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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양갱 Sep 07. 2023

광인, 과수면, 그리고 잠깐의 휴식

한 달의 루틴과 점점 지쳐가는 나를 느끼면서.

지금 잠시 맑은 정신으로 있다 보니 너무나 편안하다. 가장 괴로울 때는 한 달 중 이 주가량 지속되는 광인의 상태이다. 약을 매 때마다 먹지 않으면 눈을 잠시 감고 있는 것도 견딜 수 없고, 휴식이라는 것은 상상도 하지 못하며 수면제는 자낙스를 몇 알이나 더해서 겨우 기절했다가 일어나는 게 전부이다. 강박적으로 무언가를 하다 보니 너무 지쳤는데도 쉬지 못하고 가만히 있으면 머리가 터질 듯이, 내 몸이 내 몸이 아닌듯한 느낌에 몸이 붕붕 날아다니는 기분에 어쩔 줄 몰라하게 된다. 이걸 조증이라고도 이야기하던데 잘 모르겠다. 이게 조증삽화인지, 아니면 그냥 단순히 공황이 오기 직전의 상태가 지속되는 것인지. 에너지가 넘치기보다는  여기서 딱 한 걸음만 더 넘어가면 바로 발작이 올 것 같은 느낌이 더 강렬해서 모든 외출을 삼가거나 약을 한주먹씩 먹고 가방에도 한가득 챙겨서 나간다.


그리고 이 상태로 이주를 겨우 견뎌내고 나면 일주일 정도는 똑같은 약을 먹는데도 과수면의 주가 찾아온다. 자도 자도 잠이 오고, 눈을 뜰 때는 겨우 화장실을 가거나 배가 고파서 과자를 뜯어서 급한 당을 채울 때가 전부이고 책에 집중을 하려고 해도 두 글자를 읽고 나면 이미 잠에 들어있다. 이 주간은 글도 쓸 수 없고 청소도, 하다못해 식생활이나 병원예약조차 갈 수 없는 주이다. 과수면의 주간은 광인의 주간과 겹치거나 혹은 따로 오기도 하는데 이것 역시 자도 자도 피곤한 건 똑같다. 생각하는 게 두려워서 회피하고 외면하고 잠으로 도피한다. 게임을 하면서 잠을 깨려고 해도 손가락을 키보드에 얹은 채 머리를 흔들며 잠에 들기도 한다. 내 의지와는 다르게.


과수면주간이 혹시 약에 의한 것은 아닌지 나 역시 의심을 하여 약을 복용하지 않아 봤는데 더 심한 결과를 마주했다. 오히려 10분 30분 간격으로 깜빡깜빡 깨던 것에 비하여 꼬박 이틀을 깨지 않았는데 돌보는 강아지가 있는 입장에서는 너무 곤란했다. 그리고 잠은 들지만 가슴이 붕 떠있는 그 기분이 사라지지 않아 광인과 과수면이 함께 오는 상태라 그냥 약은 꼬박꼬박 먹고 잠이 오면 잠이 들기로 했다.


이렇게 3주가량을 보내고 나면 드디어 평화의 주가 찾아온다(이때 생리가 겹치면 정말 세상을 저주하게 된다). 좀 더 사람처럼 살고, 눈에 사물이 제대로 인식되고, 제대로 된 생활 패턴이 돌아오고, 잠깐이지만 전철을 탈 수도 있고(그 전의 상태에서는 전철은 꿈도 못 꿀 일이다), 생각이라는 것을 조금 천천히 할 수 있다. 그전에는 마치 고속철도 같은 머릿속이었다면 지금처럼 잠깐의 휴식일 때에는 자전거 정도랄까. 시간이 가는 것도 느낄 수 있고, 숨도 제대로 쉬어지고, 불어오는 바람도 느껴지고, 나의 감정을 컨트롤할 수 있고, 내가 다 나았다는 착각도 들고. 가끔 이때의 나는, 꽤 괜찮다는 생각마저 들 정도로.


웃음도 자연스럽고, 자연스럽게 진지하고, 일의 순서도 한눈에 보이고, 에너지가 적당히 도는. 밖으로도 나가보고 싶고 신선한 공기가 생각나는 그런 휴식 같은 순간이 바람처럼 불어왔다가 다시 바람처럼 사라지고 또다시 한 달의 루틴이 시작된다. 광인과 과수면이 섞여서 오거나, 순서대로 오거나, 그중 하나씩 차례대로 오거나.


그전에는 이런 루틴에서도 휴식 같은 시간에 숨통이 틔였다. 휴식 같은 시간에 다른 일들을 처리하고, 또 힘들 때는 그때 할 수 있는 일들을 계획해 놓으면서. 하지만 2년 전 다시 약을 복용하기 시작할 때, 그동안 다른 사람이 이상하게 쳐다볼까 봐 라는 이유로 4년이 넘도록 하던 상담치료와 약물치료를 몇 년 동안 임의중단한 부작용까지 안고 시작을 했고 그때부터 나타난 이 이상한 루틴 속에 갇혀왔으며 이제는 점점 지쳐가는 나를 느낀다.

누군들 장기적인 약물치료나 상담치료에 지치지 않을까.


어젯밤에도 수면제를 먹으면서 봉지를 까서 손바닥에 놓고 삼키기 전에 문득 봤는데 양이 참 많다는 생각을 했다. 이렇게 먹어도 6시간이면 일어나는데. 대체 다들 약 없이 어떻게 자고 어떻게 일어나는 것일까.

많다-고 생각하면서도 다 먹고도 잠을 잘 수 없어 어제는 비상약을 추가로 조금 더 먹으며 점점 지치는 걸 느꼈다. 이렇게까지 하면서 삶을 유지해야 하는 걸까. 이렇게 까지 해서 몸을 움직일 수 있어야 하는 걸까.

의식이 꺼져가는 걸 느끼면서 가끔 상상을 해본다. 죽는 기분이 이런 걸까.

그렇다면 나쁘지 않을 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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