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나이로 산다는 것.

T인 딸이라 미안해

by 이제희

조카들을 보면서 미치도록 부럽다는 생각을 한 적이 종종 있다. 언니는 매주 조카들을 데리고 산으로 바다로 계곡으로 떠난다. 대한민국에 축제가 이렇게 많았나 싶을 정도로 전국 방방곳곳의 축제를 찾아다니기도 한다. 아들둘맘이라 풀어놓는 게 편하다는 이유도 있었지만, 나의 유년시절과 비교하면 육아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높아진 사회 분위기도 한몫 하는 것 같다. 난 어렸을 때 가족과 놀러다닌 기억이 별로 없다. 엄마는 내가 이 말을 하면 참 억울하다고 한다. 어떻게 해서든 좋은 추억을 남겨주려고 바다도 가고 계곡도 가고 아빠가 일하느라 바쁘면 엄마 혼자 애 셋을 데리고 그렇게 돌아다니면서 노력했는데 그런 말 들으면 서운하다고.


근데 왜 그런지 생각해보니 난 세자매 중 막내다. 언니들이 첫째 조카와 둘째 조카를 키우는 것만 봐도 확연히 다르다. 노심초사 뭐든 새 것, 뭐든 조심히, 뭐든 애틋하던 첫째를 키우고나면 둘째는 그냥 자연스럽게 키워진다고 해야 하나 자란다고 해야 하나. 무튼 둘째는 그냥 큰다고 했다. 그런데 셋째라니. 둘째까지만 계획에 있는 탓에 언니들이 셋째를 어떻게 키우는 지 본 적은 없지만 불 보듯 뻔하다. 그런데 난 그냥 자라버린 둘째 다음에 태어난 셋째다. 둘째도 그냥 혼자 컸는데 셋째는 오죽할까.


아마도 엄마가 우리의 추억을 위해 열심히 다녔던 건 첫째언니가 초등학교를 입학하기 전까지 였을 거다. 우리 언니가 빠른 년생으로 7살에 학교를 갔으니 아마 그때까지 열심히 다니지 않았을까. 그리고 난 언니와 3살 차이. 나는 아마 3-4살까지 언니 덕에 이곳저곳을 놀러 다녔을 거다. 그런데 대부분 5살 때부터 자신의 인생 첫 기억이 시작되지 않나. 난 그래서 놀러다닌 기억이 없다. 슬프게도. 그리고 내가 기억이 생길 때쯤 집안 사정이 안 좋아졌고 곧 IMF까지 터졌다. 내 어린시절은 참 팍팍했다. 그래서 내가 애늙은이가 됐나 싶기도 하다.


삶의 질을 올려주는 다양한 육아템, 하지만 감성은 놓칠 수 없는 감성 육아템까지 더하고 아이가 이때 아니면 언제 장난감 가지고 놀겠나 오감발달에도 좋다고 하니 다양한 장난감으로 조카들의 방은 가득하다. 평일에는 어린이집, 유치원에 다녀와 신나게 놀고 오자마자 간식을 먹고 저녁 시간 전까지 신나게 놀이방에서 논다. 저녁먹고 엄마아빠랑 좀 놀다 잠이 들고 주말이 되면 캠핑장에서 또 새로운 친구를 사귀며 논다. 이제 5살이 넘은 내 조카는 이런 재밌는 기억들부터 인생이 시작될 텐데. 나와 참 다르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그 아이들이 나와는 다르게 천진난만하게 그렇게 잘 컸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노는 게 본분인 나이. 제 나이에 맞게 신나게 놀 수 있는게 얼마나 복 받은 건지. 고작 손가락 다섯개만으로 나이를 표현할 수 있는 때가 얼마나 축복인지. 그렇게 조카들을 보면 한번씩 너무 예쁘고 귀엽고 부러워서 눈물이 찔끔나곤 한다.


그러다 문득 대학생 때 엄마와 했던 대화가 생각났다.

"넌 참 좋겠다. 대학교도 다니고 얼마나 예쁠 나이야. 엄마도 캠퍼스 걸어보는 게 소원이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난 참 철이 없는 딸이자 극강의 T였다.

"요즘 어른들도 대학 많이 다녀. 엄마도 대학 다닐래? 내가 도와줄게"

"그 말이 아냐. 젊을 때 너네 나이 때 다녀보고 싶다는 거지. 지금 다 늙어서 다녀서 뭐하니"


난 엄마가 '공부'를 하고 싶다는 말인 줄 알고 또 어른들이 다닐 수 있는 야간대학도 찾아보고 헛다리를 짚었었다. 그런데 나중에 생각해보니 엄마는 그 '젊음'을 누리고 싶었다는 거였다. 얼마나 부러웠을까. 우리 엄마는 내 나이 때 시골에서 상경한 여공이었다. 내가 전공수업을 듣고 알바 가는 게 힘들다고 할 때(부모님께 용돈을 받았지만 내가 하고 싶은 걸 하기에는 적은 돈이었다) 우리 엄마는 정말 생계를 위해 공장에서 일을 했다. 고작 20살의 나이에. 전공책을 들고 캠퍼스를 걸어다니는 여대생들이 얼마나 부러웠을지. 20살의 엄마를 생각하니 미안하기도 하고. 모두가 자신이 갖지 못한 제 나이에 대한 질투가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Gemini_Generated_Image_7sa2q17sa2q17sa2.png 제미나이로 만들어 본 이미지. 한국인으로 바꿔달라는 요구를 세번이나 무시했다. 세자매 이미지는...지나가는 옆 집 애까지 찍혀있다.

제 나이로 산다는 것은 사실은 많은 사람에게 주어지지 않는 축복이었다. 엄마는 스무 살 나이에 여공으로 생계를 꾸렸고, 나는 어린 시절 가족 여행의 기억이 없다. 그리고 내 조카들은 지금 이 순간, 다섯 손가락으로 자신의 나이를 표현하며 신나게 논다. 세 세대가 각자 다른 방식으로 자신의 시간을 통과해왔다. 엄마는 스무 살에 캠퍼스를 걷지 못했고, 나는 다섯 살에 실컷 놀지 못했다. 그래서 마음 껏 노는 조카들이 제 나이에 맞게 그렇게 놀고 공부하고 캠퍼스를 걷고 그렇게 커나가길 축복하고 싶은 마음이다.


어쩌면 우리는 모두 자신이 온전히 누리지 못한 그 시절을 누군가에게서 발견하고 부러워하며 살아가는 건지도 모른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는 우리가 가지지 못한 것들을 다음 세대에게 건네주려 애쓴다. 엄마가 서운해하며 말했던 그 바다와 계곡이, 언니가 조카들을 데리고 다니는 그 축제들이, 결국 우리가 서로에게 건네는 사랑의 방식이었던 것처럼.


조카들이 자라서도 이 따뜻한 기억들을 간직하기를, 그리고 언젠가 자신도 누군가의 시간을 조금 더 빛나게 해주는 사람이 되기를. 눈물이 찔끔 나도록 예쁜 그 아이들을 보며, 나는 오늘도 그렇게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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