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힘듦은 진짜 힘든 걸까요?

오늘의 온도는 어디에서 결정되는가

by 여지행


우리가 “춥다”라고 말할 때, 그 말은 절대적인 기준에서 나오는 걸까.

아니면 어제의 온도, 조금 전의 감각, 혹은 방금 겪은 상황과의 비교일까.


같은 기온이라도 어제보다 따뜻하면 덜 춥고,

더 차가운 곳을 다녀오면 오히려 포근하게 느껴진다.

추위조차도 사실은 비교의 산물이다.


나는 스무 살 초반,

한겨울 실내 수영장에서 수업을 받던 기억이 있다.

물속에 들어가기 전, 그 짧은 망설임의 순간.

몸은 이미 수영복 차림인데, 차가운 물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다들 발걸음이 굳어버렸다.


그때 강사님은 우리를 실내에서 밖으로 내보냈다.

복도 문을 나서자마자 영하의 공기가 맨살에 꽂혔다.

숨이 턱 막히고, “아까 그 물이 차가운 게 아니었구나”라는 생각이 동시에 들었다.


잠시 후 다시 문이 열렸을 때, 조금 전까지 도망치고 싶던 수영장은 이상하리만큼 따뜻한 공간이 되어 있었다.

우리는 망설임 없이 물로 뛰어들었다.

온도는 바뀌지 않았는데, 감각은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오늘 저녁, 아이를 위해 떡볶이를 만들었다.

냉동실에서 꺼낸 떡은 단단하게 서로 붙어 있었고, 차가운 물에 헹구자 손이 얼얼해졌다.

잠시 뒤, 냄비에 물을 올려두고 다시 떡을 씻는데 그리고 놀랍게도 떡들이 하나둘씩 떨어지기 시작했다.

내 손에는 여전히 찬물이었다.

하지만 냉동실에서 막 나온 떡에게는 그 물이 ‘녹기 시작하는 온도’였던 셈이다.


우리는 흔히 생각한다.

지금 내가 겪고 있는 시련이 마치 인생 최악의 고난인 거 매 순간 반응한다.

자기만 수많은 경험들과 비교해 보자.

사실 지금 내가 겪고 있는 두려움과 고통은 사실 지난주 엄청난 압박에 비하면 사실 별거 아닌 일이었다.


어쩌면 우리에게 필요한 건 완전한 여유가 아니라, 조금 숨을 돌릴 수 있는 온기일지도 모른다.

차가운 바람을 잠시 피할 수 있는 자리, 손끝이 다시 감각을 찾을 만큼의 따뜻함.

그 정도면 충분할 때도 많다.


삶의 상태는

절대적인 수치로 재단되지 않는다.

행복도 마찬가지다.

대단한 사건 하나가 아니라,

작은 변화들이 쌓여 만들어진다.


어제보다

조금 덜 긴장했다면,

조금 더 웃었다면,

조금 덜 혼자라고 느꼈다면.


그건 이미 삶이 녹고 있다는 신호다.


그래서 나는 요즘

하루를 크게 뒤집으려 하지 않는다.

대신 스스로에게 아주 작은 질문을 던진다.

“지금 나를 조금이라도 따뜻하게 만드는 건 뭘까?”


따뜻한 커피일 수도 있고,

아이에게 건넨 떡볶이를 맛있게 먹는 얼굴일 수도 있다.

아무 말 없이 안부를 묻는 짧은 메시지 한 줄일 수도 있다.


그 순간은 아주 사소해서

아무도 알아주지 않을지 모른다.

그래도 분명한 건,

그 온기가 나를 어제보다 조금 더 살아 있게 만든다는 사실이다.


인생은 늘

팔팔 끓는 물을 요구하지 않는다.

붙어 있던 마음이 서서히 떨어질 만큼의 온기면 된다.

숨이 다시 이어질 만큼이면 충분하다.


그래서 나는 내일도 조금 더 따뜻한 사람이 되려고 한다.

다른 누구와 비교하지 않고, 오직 어제의 나와만 비교하며 오늘의 온도를 가늠하는 사람으로.


그 방식이 지금의 나에게 가장 현실적이고, 가장 오래 지속될 수 있는 행복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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