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초연함을 얼마나 삶에 두고 사는가

우리는 언제까지 일희일비하며 살아갈 것인가?

by 여지행

우리는 평점심을 얼마나 유지하며 사는가?

살면서 연륜이 쌓이며, 우리는 마음을 조금씩 더 잘 관리한다고 생각하지만 막상 위기 상황이 되면 바로 낙담하고 불안에 휩싸인다. 또 갑자기 행운이 따르면 어린아이처럼 좋아한다. 그렇게 일희일비하며 사는 삶은 나이가 든다고 쉽게 바뀌지 않는다.

이때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삶의 태도는 바로 '초연함'이 아닐까?


일본 야구의 전설로 불리는 스즈키 이치로를 보면 초연함에 대해서 느끼는 바가 많아진다.

그는 타석에서 상대 투수를 뚫어지게 쳐다보지 않는다.

상대의 기세나 표정을 읽으려 하기보다, “지금 내가 칠 공은 무엇인가”에만 집중한다.

삼진을 당하면 고개 한 번 숙이지 않고 돌아서고, 홈런을 날려도 환호에 취하지 않는다.

그 꾸준한 평정심을 신인선수 때부터 은퇴까지 끝에 그는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에 올랐다.

그는 말한다.

결과에 일희일비하지 않는다. 결과는 컨트롤할 수 없지만, 준비하는 과정은 내가 100% 통제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모든 과정에서 자신이 통제가능한 몰입을 할 뿐, 나머지에 일희일비하지 않았다.


초연함은 애써 무표정을 짓는 게 아니라, 흔들림 속에서 중심을 잃지 않는 일이라는 걸 보여준다.

진짜 강함은 외부의 자극에 휘둘리지 않는 데서 시작된다.

사전은 초연함을 ‘현실에 아랑곳하지 않고 의연한 태도’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그 말이 감정을 끊어내거나 마음을 닫으라는 뜻은 아니다.

나도 예전에 세상의 소리에 너무 쉽게 흔들리던 사람이었다.

누군가의 말 한마디에 하루가 뒤틀리고, 읽씹 된 메시지 하나에 마음이 쪼그라들었고, 작은 오해에도 금방 무너졌다.

그땐 그게 솔직함이고 정직함이라고 착각했다.

상처받는 만큼 나는 살아 있다는 증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돌이켜 보면 그건 진심이 아니라 무방비함이었다.

감정 앞에 어떤 보호막도 없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을 뿐이다.


초연해진다는 건 감정이 사라지는 게 아니다.

나는 지금도 기쁘고, 섭섭하고, 누군가에게 마음이 쓰인다. 단지 이제는 그 감정 하나가 내 삶의 전부가 되지 않게 할 뿐이다.

모든 말에 설명을 덧붙이려 하지 않고, 모든 오해를 다 해명하려 들지 않고, 떠나려는 사람을 붙잡지 않고, 곁에 남아 준 사람에게만 마음을 쓴다.


초연함은 체념과 다르다.

그건 무엇을 내려놓고 무엇을 품을지 고르는 선택이다. 중요한 것에만 힘을 주고, 중요하지 않은 것들은 흘려보내는 일이다.

그래서 초연한 사람은 무심해 보이지만 오히려 단단하고, 차가워 보이지만 오히려 더 평온하다.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초연하다는 건 세상에 등을 돌리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에게 등을 돌리지 않는 방식이라는 걸.

그리고 초연함은 뛰어난 타고난 능력과 엄청난 멘탈이 아니라, 우리가 작게부터 시작해서 꾸준히 노력해야 하는 연습의 과정이다.

그리고 오늘부터 아주 작게부터 연습해도 된다.

굳이 붙잡지 않아도 되는 감정 하나를 내려놓고, 설명할 필요 없는 말은 삼키고, 나를 소모시키는 생각 하나를 조용히 떠나보내자.

그런 작은 선택들이 쌓이면 삶은 덜 지치고, 사람은 더 단단해진다.


그렇게 초연한 태도로 하루하루를 마주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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