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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디에도 없는 사람 Oct 24. 2021

파격의 여행 파트너

3부 너를 만나면 불이 나는 듯했다

#생애첫히치하이킹

#노출증과나체주의


학기가 끝나가고 있었고, 나는 귀국을 앞두고 못내 아쉬운 마음에 여행을 계획 중이었다. 평소 가고 싶었던 이웃나라 섬이 하나 있었는데, 혼자서 갈 엄두가 안 났다. 그러던 어느 날 수업 후 도서관 앞에서 만난 S가 마침 그 섬으로 여행갈 예정이고 이미 비행기티켓을 끊었다는 이야기를 꺼냈다. 이게 왠 (떡)일인가. 반가운 마음에, 그 자리에서 바로 물었다. “나도 너무 가고 싶었던 덴데, 같이 가도 돼?” 친한 사이가 아니지만 S는 반색을 하며 대찬성이었는데, 단 조건이 하나 있었다. 호텔, 교통, 식사, 관광지 그 모든 것을 자신의 예산에 맞춰 달라는 것. 그게 무슨 문제라고. 오.우.케.이.


그렇게, 몇 주 후 우리는 이국의 섬으로 떠났다. 5일 간의 여행이 시작되었다. 여러모로 파격적인 아이인 건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잘 모르는 이와 여행을 떠나는 재미가 이런 걸까. 우리는 그 섬에 도착해서 또 배를 타고 여러 작은 섬들을 찾아다녔는데, 아름다운 에메랄드 빛 해변에 도착해 S는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그리고 수영복을 벗어 던지고 알몸으로 수영을 하기 시작했다. 남의 시선으로부터 이토록 자유로운 사람을 이제껏 보지 못했다. 그 광경에 혼비백산한 나는 멀리 도망가 애꿎은 다른 쪽 바다만 봤다. S가 알몸으로 수영을 하자, 인근에 소문이 났는지 얼마 지나지 않아 해양경찰인지 단속반인지가 제트스키를 타고 몰려와 S에게 경고를 먹였다. 사실 수영 금지 구역이라고 나가라는 거였다.


몸에 도무지 뭘 걸치지 않는 그의 노출 증세는 여행 내내 계속됐는데, 우린 여행 기간 동안 대부분 남녀 구분이 있는 게스트하우스에 묵었다. 하룻밤을 묵게 된 아주 자그만 섬에서는 민박비가 비싸서, 방 하나를 같이 써야만 했던 적이 있다. 그때도 S는 샤워를 마친 후 나와, 옷을 걸치지 않고 팬티만 입은 채 뒹굴거리다 잠들었다. 이 정도 되면 내가 어서 적응하는 수밖에 없다.


여행은, 매일 아침 즉흥적으로 행선지가 결정되었고, 저녁식사는 자주 마트 폐점 시간에 맞춰 대폭 할인된 음식으로 해결했다. 하루는, 초반 며칠에 생각보다 많은 예산을 썼다며 멀리 가지 말고 자전거로 섬을 돌아보자고 S가 제안했다. 그게 아마도 제일 싸게 먹힐 터였다. 나는 이 근육질 백인 남자아이의 체력이 얼마나 좋은지도 모르고, 좋다고 승낙을 해버렸으니, 그날 태양이 작렬하는 한여름 도로 위에서 세 번쯤 터지고 퍼진 것은 자전거 타이어가 아니라, 내 허벅지인 것은 당연지사였다. 내가 도중에 백기를 들었고, 하얗게 질려 있는 내 상태를 본 S는 일단, 주변 편의점에 들어가 쉬자고 했다.


