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딸들은 자라서 엄마가 될까
#걸스카우트제복의노란추억
#빨간구두여자를따라간아이
딸들은 언젠가 여자가 되기 마련이다. 이것은 네 발로 걷던 아기가 혼자 밥을 먹고 두 발로 걷고 성인이 되는 것과 같은 불변의 진리 같은 거다. 하지만, 분명 여자가 되지 못한 딸들이 있다. 이건 그들 자신들만 아는 비밀이다.
여자가 되지 못하다니, 그게 무슨 말인가. 더 이상 성장하지 않는 난치병에라도 걸렸단 말인가. 아니면, 여성으로서 2차 성징이 나타나지 않은 채 스물을 넘긴다는 건가. 여자로서 인기가 없단 말인가. 그래서 여자 취급을 못 받는단 말인가. 갈수록 가관인 이 이 숱한 물음에 답하기 전에, 나는 여기서 '여자'가 무엇인지 정의할 생각이 없다는 점을 밝혀둔다. 동시에, 이 글의 끝에 읽는 이들이 여자가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하게 되고, 어렴풋이나마 자신의 정의를 만나게 된다면 좋겠다. 이제껏 단 한번도 내 입 밖에 꺼내본 적이 없는 어릴 적 이야기를 하나 이야기하려 한다.
초등학교 때 걸스카우트를 했다. 사건이 일어나던 그날도 걸스카우트 캠프에 참가 중이던 들뜬 하루였다. 그때 내가 열 살쯤이었을까. 걸스카우트 제복을 기억하는가? 옅은 브라운 원피스에 하얀 셔츠, 초록색 빵모자였던가. 암튼 나는 그 걸스카우트 원피스를 입고서 대범하게 다리를 벌린 채 쭈그려 앉아 있었다, 당연히 팬티가 다 보였겠지. 그런 내 앞에 마주 앉은, 같은 걸스카우트 언니가 말했다.
"너 팬티 노랗다."
어, 내 팬티가? 노랗다고? 스스로 자기 팬티를 자세히 들여다본 적이 없으니 알 턱이 없다. 원인은 잘 몰랐지만 순간 엄청난 부끄러움이 몰려왔다. 내가 더럽구나라는 자각이었을까. 당시 그 언니의 질문에 뭐라고 답했는지 모르겠다. 어떻게 그 상황을 모면했을까, 열 살의 나는.
그 당시에는, 왜 내 팬티가 누랬는지 생각해보지 못했다. 앞뒤 생각할 겨를도 없이 본능적으로 부끄러움을 느꼈다. 누런 팬티를 입고 있던 문제의 소녀는 이 문제를 두 번 다시 생각하기가 싫었나 보다. 집에 돌아와, 그 일을 엄마는 물론 어느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고 그 후로 단 한번도 입 밖에 꺼낸 적이 없다. 소녀는 그 일을 맘 속에 혼자 간직했다. 팬티는 얼마 만에 한번 갈아입어야 하는지 아무도 이 열 살 소녀에게 가르쳐주지 않았다. 엄마는 왜 가르쳐주지 않았을까. 아이가 제대로 속옷을 갈아입고 있는지 엄마는 왜 딸의 속옷을 확인하지 않았을까. 부모가 가까이서 챙기지 않으면, 어떤 아이는 깨끗하고 더러운 것도 모른다. 주변에서 가르쳐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팬티 바닥이 노래지도록 입어도 되는 줄 아는 여자 아이가 생긴다.
어른이 되고 나서도, 그때의 그 장면은 오래도록 나를 따라다녔다. 그리고 그 아이는, 아무리 궁핍한 때라도 팬티만큼은 병적으로 넘치게 사서 쟁이는 어른이 되었다. 그리고 하루에 필요하면 두세 번도 넘게 팬티를 갈아입는다. 팬티가 조금이라도 더럽혀졌다고 생각이 들면 그 말이 생각나 견딜 수가 없는 것이다. 아직도, 걸스카우트복을 입고 쪼그려 앉아 자기의 노란 팬티를 유심히 쳐다보는 열 살 여자 아이를 저 높이 위에서 바라보는 상상을 한다. 그때의 부끄러움을 지금도 느끼면서.
