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정말 회피할 만큼 정말 두려워 하는 게 맞을까?
나는 어린 시절, 어떤 과목이나 특정 활동 앞에서 때때로 불편함을 느꼈다. 그리고 그 불편함이 지속되면 그것은 불안이 되고, 불안이 커지면 행동은 달라진다.
결국 그 분야를 사전에 만나지 않게 피하거나, 혹은 그런 상황을 만나면 결국은 도망친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회피(avoidance)’와 ‘도피(escape)’로 구분한다.
회피는 말 그대로 마주하지 않기 위한 행동이다. 불편하거나 지루하고, 실패할 것 같은 상황을 아예 만들지 않도록 애쓰는 반응이다.
반면 도피는 이미 시작된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한 행동이다. 압박이나 불안을 더 이상 견딜 수 없어 상황을 끝내기 위해 행동하는 것이다.
둘 다 부적 강화(negative reinforcement)가 작용한다.
‘싫은 자극이 사라진다’는 경험이 행동을 강화시키는 것이다. 그래서 불편을 피할수록, 마음은 그것을 점점 더 커다란 위험으로 기억한다.
문제는 이 반복이 습관이 된다는 점이다.
처음에는 단순한 불편 회피였지만, 나중에는 그 분야를 포기하고, 더 나아가 아예 삶에서 제거하려는 선택을 하기도 한다.
어린 시절 아이들이 특정 과목을 과민하게 싫다고 느끼는 것도 그렇다.
지루하거나 어렵다고 느낀 것은 단순 감각이었을지 모르지만, 반복된 회피는 결국 도피로 이어지고, 마지막에는 ‘나는 원래 못해’라는 잘못된 자기규정으로 굳어진다.
회사원도 예외는 아니다.
과거에 너무 힘들었던 프로젝트는 다음번에 훨씬 더 무겁게 느껴진다.
상사와의 부정적 경험은 이후에 비슷한 인물만 만나도 몸이 먼저 긴장하게 만든다.
객관적인 난이도보다 주관적인 체감 무게감이 훨씬 커지는 이유다.
마음이 세운 장벽,회피와 도피는 어쩌면 방패다.
위험요소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마음의 장비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질문이 하나 있다.
과연 무엇이 진짜 위험인가?
많은 경우, 마음이 위험이라고 판단하는 대상은 ‘나에게 맞지 않았던 경험’ 혹은 ‘그때의 감정’이지, 대상 자체가 아니다.
아이들이 미션을 싫어하는 이유도, 특정 과제를 거부하는 이유도 대부분 ‘싫다’의 정체를 분석해 보면 ‘어렵다’나 ‘귀찮다’ 같은 감정일 가능성이 높다..그 감정은 시간이 지나면 단순한 불편을 넘어 회피이서 도피로, 그리고 거부라는 흐름을 만든다.
내 삶 속의 회피와 도피,
생각해 보면 나도 그런 삶을 살아왔다.
어떤 것들은 천천히 멀어졌고, 어떤 것들은 의식적으로 피했다.
실제로는 정말 특별한 사건도 아니었는데 말이다.
예를 들어 나는 수영을 잘하지 못한다.
물놀이는 좋아했지만 ‘수영’이라는 액션은 늘 회피해 왔다. 어릴 때 억지로 시험을 보며 힘으로 버틴 경험이 있었다. 호흡을 제대로 익히지 못했고, 그 실패는 부끄러움과 긴장으로 남았다. 그 뒤로 나는 물놀이 이상의 수영이라는 활동 자체를 넘어서지 않았다.
결국 회피의 반복을 통해 불편한 마음의 영역을 닫아두었던 것이다.
“과연 수영 하나뿐일까?”
삶에는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쌓아 올린 장벽이 무수히 많다.
싫어서가 아니라 익숙하지 않아서, 좋은 감정 기억이 없어서, 한번 불편한 기억이 있어서다.
정말 절대적으로 무서워서가 아니라 예전에 실패했기 때문에. 우리는 언젠가부터 그것을 위험이라고 해석한다.
우리에게 새로운 정의가 필요하다
이제 나는 회피와 도피를 무조건 부정하지 않는다.
상황에 따라 회피도 전략이 될 수 있고, 도피도 생존이 될 수 있다.
진짜 위험이라면 물론 뛰어나와야 한다. 그때는 도망이 아니라 불가피한 선택일 뿐이다.
하지만 과거의 감정이나 과도한 오해 때문에 쌓은 장벽이라면 다시 정의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자문한다.
“내가 두려워하는 이 대상은 정말 평생 피해야 할 무서운 것인가?”
“아니면 내가 오해했고, 시간이 필요했을 뿐인 대상인가?”
만약 후자라면 회피심으로 흘러가기 전에
조금씩 다시 가까워지는 경험을 설계해 볼 필요가 있다.
아주 작은 성공을 쌓아 올리고, 과거의 감정과 현실을 분리해 보는 것이다.
과거의 잘못된 정의와 오해 때문에 내가 내 삶에서 쫓아낸 대상이 있다면, 그 장벽만큼은 조금 낮춰볼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살아갈 것이다.
필요한 순간에는 마주하고,
지나친 순간에는 돌아보고,
오해한 순간에는 다시 시도하는 삶.
회피와 도피를 부끄러움의 언어가 아니라
이해와 선택의 언어로 바라볼 수 있다면
우리는 더 많은 것을 마주할 용기를 얻게 될 것이다.
P.S.
나에게는 러닝도 회피의 대상이었다. 남들이 마라톤을 나가면 남의 일이라고 구분 지었고, 나는 많이 걷는 사람이니깐 뛸 필요는 없다고 회피하며 20년을 넘기 살아왔다. 하지만 지난 8월, 그냥 나도 뛰어보면 어떨까? 우연한 도전으로 뛰는 나를 마주했다. 과거의 회피는 나의 오해였음을 알았다.
직접 만나지 않으면 오해는 평생 풀 수 없었을 것이다. 그날 이후 20년을 회피했던 나는 매주 한번씩 러닝을 하고 있다.
우리가 오해를 풀어야 할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