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누군가를 진정 축하하지 못했는가.
누군가 앞서 나간다. 그럴 때면 난 솔직히 그 사람을 축하해 주면서도 불편했다.
같이 시작했는데 누군가는 훨씬 빨리 올라갔다.
나는 “대단하다”라고 말했지만
마음 한편에서는 조용히 무너지고 있었다.
왜일까.
누군가의 성공이 마치 나만 뒤처졌다 느껴졌기 때문이다.
“너 괜찮아?”
“너 뒤처진 거 아니야?”
“너 가치 있는 거 맞아?”
시기심은 어쩌면 나에게 보내는 작은 경고음과 신호인지 모른다.
나는 한동안 누군가의 단점을 찾았다.
운이 좋았다고 말했다.
상황이 좋아서 그렇다고 했다.
그를 낮추면 내가 덜 아플 줄 알았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를 낮출수록 나는 더 작아졌다.
그때 알았다.
시기심은 남의 성취 때문이 아니라 내 자존감이, 내 진심이 흔들렸기 때문이라는 것을.
그가 가진 것이 아니라 내가 아직 갖지 못한 나를
마주하기 싫었던 것이다.
시기심은 또 하나의 결핍이다.
그리고 결핍은 나의 부족함이다.
하지만 여기서 멈추면 우리는 그 감정을 오해하게 된다.
결핍은 단지 비어 있음이 아니기 때문이다.
결핍은 움직임의 시작점이다.
우리는 사실 완전해서 걷는 것이 아니다. 부족하기 때문에 걷는다. 그리고 그만큼 더 나아갈 수 있다.
배고픔이 우리를 식탁으로 이끌고,
외로움이 우리를 사람에게로 데려가듯
결핍은 우리를 어떤 방향으로 밀어낸다.
모든 존재에는 목적을 가진다.
씨앗이 나무가 되고 열매를 맺기 위해 자라듯 인간도 아직 실현되지 않은 가능성을 향해 나아간다.
그 나아감의 출발점에는 어떠한 결핍이 있다.
인간은 ‘완성된 존재’가 아니라 ‘스스로를 만들어가는 존재’라고 했다.
우리는 이미 다 갖춘 채 서 있는 존재가 아니라
조금씩 채워가며 존재가 되어가는 과정이다.
그러니 시기심은 부끄러움이 아니라 미완성의 증거이자 충족의 밑거름이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단순히 부족해서 흔들리는 것이 아니라 아직 도달하고 싶은 열망과 열정이 남아 있어서 흔들리는 것이다.
시기심을 부정하면 그건 독이 된다. 남을 깎아내리고 나를 소모시키는 감정이 된다.
하지만 오히려 용기 내어 인정하면 그건 방향이 된다.
“아, 나는 저걸 원했구나.”
“나는 저 자리까지 가고 싶었구나.”
그 순간 시기심은 비교의 감정이 아니라 열망의 좌표가 된다
나는 이제 누군가를 부러워할 때 나를 탓하지 않는다.
그 대신 묻는다.
“그래서 너는 어디까지 가고 싶니?”
시기심은 부끄러운 감정이 아니다.
그것은 성장 직전의 떨림이다.
누군가를 질투하는 날, 나는 조금 더 나의 욕망에 솔직해진다.
그리고 안다.
내가 미워했던 것은 그 사람이 아니라 아직 도달하지 못한 나 자신이었음을.
명심하자.
시기심은 더 이상 나를 깎아내리는 감정이 아니라
나를 앞으로 끌어주는 힘이 되었다.
결핍은 상처가 아니라 방향이다.
이제 그 방향을 따라 천천히 걸어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