나는 중3 때까지 이불에 오줌을 쌌다. 세상에, 중3이다. 꿈에서 오줌을 쌌고 그게 실제였다는 걸 꿈에서 깨고 나서 깨닫는 패턴이었다. 나는 오줌을 오래 참는 버릇이 있었다. 유치원에서 돌아왔는데, 집에 엄마가 없으면, 다리를 배배 꼰 채 문 앞에서 기다리다가, 결국에는 가까운 공원 화장실에도 가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팬티를 적시고 말았다. 엄마는 자주 집에 없었다. 내게 열쇠도 주지 않은 채 외출을 한, 언제 올지 모를 엄마를 유치원에서 돌아온 나는 집 앞에서 하염없이 기다리며 다리를 배배 꼬았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일이다. 아빠의 전근으로, 시골 깡촌에서 서울 목동으로 전학을 온 나를, 서울 애들은 새까만 촌닭이라 놀렸다. 초콜릿 피부 촌닭은 친구 사귀기가 만만치 않았다. 그러다, 어느 날 얼굴이 새하얗고 팔다리가 긴, 공부도 잘하는 친구가 나를 자기네 집에 초대했다. 갓 전학 온 시골 아이를 그 친구가 왜 집에까지 초대했는지 그 이유를 지금도 모르겠다. 그 당시 유행하던 ‘도깨비 말’을 아주 잘하는 영리한 아이였던 생각이 아직도 난다.
친구 집에 가던 그날은 비가 내렸고, 발이 다 젖어 그 친구네 집에 들어가기가 부끄러웠다. 그러다 또 나는 오줌을 참았고, 친구의 엄마가 내온 과일과 주스로 인해 터질 듯한 방광을 주체 못 한 나는 또 바지에 오줌을 지렸다. 찌릉내가 진동을 했는데 친구도, 친구 엄마도 별 말을 하지 않았다. 왜 이 소녀는 화장실을 안 가고 또 사태를 이리 만든 걸까. 당최 이 꼬마 아이를 이해를 할 수가 없다. 갓 전학 온 촌닭이 자기 집에 와서 바지에 오줌을 지리고 말았으니, 아마 다시는 이 친구를 못 보겠구나 생각했다. 겨우 사귄 도시 친구 하나를 오줌을 못 참아서 잃다니. 찌릉내가 풀풀 나는 사파리 반바지를 그대로 입은 채 참담한 맘으로 터덜터덜 집에 돌아가던 생각이 난다. 그래도 지금 생각하면 오줌 지린 게 티가 안 나는 사파리 패턴 반바지를 입고 나온 것이 그나마 얼마나 다행인가 싶다.
나는, 이런 이야기를 한 번도 엄마와 해본 적이 없다. 엄마는 내게 오늘 학교에서 뭘 했는지, 누구를 친구로 사귀었는지 단 한 번도 물어본 적이 없다. 이게 이상한 일이라는 걸, 나중에 TV를 보다가 다른 집에선 그렇지 않다는 걸 알았다. 엄마는 비 오는 날에도, 우산이 없는 날 데리러 학교에 온 적이 없다. 비를 맞고 집에 와보면 엄마는, 집 창문의 커튼을 모두 내린 채 아무 일 없다는 듯 영화를 보고 있었다. 비가 오는 줄도 모르고.
드라마 <시그널>에 보면, 비 오는 날 학교에 저마다 엄마가 우산을 들고 아이를 데려가는데, 하나씩 친구들이 엄마 손을 잡고 떠나가는 모습을 보며 쭈뼛거리던 그 아이, 마지막까지 아무도 데리러 오지 않은 그 아이는 빨간 구두를 신은 모르는 여자를 따라가고, 결국 실종된다. 그리고 살해된 채로 발견된다. 다행히 나는 그런 일을 겪지 않고 살아남았지만, 돌이켜보면 엄마는 딸을 낳고도 자기만의 세상 속에 살았던 것 같다. 딸을 자기 세상 속에 온전히 초대하지 못했고, 딸이라는 인간이 그다지 궁금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러한 엄마의 딸은 자라면서 많은 위험에 노출되었을 거란 상상을 한다. 내가 그렇게 방치된 여자 아이 중 하나였으니 안다. 그리고 엄마는 내 나이 스물이 되기 전에, 내 곁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