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함에 묻힌 사랑, 늦기 전에 꺼내야 할 말”
그땐 미처 몰랐다.
그들의 시간도 흐르고 있었음을.
모든 것이 당연했고, 늘 그대로일 거라 믿었다.
어제 아침, 차에서 내리며 어머니께 인사도 하지 않고 가는 한 고등학생의 뒷모습을 보았다.
그 모습을 보며 나도 모르게 생각에 잠겼다.
나도 아침마다 툴툴거리며 등교하던 기억이 있다.
그러면 안 된다는 걸 몰랐던 건 아니었다.
그럼에도 막상 다정한 인사를 하지 못했다.
말 한마디가 왜 그렇게 어려웠을까.
중학교 3학년 때, 국어 선생님이 김소월의 시 ‘부모’를 칠판에 적어주셨다.
시를 듣고, 시화를 그리면서 문장 눈물이 났다.
그 시를 들으며 부모님이라는 존재를 다시 생각했고, 마음 깊이 감사함을 느꼈다.
하지만 그 감정은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수련회 둘째 날 밤이면 늘 촛불 의식을 한다.
부모님 이야기만 나오면 수련회 둘째 날은 늘 눈물바다가 된다. 모두가 울고, 서로 등을 두드려 주며 위로했다.
그때마다 생각했다.
‘이제는 잘해야지. 집에 가면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네야지.’
하지만 결국 집에 돌아오면, 언제 그랬냐는 듯 또 그대로였다.
무표정한 얼굴로 현관문을 열었고, 익숙한 풍경 속에 안주했다. 말 한마디가 어려웠고, 행동은 늘 같았다.
왜 그랬을까.
왜 알면서도 달라지지 못했을까.
민망했기 때문일까, 어설픈 자존심 때문이었을까.
그 시절, 자아가 커지고 독립심이 강해지던 때라 그랬을까.
'무엇보다도, 그분들이 언제나 곁에 있을 거라 믿었기 때문이었겠지.'
그들의 시간도 흐르고 있었는데,
언젠가는 더 늙고, 언젠가는 함께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미처 몰랐다.
알면서도 미루고 또 미뤘다.
‘다음엔 잘해야지.’
‘지금 말고, 내일쯤 말해드려야지.’
그 ‘내일’이 영영 오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걸, 너무 늦게 깨달았다.
이제야 알겠다.
하루하루가 얼마나 소중했는지.
인사 한마디, 따뜻한 눈빛, 작은 인사 한마디와 잠깐의 눈 맞춤 속에도 마음을 담을 수 있다는 걸.
그래서 또 다짐해 본다.
익숙함 속에 묻혀버릴 뻔한 고마움과 사랑을
조금 더 용기 내어 꺼내야겠다고.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이 말들이 더 이상 늦지 않기를 바라며,
더 자주, 더 많이 전하고 싶다.
시간은 되돌아오지 않았다.
내가 성장하는 동안, 그들은 늙어가고 있었다.
이제는 내 아이가 성장하는 시간, 나 또한 그렇게 늙어가고 있다.
모두의 시간이 그렇게 흐르고 있었다.
모든 시절에,
이 흐름을 조금만 더 눈치챌 수 있었다면 좋았을 걸. 그래서 오늘도 다짐해 본다.
지금 곁에 있는 소중한 사람들과 순간들을
더는 당연하게 여기지 않기를.
언젠가 잃고 나서야 소중함을 깨닫지 않기를.
지금 이 시간은 사랑을 표현할 수 있는 서로를 지키는 가장 따뜻한 시간이다.
이 시간이 더 이상 식어가지 않길, 더 이상 미루지 않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