한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관심을 얻는 데 실패하거나 부모에 꾸지람을 듣는다면 이는 가슴속 상처로 남아 성인이 된 뒤에도 이를 충족시키고자 하는 욕구가 남아 있을 것이다.


반면, 부모의 관심을 지나치게 많이 받고 자란 아이는 성인이 돼서도 주변인들로부터 어릴 적 부모로부터 느낀 관심 이상을 기대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아이는 타인의 관심에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관종들이 가장 부담 없이 관심을 이끌어낼 수 있는 공간은 온라인이며 최근 스마트폰, 인터넷 및 SNS의 발달로 관심을 이끌기가 훨씬 수월해 젔다.


전화선을 이용한 2400bps 모뎀으로 PC통신을 시작한 수십 년 전 나는 파란색 바탕의 이야기라는 도스용 통신 프로그램으로 천리안, 하이텔 등의 피시통신 서비스를 이용한 적이 있다. 그때는 디지털카메라 자체가 없던 시절에 필름 카메라로 사진을 찍어 사진을 인화해야 했다. 또한 사진을 파일로 만들기 위해서는 꿈의 기계인 스캐너가 필요했고, 이러한 기계는 컴퓨터 전문가가 아닌 이상 우리 집 같은 평범한 가정에서 구입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다시 말해, 피시통신은 모두 문자로 이루어졌다. 상대방의 관심을 끌었다고 판단되는 지표는 댓글이었다. 또한 이모티콘으로 서로의 기분을 나타냈다. ^.^; 이렇게 말이다.


당시에도 관종이 존재했다. 상대방을 이유 없이 비방하거나 악성 댓글을 다는 행위가 대표적이었다. 이들은 자신의 행위 뒤에 따라오는 타인들의 반응을 즐겼다.


현재에는 비방이나 악성 댓글보다는 SNS에서 자기만의 공간을 만들어 타인들의 관심을 끌고자 한다. 또한 3G 통신기술에 1인 1 스마트폰 시대에 접어들면서 사회적 파급력은 시공을 초월하게 됐다. 그렇다 보니 관종들의 숫자로 늘고, 종류도 가지각색이다.



관종은 병일까? 관심종자라는 단어가 유행하기 전에는 관심병이라는 말도 있다. 일종의 정신병 같은 느낌이 든다. 관종이라고 해서 병이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겠지만 뭐든지 지나치면 병이 되는 법이다. 지나치다는 정도에 있어서 그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적어도 SNS를 통해 지나치다고 생각되는 사람들의 공통적인 특징이 보인다.


1. 강한 자기애의 소유자

관종은 나르시시스트일까? 어느 정도의 자기애가 있어야 한다. 나 자신을 스스로 만들어 나가고 자존감을 키워 간다는 측면에서의 자기애는 긍정적인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소위 나르시시스트처럼 자신의 외모나 능력의 일부를 가지고 자기 자신이 남들보다 우월하다고 믿는다. 그렇기에 이들은 타인의 처지나 입장보다는 자기중심적으로 세상을 보고 판단한다.


2. 연극성 성격 장애

관종들은 연극성 성격 장애의 모습을 보인다. 연극성 성격장애를 지닌 사람의 경우 지속적으로 관심의 중심에 본인이 있어야 한다. 또한 그 중심에 서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다. 그렇지 못하면 우울함이나 공허함 등을 느낀다. 이들의 겉모습은 활기 넘치고, 적극적이고 열정적이다. 심지어는 성적으로 도발적인 옷차림 등을 선호한다. 이들은 감정 변화가 빠르고, 그 감정을 지나치게 과장되게 표현하는 경향이 있다.


3. 허언증

관종들은 관심의 중심에 서야 하기에 사실보다 과장되거나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로 꾸미기도 한다. 자신이 거짓으로 허풍을 떨었다고 의식을 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거짓말이 거짓말을 낳다 보면, 그 과정에서 본인이 한 거짓말을 진실로 믿어 버리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본인이 왜곡한 일을 사실로 믿어버리기 때문에 거짓말을 했다는 죄책감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이들의 거짓말이 탄로 나면 화부터 내며, 부정하는 경향이 있다.


4. 경계성 성격 장애

관종들은 버림받는 것을 두려워한다. 이에 대해 지나칠 정도로 집착하는 경향을 보이기도 한다. 경계성 성격 장애의 특징이기도 하다. 관심을 받지 못할 경우 외로움, 고독, 공허감을 뛰어넘어 관심을 주던 사람들에 대한 배신감과 실망을 느끼기도 한다. 특히, 관심을 주던 사람과의 관계에 대해 실제보다 더 끈끈한 관계로 여기는 사람일수록 이러한 감정은 더욱 크다. 또한 이들은 자신에 대한 거절 또한 받아들이기 힘들어한다. 버려지지 않기 위해, 거절당하지 않기 위해, 이들은 끊임없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관심을 유도하고자 한다.



대만 뉴스를 보다 생각한 관종의 특징은 어느 정도 상식을 넘어선 사람에 대한 것이다. 사실, 관심받고자 하는 욕망은 인간의 본능이다. 관종에도 관심을 유도하고자 하는 방식에 따라 여러 종류가 있다. 또한 관종이 사람들로 하여금 관심을 이끌어 내며 사회적인 순기능을 한다면 참 좋겠다 싶다. 관심 끄는 일이 최우선인 관종이라면, 사회적 해악을 끼쳐도 죄책감을 느끼지 못한다. 염치 따위는 이미 개나 줘 버렸으니까.


관종이란 단어는 타자화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지금 내가 글을 쓰는 것도 어쩌면 무의식 세계에서 관심을 받고자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냥 글이 쓰고 싶어서 쓰지만, 솔직한 심정으로 단 한 명이라도 내 글을 읽고, 잠깐이나마 생각해보는 시간을 갖는다면,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 다시 나는 나 자신에게 되묻는다.  


"당신은 관종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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