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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저녁 8시, 우리를 길들인 사랑의 시간

'황금빛 밀밭을 보면 네가 생각날 테니까'

by 여지행

“황금빛 밀밭을 보면 네가 생각날 테니까.”

사막 여우가 어린 왕자에게 속삭였던 말처럼


새 학기가 시작되며 아이의 학원 스케줄이 바뀌었다. 3월부터는 금요일 저녁 8시쯤 수업이 끝난다는 말을 듣고 문득, 퇴근 시간과 겹친다는 생각이 들었다.


3월의 마지막 금요일, 아이의 하원 시간에 맞춰 일부러 학원 근처를 지나쳤다. 저 멀리서 아이가 걸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나는 반가워 손을 흔들었고, 아이도 미소 지으며 내게 다가왔다.


마침 생각난 편의점 기프티콘.

집 앞 편의점에 들러 과자 몇 봉지를 고르며

작지만 특별한 ‘금요일의 플렉스’를 함께 했다.


그냥, 그 순간이 좋았다.

별다른 이유 없이, 그저 아이와 함께 걷는 그 시간이 따뜻했다.


그다음 주 금요일, 이번엔 따릉이를 타고 퇴근하던 길이었다. 조금 이르게 도착했기에 오늘은 먼저 들어가야겠다 싶었다.

하지만 또다시, 우연처럼 아이와 마주쳤다.


“오늘은 왜 이렇게 일찍 끝났어?”

“숙제를 잘해가고, 문제도 빨리 풀어서 조금 일찍 끝났어.”

아이는 그렇게 대답하며 내 따릉이를 재빨리 타고는, 자신이 직접 반납하겠다며 씩 웃었다.


간식을 사주는 게 습관이 될까 망설였지만,

금요일 저녁, 함께 먹는 작은 간식은 우리만의 낭만이었다.

사실 그냥 내 카드로 사는 거였지만,

아빠 기프티콘 또 받았어. 오늘까지 쓸 수 있대.”

핑계를 대며 우리는 또다시 편의점으로 향했다.


그리고 어제, 또 금요일이 찾아왔다.

오후엔 회의가 있었고, 저녁엔 오랜만의 회식 자리.

무심코 흘러가던 술자리에서 문득 시계를 보니, 8시를 조금 넘긴 시간.

그 순간, 아이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아빠! 오늘은 왜 없어?”

요즘은 친구가 더 좋은 나이,

한때 ‘아빠 바라기’였던 딸은 이제 멀어진 줄만 알았는데, 그런 딸이 먼저 아빠를 찾는 그 한 통의 전화가 그렇게 반갑고, 또 그렇게 기뻤다.


“아빠 오늘 회식 있어서 조금 늦을 것 같아. 집에서 보자.”

근데 아빠가 오늘 늦는다고 메시지 보냈는데 못 봤어?”

“아, 오늘 수업 듣느라 메시지는 못 봤네. 알았어.”


그 순간 문득 떠올랐다.

사막 여우의 말처럼,

“바람 소리조차 좋아지게 된다”는 그 문장이.


아이는 어쩌면, 금요일 하원길에 아빠를 떠올렸을지도 모른다.

집 앞 편의점, 2+1 과자를 고르며 나눴던 대화를 기억했을지도.

그 추억이, 오늘 아빠를 찾는 전화 한 통이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나도, 아이에게 길들여지고 있음을 느낀다.

‘다음 주 금요일엔 꼭 다시 함께 걸어야지.’


바쁜 일상 속, 일주일에 하루

‘우연을 가장한 필연’으로 만나는 이 시간은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점점 줄어드는 대화의 틈을 메워주는 너무나 소중한 시간이 되어간다.


과자봉지를 나눠 들고 집으로 향하는 금요일 저녁,

그 짧은 시간 안에 밀린 마음을 꺼내고,

다시 한번 서로를 확인한다.


이 시간은 지금도 좋고,

앞으로도,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이다.


작고 따뜻한 우리의 금요일,

그렇게 또 하나의 추억이 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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