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영심이 나를 만드는가? 내가 허영심을 만드는가?
사람은 이상하게도 타인의 눈을 통해 자신을 확인하려 한다.
‘괜찮은 사람인가’, ‘뒤처지지 않았는가’, ‘어디에 내놓아도 부족하지 않은가.’
이 마음이 커질수록 우리는 스스로를 꾸미는 데 더 많은 힘을 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조금씩, 아주 조금씩, 자기 자신과 멀어진다.
흔히 이런 마음을 허영심이라고 부른다.
겉으로 보이는 것을 부풀리는 마음.
분수에 맞지 않는 외형에 마음이 끌리는 상태.
그런데 가만히 들여다보면 이 감정은 생각보다 단순하지 않다.
그 안에는 ‘지금보다 나아지고 싶다’는 작고 솔직한 바람이 함께 들어 있다.
나 역시 그랬다.
누군가에게 부족해 보일까 봐 말을 아꼈고,
어색한 상황이 생길까 봐 자리를 피했다.
새로운 사람들 앞에서는 괜히 주눅이 들었고,
괜찮아 보이기 위해 애쓰느라 오히려 더 어색해졌다.
보여지는 모습에 신경 쓸수록, 내 마음은 점점 비어갔다.
어느 순간 깨달았다.
나는 잘 보이고 싶은 게 아니라, 사실은 스스로에게 떳떳해지고 싶었던 것이라는 걸.
남들에게 인정받고 싶었던 이유는, 정작 내가 나를 인정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때부터 기준을 바꾸기 시작했다.
보여지는 나를 가꾸는 대신, 보이지 않는 나를 채우기로 했다.
사람들 앞에서 괜찮아 보이기보다, 혼자 있을 때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되기로 했다.
책을 읽고, 글을 쓰고, 달리기를 시작했다.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상관없는 시간들을 묵묵히 쌓아갔다.
신기하게도 시간이 흐르자,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던 마음이 점점 줄어들었다.
대신 이런 생각이 자리 잡았다.
‘오늘 나는 어제보다 나아졌는가.’
허영심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
다만 그 방향이 바뀌었다.
겉으로 드러내고 싶던 에너지가, 안으로 채우고 싶어 하는 에너지로 옮겨갔다.
예전에는 잘 보이기 위해 행동했다면, 이제는 나 스스로 만족하기 위해 행동한다.
그 차이는 생각보다 크다.
타인의 시선으로 사는 삶은 끝이 없다.
항상 비교가 있고, 항상 부족함이 따라온다.
하지만 나 자신의 기준으로 사는 삶은 단순하다.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만 있으면 된다.
나는 허영심을 나쁘게만 보지 않는다.
그 감정 덕분에 내가 무엇이 부족한지 알게 되었고, 어디를 채워야 하는지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누군가에게 잘 보이고 싶은 마음이 들 때, 예전처럼 스스로를 꾸미지 않는다.
대신 이렇게 묻는다.
‘나는 왜 이 마음이 들었을까.’
그 질문은 언제나 나를 더 나다운 방향으로 이끈다.
허영심은 나를 망치는 감정이 아니라, 나를 움직이게 만드는 신호였다.
남에게 보이기 위한 삶이 아니라, 나에게 떳떳한 삶.
이 기준을 갖게
된 이후로, 나는 훨씬 편해졌고, 훨씬 단단해졌다.
그래서 이제는 말할 수 있다.
잘 보이고 싶은 마음이 들거든, 숨기지 말고 들여다보라고.
그 안에는 분명, 지금보다 더 나아지고 싶은 진짜 당신의 마음이 들어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