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쁨 속에 숨어 있던 나의 진심과 핑계들, 무엇인 진실일까
사람들은 종종 이렇게 말한다.
“요즘 너무 바빠서…”
그 말은 어쩌면 지금의 불편함을 정리하고 새로운 걸 시작하지 않기 위해 나에게는 너무나 편리한 말이다.
적당한 이해를 제공하고, 설명을 줄여주며, 어느 정도의 도망칠 틈도 마련해준다.
하지만 이 익숙한 말 속에는 여러 감정이 섞여 있다.
진짜 시간적 제약도 있고, 감추고 싶은 두려움도 있고, 내키지 않는 마음도 있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바쁨은 단순한 ‘상태’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선택’의 문제일 때가 더 많다.
어떤 일은 정말 시간과 에너지가 부족해서 불가능하다.
그러나 어떤 일은 마음만 먹으면 충분히 가능한데, ‘바빠서’라는 포장지로 안전하게 밀어두는 경우도 있다.
우리 모두 한 번쯤 써본 익숙한 기술이다.
내가 그 사실을 가장 정면으로 느꼈던 시기가 있다.
팀원의 육아휴직으로 인해 업무가 폭발적으로 늘던 어느 해였다.
그때는 하루가 쪼개져도 모자랄 만큼 벅찼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시기에 나는 매일 글을 쓰고, 독서모임에 참석하고, 전자책을 준비하고, 진로 관련 강의까지 했다.
가장 바쁘다고 주장하던 시기에 오히려 가장 많은 일을 해냈던 것이다.
그 경험은 나를 조용히 민망하게 만들었다.
바쁘다는 말이 항상 ‘불가능’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걸 몸으로 배웠기 때문이다.
어쩌면 나는 시간이 없어서가 아니라, 우선순위가 없어서 멈춰있었던 순간도 많았던 것 같다.
삶은 우리가 여유를 확보한 뒤에 균형을 잡게 해주지 않는다.
하루가 숨가쁘게 돌아가는 그 와중에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붙든 것들이 곧 균형의 씨앗이 된다.
그 선택이 방향을 드러내고, 그 방향이 결국 삶의 모양을 만든다.
돌이켜보면 바쁨이라는 이유로 오래 미뤄둔 일들 중에는 정말 잃고 싶지 않았던 꿈이 있었다.
그리고 바쁨 속에서도 끝내 놓지 않았던 일들 속에는 내가 어떤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은지가 담겨 있었다.
그 두 가지를 나란히 세워보면 삶은 결국 ‘시간이 있는가’가 아니라 ‘나는 무엇을 잊지 않았는가’의 문제라는 걸 알게 된다.
그래서 요즘 나는 이렇게 묻는다.
“오늘의 바쁨은 나를 가두는 벽인가, 아니면 나를 통과시키는 문인가.”
이 질문 앞에서 솔직해질 때 비로소 바쁨은 변명이 아니라 방향이 된다.
바쁨의 홍수 속에서도 이상하게 남는 일이 있다.
잠깐의 여유를 잡아 끌어 와서라도 하고 싶은 일.
체력이 바닥이었는데도 이상하게 손이 가던 일.
그게 바로 우리를 앞으로 끌고 가는 작은 진심이다.
삶은 완벽한 여유가 생길 때 비로소 균형이 찾아오는 게 아니다.
오히려 가장 숨 가쁜 하루 속에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붙든 것들 위에 천천히 쌓인다.
그러니 오늘도 우리는 다시 선택할 수 있다.
할 수 없다는 이유를 찾는 대신, 지켜내고 싶은 이유를 한 가지만 더 붙들어보는 것.
그 작은 선택이 쌓여 언젠가 우리가 바라보던 방향에 가 서 있게 한다.
오늘의 바쁨이 당신을 묶는 족쇄가 아니라, 당신을 증명하는 통로가 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 소중한 것을 향할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