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고추장에 밥을 비벼 먹을 때마다 나 자신이 영락없는 한국인이라고 느낀다. 고추장에 밥을 비벼 먹는 시간 동안만큼은 소소한 행복의 감정이 살포시 내 몸을 감싼다. 입맛이 없을 때, 피곤에 지쳐 있을 때, 무기력함을 느낄 때, 우울할 때 등 나를 힘겹게 만드는 상황에서 고추장에 비빈 밥은 긍정의 힘을 불어넣어 준다.
요즘 들어 ‘죽을 때 죽더라도 고추장에 비빈 밥 먼저 먹어야겠다’라는 생각이 든다. 내 생애의 마지막 순간에 누군가 나에게 뭘 하고 싶으냐고 물으면 고추장에 밥을 비벼 나에게 한 그릇만 달라고 할 것만 같다. 대만에 있다 보니 적어도 한 달에 한 번쯤은 고추장에 밥을 비벼 먹어야 직성이 풀린다. 변비가 해소되는 것 마냥 케케묵은 뭔가가 내려가는 기분이 든다. 다행히 대만 음식들이 내 입에 맞아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으면 고추장에 밥을 비벼 먹기는커녕 고추장을 통째로 퍼 먹었을 것이다.
우리나라에 있었을 때는 고추장에 비빈 밥의 역량을 깨닫지 못했다. 흔하디 흔하게 먹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비빔밥은 쉽고 간편하게 만들고 먹을 수 있어 분식집에서조차 한식계의 패스트푸드요, 온 국민의 단골 메뉴다. 어릴 적 어머니는 먹다 남은 찬밥에 버리기 아까운 잔반을 고추장에 비벼 드시고는 했다. 한국인이라면 집에서 누구나 한 번쯤 해봤을 법하다. 외국에 있다 보면 어머니처럼 먹기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적어도 나에게 있어 이렇게 흔하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을 외국에 있다는 이유로 자주 먹지 못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사실 대만에서 고추장 구하기는 한국에서 토마토소스 구하는 것만큼 어렵지 않다.
대만에서 고추장에 밥을 비벼 먹을 때마다 한국에서 밥을 비벼 맛있게 먹은 순간들이 떠오르고는 한다.
초등학생 때 어머니께서 싸 주신 도시락에 함께 있던 고추장이 떠오른다. 도시락에 담긴 고추장은 어찌 된 일인지 어린 나에게는 상당히 강하고 지독한 냄새를 풍겼다. 이 고약한 고추장 냄새가 친구들에게 놀림거리가 될까 노심초사 전전긍긍한 적이 있었다. 나이가 든 지금은 고추장에서 나는 것은 냄새가 아니라 향기가 되어 버렸다. 바로 고향의 향기요, 추억의 향기다.
고추장에 비빈 밥을 떠올리면 기억은 바야흐로 고등학교 때로 돌아간다. 서울 동대문구에 위치한 고등학교에 진학한 뒤, 학원 생활에 익숙한 나는 고등학교에서 실시하는 야간 자율학습과 마주하면서 자연스럽게 저녁을 밖에서 해결하게 되었다. 고등학교 주변으로 다행히 대학교들이 있어 가성비 높은 식당들이 포진해 있었다. 이 식당들에서 사 먹은 고추장을 재료로 한 식사는 나에게 스트레스와 피로를 조금이나마 풀어줬다. 현지 내가 고등학교 때 다니던 식당들은 감쪽 같이 사라져 버렸다.
대학교 때는 내가 좋아하던 선배들과 식사를 할 때마다 이상하게도 비빔밥이 빠지질 않았다. 작곡이 전공이었던 나는 선배들과 비빔밥을 잎에 두고 음악에 대한 이야기들을 했던 기억이 있다. 내가 선배가 된 후에도 비빔밥은 등장했고, 후배들과 음악 이야기를 나눴다. 항상 꿈이자 이상이었던 음악. 그리고, 어학연수, 취업 준비, 학원, 직장 생활, 유학 준비부터 대만의 10년 생활까지 고추장에 비빈 밥은 나와 항상 함께 했고, 그 의미와 느낌은 달랐다.
고추장에 비빈 밥을 먹는 방법은 참 많이 있는데, 가장 원시적인 방법으로 먹을 때 노스탤지어 효과를 십분 아니 백분 누릴 수 있다. 원시적인 방법이란 맨밥에다가 고추장만 넣어서 비벼 먹는 것이다. 이렇게 밥과 고추장만 비비면 재료가 부족하다는 생각과 함께 고국이 그리워진다.
사실 이렇게 밥에 고추장만 낳고 비비기가 쉽지 않다. 이렇게 비빌 때 고소한 참기름 생각이 난다. 여기에 정말 비싼 고급 대만산 참기름을 넣지 않고 저렴한 대만산 참기름을 넣으면 한국 참기름 생각이 더욱 간절해질 것이다. 대만에서 한국 참기름을 구하는 것도 누워서 떡 먹기다.
고추장, 밥, 참기름을 넣고 비벼 먹을 수 있는 상황이라면 나만의 소확행을 누릴 수 있는 준비가 끝난다. 비빔밥 소확행은 아주 짧고 빠르고 강력하게 나만의 노스탤지어 속으로 날 안내한다. 당나라 시인 이태백이 달을 보며 고향을 그리워했듯 나는 오늘도 고추장에 비빈 밥을 보며 우리나라를 그리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