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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정엽 대만은 지금 Feb 14. 2021

대만생활과 코로나19가 던진 가족 식사에 대한 단상

대만서 음력설에 가족에 대해 곱씹다


어느덧 대만에는 춘절(음력설) 연휴가 성큼 찾아왔다. 이번 연휴는 다른 때보다 긴 느낌이다. 외국에서 맞이하는 연휴는 항상 내게 “너는 외국인이야”라고 알려준다. 대만에서의 설은 ‘이방인’인 나에게는 마냥 낯설게 느껴지기만 한다.


그렇게 이방인이라는 감정을 느끼고 있는 연휴 첫날 10일 저녁을 먹다가 갑자기 한국에 계신 부모님이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명절에 식사를 한 적이 언제였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나는 명절에 대한 기억들을 모조리 소환하기 시작했다.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은 아름다운 추억들이 되어버린 가족의 소중한 기억들이 떠올랐다.


사회의 변화로 인해 가족의 규모, 형태 등이 변하고 있다. 대가족에서 핵가족으로, 핵가족에서 1인 가구로. 통계청이 발표한 인구주택총조사에 따르면 1인 가구는 2019년 기준으로 30.2%에 달한다. 2010년 에는 23.9%였다. 건강가족기본법 3조 1항에서는 가족을 혼인, 혈연, 입양으로 이루어진 사회의 기본단위로 정의하고 있다. 법적으로 보면 누군가는 현시대에 맞게 개정해야 한다고 할 수 있겠지만, 최소한 보수적인 입장에서 보면 가족은 혼인, 혈연, 입양이 전제조건이 된다.



누군가와 식사를 한다는 것은 참으로 행복하고 즐거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물론 그 누군가가 불편한 사람이 아니라면 말이다. 더군다나 그 누군가가 결코 불편하지 않은 가족이라면, 한 집에서 끼니를 같이 하는 사이라면, 그 식구와 무엇을 먹어도 남부럽지 않다.


부끄럽게도 나는 이것을 깨닫게 된 지 2년 정도 밖에 되지 않았다. 2년이라는 시간이 흘러서야 깨달은 것에 대해 글자의 힘을 빌어 정리하게 됐다. 잊어버리기 전에.


설날이 왔다. 가족에 대한 그리움보다는 가족에 대한 의미를 되새기면서 과거 어릴 적 철없던 시절에 대해 반성을 하게 됐다. 특히 너무 당연하게만 여겼던 가족과 함께 보낸 시간들에 대해서 말이다. 가족과 함께 식사하는 것이 얼마나 축복받은 일인지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아 보인다.


내가 미취학 어린이였을 때 어머니는 항상 나에게 “아들! 아빠 저녁 식사하고 오시느냐고 여쭤 봐”라며 아버지가 근무하시던 회사로 전화를 걸게 하셨다. 당시 이동통신기기란 상상도 못 했던 시대였다. 나는 쪼르르 거실로 가서 전화기를 집어 들고는 아버지의 회사 전화번호를 누르기 시작했다.


“여보세요? 거기 ㅇㅇ회사 ㅇㅇ부지요?”


이렇게 식사 여부를 묻기 위해 아버지 회사로 전화를 매일 하게 됐고, 결국 이는 내 하루 일과 중의 하나가 되어 전화예절을 습득하게 됐다. 이는 내가 아버지와 매일 정기적으로 감정적 교감을 나눌 수 있는 소통방식이 되었다.


아버지께서 야근하시는 날이면 저녁은 항상 어머니하고만 함께 했다. 아버지가 야근을 안 하는 날에는 우리 세 식구가 저녁을 함께 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어머니깨서는 세 식구가 모여 식사하는 것을 꽤 즐기셨던 것 같다. 직접 만드신 음식을 가족이 먹고 있는 것에 행복을 느끼시지 않았을까.


