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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정엽 대만은 지금 Feb 20. 2021

한국인이라면 알만한 영어 시(詩) ‘가지 않은 길’

‘길’(The Road)을 읽다 떠오른 길에 대한 회상


시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로버트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을 최소 한 번 이상 읽어 봤을 것이다. 이 시를 읽어봤다면 시의 내용은 전부 기억할 수 없어도 시가 대략 무엇을 말하는지는 기억할 수 있을 것이다. 2021년 초에 이 시가 갑자기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시를 읽고 또 읽고, 길에 대해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대만이란 곳에 있고, 먹고사는 문제를 고민하고 있고, 단 한 번도 예상하지 못한 큰 변화들이 나를 급습했기 때문에 내 안의 무의식이 내 주의를 ‘길’로 이끌었는지도 모르겠다.




The Road Not Taken
Robert Frost

Two roads diverged in a yellow wood,
And sorry I could not travel both
And be one traveler, long I stood
And looked down one as far as I could
To where it bent in the undergrowth;

Then took the other, as just as fair,
And having perhaps the better claim,
Because it was grassy and wanted wear;
Though as for that the passing there
Had worn them really about the same,

And both that morning equally lay
In leaves no step had trodden black.
Oh, I kept the first for another day!
Yet knowing how way leads on to way,
I doubted if I should ever come back.

I shall be telling this with a sigh
Somewhere ages and ages hence:
Two roads diverged in a wood, and I—
I took the one less traveled by,
And that has made all the difference.

이 시의 제목은 한국어로 ‘가지 않은 길’이다. 얼핏 제목만 놓고 보면 ‘다른 사람들이 가지 않은 길’을 의미하는 것 같다. 원문으로 시를 여러 번 읽어보면 이 시의 제목은 시적 화자 자신이 가지 않은 길로 이해된다. 나만 그런 건지도 모르겠다.


즉, 시적 화자가 선택한 길이 있으나 선택하지 않은 길이 미련이 생기는 인생의 아이러니함을 이야기하고자 한 것 같다. 두 길을 동시에 갈 수 없기에.


어떤 이들은 이 시가 다른 이들이 가지 않는 길을 가라고 한 것이 이 시의 주제라고 설명한다. 내 영어실력이 뛰어나지 못해서 그런 건지는 몰라도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가야 한다는 시적 화자의 의견은 찾아볼 수 없다. 시야 읽는 이들이 해석하기 나름이겠거니 한다.


우리말로 번역된 것을 읽어 보니 그렇게도 해석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 내가 느낀 것보다 다른 이들이 느낀 것이 더욱 희망차고 긍정적이니 외국 시 하나가 우리말로 바뀌면서 우리 국민들에게 더 큰 긍정의 힘을 불어넣어준다면 나쁘지 않아 보인다. 다만 아쉬운 점은 우리말로 번역된 시는 운율이 그다지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찌 됐든 많은 사람들이 이 시를 알고 있으며, 자기 계발을 위한 소재로도 쓰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 시는 대만보다 한국에서 더 인기가 좋아 보인다. 대만에도 이 시는 많은 이들로부터 사랑받고 있다.


‘길’이라는 소재는 우리나라 사람에게는 익숙한 소재이기에 이 시가 더욱 친숙하게 느껴지는 것은 아닐까. 성공과 성장이라는 두 단어가 마치 강박관념처럼 강조된 사회에서 급격한 경제성장을 이룬 우리나라에서 선택과 방향을 상징하기도 하는 ‘길’은 참 중요하다.



이 시를 읽으면서 내가 중요한 시기마다 ‘길’에 대해 생각했음을 새삼 깨달았다.


이 시를 읽으면서 과거 MBC ‘일요일 일요일 밤에’의 이휘재가 나온 코너인 ‘이휘재의 인생극장’ (그래 결심했어!)가 떠올랐다. 두 가지 선택의 상황이 나오면서 결과는 달라짐을 보여주는 재미있는 프로그램이었다. 월요일을 앞두고 책가방을 싸고 꼭 챙겨 보고 잤다. 이를 통해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는 걸 깨달았고, 이 프로그램은 내 상상력 발달에 십분 도움을 줬다.


이 시를 읽으면서 JYP의 옛 아이돌 그룹 지오디(G.O.D)의 ‘길’이라는 노래가 떠올랐다. 미래에 대해, 진로에 대해 한창 고민하던 때 이 노래를 접했다. 나에게 큰 의미가 있다.


이 시를 읽으면서 윤동주의 ‘길’이라는 시가 떠올랐다. 윤동주의 길이 더욱 철학적이고 자아성찰적인 공간이라고 생각되지만, 돌담을 경계로 안쪽과 바깥쪽으로 양분화된 것이 이 시에서 말하는 두 길과 흡사하게 느껴졌다.


이 시를 읽으면서 내가 선택하지 않았거나 선택하지 못한 ‘길’이 떠올랐다. 선택했더라면, 선택할 수 있었더라면, 지금 나는 이렇게 글을 쓰고 있지 않았을 것이다.


끝으로, 이 시를 읽으면서 내가 ‘아재’가 됐구나를 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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