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일 싫어하던 걸 하고 있는
과거의 내가 본다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
나는 오래 달리기를 싫어했다.
숨이 차오르는 건 마치 위험 신호 같았고, 끝이 보이지 않는 결승점은 언제나 힘겹고 불편했다.
“이걸 어떻게 완주하지?”라는 질문이 먼저 떠오르던 사람이었다.
추위는 더 싫었다.
몸이 움츠러들고 손끝이 얼어붙는 감각은 굳이 견디고 싶지 않은 고통이었다.
우리는 보통 불편함을 위협으로 해석하는 경향이 있고, 나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내가 좋아하는 환경에서, 내가 통제할 수 있는 방식으로만 운동하려 했다.
그런 내가 요즘, 마흔 중반의 나이에 추운 아침에도 러닝화 끈을 묶고 밖으로 나간다.
차가운 공기가 폐 깊숙이 들어오는 느낌, 귀가 얼얼하고 손이 금세 감각을 잃어가는 순간들. 그럼에도 발은 멈추지 않는다.
이 장면은 나에게 아직도 낯설다.
하지만 나는 러닝의 성취감과 나를 만나는 시간의 의미를 발견했다. 바로 그 낯섦 속 미처 몰랐던 그 과정의 의미와 성취감을 통해 우리는 성장한다.
과거 나에게 이 모습을 보여준다면, 아마 고개를 저었을 것이다.
10년 전, 20년 전의 나는 이렇게 말했을지 모른다.
“설마~ 내가 그럴 리가? 잘못 본 거 아니야?”
우리는 미래의 가능성보다 과거의 경험을 더 신뢰한다.
과거는 이미 검증된 데이터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반대로 미래는 불확실성으로 가득하다.
그래서 나는 요즘 깨닫는다.
내가 믿어야 할 것은 과거의 기록도, 미래의 예측도 아니라는 걸.
내가 믿어야 할 것은
숨이 차오르는데도 멈추지 않는 나,
춥다고 투덜거리면서도 한 발 더 내딛는 나,
지금 이 순간을 통과하고 있는 나다.
행동심리학에서는 이를 행동 기반 자기 효능감이라고 부른다.
자기 효능감은 말이나 계획으로 높아지는 게 아니라 바로 이런 작은 행동의 축적으로 형성된다.
과거의 나는 해보지 못했고, 미래의 내가 와서 설명해 줘도 믿지 못할 일을 나는 지금 여기서 하고 있다.
결국 나를 증명할 수 있는 건 생각이나 예측이 아니라 지금 해내고 있는 행동뿐이다.
나는 내가 상상하지 못했던 순간을 하루하루 만들어내고 있다.
생각해 보면 지금도 내가 상상조차 못 한 일을 이미 해내고 있을지 모른다.
그래서 나는 내 상상을 전부 믿지 않기로 했다.
그 상상은 늘 나를 과소평가했으니까.
뇌는 변화보다 안정을 우선시했고, 그 안정을 위해 기존의 패턴의 반복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간의 가능성 중 가장 강력한 무기는 바로 적응력이다. 어디서는 적응할 수 있고, 조금 더 멀리 갈 수 있는 존재다.
그리고 그 사실은 오늘, 이 얼어붙은 길 위에서 조용히 증명되고 있다.
지금 이 순간이 바로 미래의 가능성을 만들어 가고 있는 순간이다.
그 감각은 예측이 아니라 경험에서 나오고, 경험은 오로지 지금 이 순간에서만 획득된다.
그래서 나는 안다.
내가 해내고 있는 이 작은 도전들이 언젠가 과거의 내가 바라보던 ‘상상 너머의 나’를 조용히 완성시켜 줄 거라는 것을.
결국 우리가 믿어야 할 것은 과거의 한계도, 미래의 전망도 아니고, 바로 지금 이 순간 숨을 몰아쉬며 한 발 더 내딛는 현재형의 나다.
그 나로 인해, 내일의 가능성은 조금씩 현실이 된다.
그리고 그렇게 조용히 변화한 사람은 언젠가 이렇게 말할 것이다.
“그때는 몰랐지만, 나는 이미 거기까지 갈 수 있는 사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