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망치고 싶었는데, 왜 우리는 또 버티고 있을까

힘들다는 이유가 오히려 버티는 힘이 된다면

by 여지행

나의 직장은 한때, 이곳은 나에게 전쟁터였다.
누군가는 나를 그 싸움 한가운데로 밀어 넣었고,
어느 순간부터는 스스로 그 전장에 몸을 던졌다.
책임이라는 이름으로, 다짐이라는 이유로.

하지만 그 시간들은 조용히, 그러나 분명히 나를 조금씩 닳게 하고 있었다.

어느 날은 내가 나를 잃어버릴 것만 같았고, 또 다른 날엔 도리어 나를 너무 단단히 붙잡고 있었다.

버거운 마음에 등을 돌리고 싶다가도, 모든 걸 내려놓을 결심을 하려다 보면 이상하게도 그 자리를 지키겠다는 각오가 먼저 다가왔다.

‘이 아픔에도 이유가 있을 거야.’ 문득 그렇게 믿어보았다. 지금은 분명 버거운 하루들이지만
언젠가 이 시간들을 돌아보게 될 날이 오면,
그 고단함이 결국 나를 가장 나답게 만든 시간이었음을 알게 되리라는 막연한 희망.

누군가에겐 이 고단함이 그만두어야 할 이유가 되겠지만, 나에게는 버텨야 할 이유가 되어주고 있었다.

'여기서조차 버티지 못한다면 그 어디서도 버티기 어려울지도 몰라.'

나는 안다.
이 시간을 견디고 있는 내가, 언젠가 누군가가 힘들고 지칠 때, 손을 잡아끌어주고 밀어주며 같이 이끌고 갈 힘을 단력하고 있다는 것을. 나도 조금씩 더 단단해졌다는 것을.

나는 아직도 매일 흔들린다. 하지만 흔들리면서도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흔들림을 두려워하지 않고 흔들리는 가운데에서도
계속 걸어가는 것이야말로 진짜 용기라는 걸
조금은 알 것 같다.

지금 돌아보면, 사실 누구도 싸우고 있던 게 아니었다. 전쟁 같은 하루는 내 마음속에서 만들어낸 것이었다. 그만큼 더 잘해보고 싶었던 마음. 그게 나였다.

그런 나를, 이제는 이해한다. 그래서 또 버틴다.
그리고 이번엔, 굳은 얼굴 대신 조금은 웃으며 버텨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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