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희를 처음 만난 건 어머니를 여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나의 어머니는 내가 국민학교 6학년 때, 내 밑으로 둘 있는 여동생들이 국민학교 4학년, 1학년이었을 무렵, 내 위로 셋 있는 형들이 중학교 2학년, 고등학교 1학년, 3학년 무렵 돌아가셨다.
수더분하고 따뜻했던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난 뒤 우리 집의 분위기는 하루아침에 바뀌었던 것 같다. 고3이었던 큰 형의 방황.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 생각해 보니 40대 중반에 자식 여섯을 떠맡게 된 아버지의 고뇌. 혈기왕성한 다 큰 자식의 반항과 일류학교의 윤리교사였지만 제 자식은 다스리기가 힘들었던 아버지의 좌절 속에서 남은 우리들은 두 사람의 눈치를 보느라 어머니를 잃은 슬픔을 마음껏 드러내지 못하고 위로도 받지 못한 채 마음은 텅 비어 가는데 몸집만 커가던 날들이었다.
그렇게 나는 이렇다 할 사춘기도 겪지 못한 채 어느덧 고등학생이 되어 있었다. 책이라면 닥치는 대로 읽었던 나는 고등학교 1학년 때 교지편집부에 들어가게 되었고, 2학년 때는 학년 부장을 맡게 되었다. 2학년 1학기 초, 옆의 여고로 동아리 소개를 하러 가게 되었고, 그때 2학년 3반 교실에서 남희를 처음 보았다.
남희는 70년대 초 여고생의 표본이었다. 흰 블라우스에 검정 치마, 길지도 않은 머리를 양갈래로 묶어 양쪽 귀밑에서 달랑거리던 검은 머리, 하얀 얼굴에 수줍은 미소. 사실 2학년 3반 교실에 들어선 순간 처음에는 거의 비슷비슷한 여학생들이 죽 앉아 있어서 어디다 눈을 둘지 몰라 교실 맨 뒤의 벽을 보고 얘기를 시작했었다.
하지만 내가 생각해도 꽤 들어줄만했던 목소리와 그런대로 봐줄만했던 외모 덕분에 입을 연지 얼마 되지 않아 금세 여학생들은 내 말에 귀를 기울이게 되었고, 나도 그런 분위기에 힘입어 점점 말에 자신이 붙어 어느 순간 여학생들 한 명 한 명의 눈을 맞추며 이야기를 끌어가게 되었다. 그러던 중, 교실 중간에 앉아 있던 남희에게 눈길이 멈추게 되었던 것이다.
그녀를 보는 순간, 5년 전 돌아가신 어머니를 보는 줄 알았다. 수더분하고 따뜻한 인상, 하얀 얼굴, 약간 처진 눈꼬리에 웃음을 머금은 입매, 나를 바라보는 까만 눈동자. 그녀가 나를 상준아~하고 부를 것만 같았다. 물론 그로부터 한참 뒤에 한동안 그녀가 나를 실제로 그렇게 부르긴 했지만.
그렇게 나름 강렬했던 첫 만남 이후, 어찌어찌 그녀의 집주소를 알아내어 연서를 보내기 시작했다. 나는 말보다도 글에 더 자신이 있었다. 말로 내 마음을 표현하는 것보다 글로 쓰는 것이 훨씬 더 쉬웠다. 그동안 읽어왔던 수많은 작품 속의 주옥같은 문장들 사이사이 나의 솔직한 감정들을 담백하게 적어내려 갔다. 편지를 다 써놓고 다시 읽어봐도 정말 흠잡을 데가 없는 그런 편지들을 고등학교 시절 내내 보냈건만, 그녀에게서는 답장이 한 번도 오지 않았다.
그녀에게 마음을 빼앗긴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공부를 소홀히 할 만큼 어리석지는 않았기 때문에 점차 편지를 보내는 주기가 길어지게 되었다. 그녀를 잊은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그녀 때문에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시간을 보내지는 않았다.
시간은 그 누구의 편도 아니다. 시간은 모두에게 공평하다. 그녀를 처음 봤던 우리들이 반짝반짝 빛났던 고등학교 2학년 때도 그렇고, 사이렌 소리를 들으며 구급차에 실려 어딘가로 옮겨지고 있는 지금도 그렇고. 1분 1초는 똑같이 흐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