우리 가족의 가족동반 식사 빈도에 대해 생각해봤다. 어릴 적 우리 가족이 함께 밥 먹는 일이 잦았지만 점차 내 머리가 커지면서 횟수는 점점 줄어들게 됐다.


고등학생 때는 야간 자율학습이다, 학원이다, 입시 실기 준비다 뭐 다해서 바빴고, 대학생 때는 과제다, 사교활동이다, 뭐다 해서 바빴다. 과거 미성년자 학생신분 때문에 속박된 생활에서 대학생이라는 해방된 생활에 푹 빠져든 뒤 어느날부터 나는 가족과 식사는 커녕 식사 여부를 어머니께 알려드리는 빈도도 부쩍 줄어 들었다.


군대에 다녀온 뒤로는 식사 여부는 집에 도착했을 때 혹은 어머니께서 물어보실 때나 답했고, 배가 고프면 그냥 내가 직접 음식을 해 먹거나 사 먹는 것이 어머니에 대한 효라고 여겼다. 가족은 식사를 함께 하며 가족애와 정을 나누는 삶을 영위하기 마련인데, 시간이 지나면서 자기 중심의 삶으로 바뀜과 동시에 가족애를 느낄 수 있는 가족과의 식사시간은 사라져갔다. 이것이 우리 가족의 일상이 되었다. 특별한 가족 모임이 있지 않는 이상 밥 한 번 먹기가 힘든 상황이 되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는 이를 몰랐다. 이를 인지할 만큼 성숙하지 않았다.


주말 점심에 라면과 쉰김치 그리고 찬밥이 가족을 식탁 앞으로 강제소환하던 때를 잊고 살았다. 짜장면, 짬뽕, 탕수육, 그리고 단무지가 가족을 하나로 묶어주던 순간을 새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 뒤 내가 대만으로 온 뒤 가족과 식사할 기회는 더더욱 없어졌다. 내가 한국에 가거나 아니면 가족이 대만에 와야 식사를 할 수 있다. 더군다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 때문에 가족과 식사할 기회는 바짝 줄었다. 그리고 나는 대만인과 결혼했다.


‘앞으로 한국에 계신 부모님과의 식사 기회는 앞으로 몇 번이나 남았을까?’라는 생각이 들자 갑자기 가슴이 먹먹해졌다. 가족이 함께 식사를 즐기는 일은 정말 간단해 보이면서도 쉽지 않아 보인다.


코로나19가 가족 사이를 갈라놓았다. 우리나라 뉴스에서는 5인 가족 모임 제한에 대한 보도가 유독 눈에 들어왔다. 특히 “마음은 가까이, 거리는 멀게”라는 말이 기억에 남았다. 가족과 약 1600킬로미터 거리 두기를  하고 있는 나의 경우는 “거리는 멀어도 마음만큼은 가깝게”다. 코로나19 덕분에 대만과 한국의 거리는 비행시간 두 시간 반에 자가격리 4주 이상이 되었고, 탑승 3일전 음성 확인서를 위힌 검사 비용 외에도 자가격리 비용, 휴가 등으로 인한 기회비용을 비롯한 기타 잡비들이 엄청난 부담으로 작용한다. 게다가 대만 입국도 대만 당국이 제시한 자격이 돼야 가능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대만은 코로나19로 5인 가족 모임 제한 같은 것은 애시당초 없다는 것이다. 대규모 집합 금지 명령도 없었다. 대만은 2월 13일까지 코로나 확진자가 1천 명에도 미치지 않았다. 덕분에 여기저기 싸돌아다닐 수도 있다. 물론, 공공장소에서 마스크 착용은 의무다.


나는 바쁜 일정을 핑계로 대만에 오셨던 부모님과 단 20여 분 동안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으로 만남을 대체한 적이 있었다. 당시 매우 죄송스러웠다. 하지만 행복했다. 그리고 지금은 그 20여 분이 소중한 기억으로 자리했다. 어쩌면 누군가에게 화장실에서 큰 일을 치르는 데 걸린다는 그 20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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