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어디에도 없는 사람 Oct 18. 2021

오빠 옷을 입고 자란 여동생은 어떻게 되었나

1부 딸들은 자라서 엄마가 될까?

#환골탈태의산증인들

#대학만가면예뻐진다고누가그래

소녀는 언제 여자가 되는가? 아직 성장기에 있는 중고등학생 때보다는, 입시라는 인생 최대의 과제에 짓눌려 제대로 자기 매력을 찾아볼 시간도 여력도 없는 청소년기보다는, 한국에서는 대체로 대학생이 되는 즈음이 아닐까 싶다. 물론 여기에도 '대체 여자를 무엇으로 정의할 것인가'의 문제가 있다. 일단 한시적으로 '시각적인' 부분에서 소녀에서 여성으로 탈바꿈하는 것이라고 정해놓고 이야기를 시작하려 한다.


대학에만 가면 미팅도 하고, 연애도 하고, 염색도 하고 귀도 뚫고 힐도 신고 얼굴도 좀 손보고? 여학생들이 '대학에 가기만 하면' 땡 하자마자 하고 싶은 위시리스트들이 이런 것 아닐까. 요새는 좀 달라졌을까. 그리고 실제로, 대학에 간 후, 그들에게는 경천동지 할 만한 변화가 일어난다. 누구는 눈도 키우고 코도 높이고 턱도 돌려 깎고, 다이어트로 10킬로 넘게 감량을 하고, 반짝반짝 굽 높은 힐을 신고, 핸드백을 메기 시작하며, 첫사랑 혹 본격적인 연애를 시작한다. 그렇게 그들은 인생의 많은 ‘첫’ 경험을 하며, 드라마틱하게 달라져간다. 그런 탓에, 고등학교 졸업 후 만난 동창을 같은 사람인지 못 알아보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리고 한국에서 외모로 무시와 서러움을 당해본 여자는, 달라진 외모가 주는 파괴력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잘 활용한다. 나는 주변에서 그리고 SNS에서 숱하게 많은 사례를 보았다.


달라져가는 주변의 친구들을 묵묵히 바라보는 여자 아이가 있었다. 대학에 와서도, 여전히 통 넓은 우중충한 면바지에, 폴로 티셔츠를 입고 다니던 여학생. 어려서는 오빠 옷을 물려 입고 자랐던 여자 아이. 여성의 외모로 급격히 진화하는 이 시기에, 그 여자 아이에겐 엄마가 부재했다. 이 시기에, 딸에게 엄마란, 예뻐지고 싶은 마음을 가장 잘 이해하는 동류의 인간이요, 미용실로 백화점으로 네일숍으로 피부미용실로 그를 제일 처음 이끄는 가이드다. 여자아이의 눈에, 엄마는 세상에서 제일 처음 본 예쁜 여자이기도 하다. 어렸을 때 엄마가 아직 '사모님'으로 불리던 그 시절에, 엄마는 한없이 우아하고, 예뻤으며, 멋진 옷을 입는 여자였다. 우리 아파트 단지에서 엄마만큼 멋진 옷을 입는 아줌마는 없었다. 엄마랑 동네를 걸을 때면 이 사람이 내 엄마라는 것이 우쭐우쭐 무척 자랑스러웠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엄마는 바로 내 스타일이었다.


엄마의 자리가 공석인, 이 여자아이에게 만약 자매가 있었다면 좀 달랐을까. 롤모델로 삼을 만한 이가 사라진 그에게, 네 살이나 터울 지는 오빠가 아닌 언니나 여동생이 있었으면 아마 많이 달랐을 것 같다. 롤모델이든, 경쟁 파트너든, 러닝메이트든 동성의 누군가가 '여자가 되는 데'는 꼭 필요하다.


그녀에겐 그 당시 롤모델이 될 사람도 없었지만, 또 하나 없는 게 있었다. 바로 돈이다. 엄마가 떠나고 아빠와 둘이 덜렁 남은 그 몇 년 간, (오빠는 충성! 군 복무 중) 여자 아이는 큰 심리적 방황을 겪었다. 그 트라우마를 처리하느라, 여성으로 탈바꿈하고 역할하는 문제는 뒷전이었다. 제대로 된 인간이 되는 것조차 버거운 시기였다. 어린 딸의 눈에도 아빠 또한 아내가 없는 새로운 생활에 적응하느라 필사적으로 발버둥 치는 게 보였다. 아빠는 딸의 먹을 것을 부족하지 않게 사두고, 딸아이가 장을 볼 때마다 매번 이상하리만치 많은 속옷을 자꾸 사재끼는 데도, 별다른 말이 없었다. 다만, 딸이 머리를 꾸미고 옷을 사는 것은 그의 예산 범위 안에 없었다.


비록 사내아이 같은 모습으로, 화장하는 법도 알지 못한 채, 늑대소년처럼 살고 있다 해도, 갓 대학생이 된 소녀에게 사랑이 찾아오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사랑에 빠진, 여자가 되지 못한 외모의 소녀는, 홀로 자기 맘만 애태울 뿐이었다. 늑대소년 같은 자신의 모습에 더더욱 자신감은 떨어졌고, 미치도록 자신의 심장을 뛰게 하는 저 사람과 ‘언젠가 함께하리라, 그의 여자 친구가 되리라, 우리의 사랑이 이루어지리라’라고는 빻은 깨 가루만큼도 믿어보지도 못한 채 매번 혼자만의 사랑을 마무리했다. 그 시기 주변에선 연애사건이 숱하게 일어났다가 종결되었다. 간혹 조연으로 엮이는 경우가 발생했지만, 단 한번도 그녀는 자신이 주인공으로 연애를 경험하지 못했다.


여자가 되는 데 왜 돈이 필요하냐고, 왜 돈 이야기를 하느냐고 의아해하는 이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돈을 이야기하는 게 천박하게 들릴 수도 있겠다. 그렇다면, 이렇게 되돌려 묻고 싶다. 한 이성의 마음에 들기 위해, 자신의 외모를 바꾸기 위해 당신은 어떤 노력을 해본 적이 있느냐고. 그중 금전이 차지하는 비중은 어떠했느냐고. 대충 잡아봐도 여자는 남자보다 3배쯤 돈이 더 든다는 걸 알아줬으면 한다.


이 여자 아이가, 자신에게 어떤 여성의 모습이 숨어 있는지 탐색을 시작할 수 있었던 것은, 스스로 돈을 벌기 시작한 후부터였다.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였다. 그때부터 자신에게 어울리는 옷이 어떤 스타일인지 실험해볼 수 있었고, 다양한 머리 스타일을 해보고, 종류별 구두를 사 신어보았다. 점점 자신의 모습이 맘에 들자, 맘에 드는 남자에게 당신을 만나고 싶단 시그널을 보내기도 하고, 먼저 고백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여자 아이는 남들보다 아주 늦게 20대 중반이 넘어서야 첫 연애를 시작했다. 과연 연애가 이 아이를 여자로 만들어줄 수 있었을까? 궁금하면, 다음 페이지를 계속 읽어보자.

작가의 이전글 오줌싸개 소녀와 노출된 팬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