에어컨을 쐬며 달아오른 몸을 식혔고 편의점 도시락을 먹었다. 다시 자전거를 타고 숙소까지 되돌아가려면 이 태양 아래 세 시간은 더 타야 할 텐데, 아무리 쉬어도 체력은 바로 돌아오지 않았다. 그때 S가 히치하이킹을 하자고 말을 꺼냈다. 나는 그때까지 히치하이킹을 해본 적이 없었다. 게다가, 우리는 각자 자전거 한 대씩, 총 두 대를 갖고 있었기 때문에 우리를 태워줄 차량이 과연 있을까 싶었다. 그리고 그 나라 사람들이, 과연 이 낯선 외국인에게 자신의 차를 열어줄지. 나는 가능성 없는 일이라 속으로 생각했지만, S는 1도 의심하지 않는 눈치였다. 그의 말을 따르기로 했다. 히치하이킹 외엔 당시 다른 방법이 없었다. 터진 건 내 허벅지이기에, S에게 이 의견에 반대할 염치도, 다른 대안도 없었다.


우리는 우리의 행선지를 적은 하얀 종이를 가슴팍에 든 채 쌩쌩 지나는 운전자들을 향해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다. 10분이 갓 지났을까.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외곽으로 낚시를 갔다가 다시 시내로 돌아가는 미니 트럭이 우리 앞에 선 것이다. 운전자는, 인상 좋은 초로의 신사였다. 세상에, 이게 되는 구나. 그날의 경험은 내게 많은 영향을 미쳤다. ‘안 될 거야’라는 생각의 가장 나쁜 점은 시도조차 하지 않게 만든다는 것이다. ‘될 거야’라는 생각의 좋은 점은, 실제 실현 가능성이 몇 프로든 간에, 시도를 하게 한다는 것이고, 그럼으로써 기적을 불러올 가능성을 높인다는 데에 있다. 이 친구처럼 살면, 왠지 많은 기적들이 일어날 것 같았다.  


우리는 다음날, 아무도 선호하지 않는 작은 섬으로 가는 배를 탔다. 이유는 단 하나, 가는 배 삯이 저렴했다. 자전거로 섬을 한바퀴 돌고 나자 더 볼 게 없어진 우리는 해변에서 수영을 했다. 바다에만 오면 지중해에서 자란 이 친구는 돌고래처럼 펄쩍펄쩍 신나서 수영을 했다. 그럴 때면 주로 백사장에서 구경을 하던 나는, 그날 무슨 마음이 동했는지, 입고 있던 옷을 벗었다. 여행 내내 해변에서 긴 팔 래시가드를 벗지 않던 내가, 처음으로 비키니 차림이 되어 바다에 들어갔다. 몸에 물이 다 잠기기까지 꽤 걸어나가야 했는데, 바다 쪽에서 자기 쪽으로 들어오는 내 모습을, S는 수영을 하다 멈추고 오래오래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그때의 장면은, 마치 슬로 모션이라도 걸린 듯 느리게 아주 느리게 흘러간다. S의 시점으로 내가 걸어오는 모습이 잡히다가, 마주한 우리 둘의 모습을 공중에서 드론카메라로라도 찍은 듯한 장면이 내 기억 속에 저장되어 있다.


나는 S의 몸도 그렇고 그 어떤 이성의 몸도 얼마나 훌륭하든, 매력적이든 똑바로 뚫어져라 쳐다보지 못한다. 내가 자란 문화에서, 혹은 내 성격에는 그런 시선이 무례하거나 촌스럽거나, 되바라진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인지 상대도 그래서는 안된다고 생각했는데. 어찌된 일인지 그 바다에서 느끼는 그의 시선이 조금도 무례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기분이 아주 좋았다.


마지막 밤, 게스트하우스에서 맥주를 마시며, 나는 S에게 여행 동안 고마웠다고, 너 때문에 여행이 굉장히 즐거웠다고 말했다. 진심이었다. 여행 동안 소통이 필요할 때마다 S가 다 통역을 했고, (얘는 모어 빼고, 3개 국어를 한다) 이 모든 어드벤처를 기획했다. 내 말에, 자신도 고맙다고, 너만큼 내 모든 계획과 충동에 잘 맞춰준 파트너가 없었다고 했다. 게스트하우스에서 새로 사귄 친구들과 맥주를 마시며, 마지막 밤을 보냈고 우리는 다시 타이베이로 돌아왔다.


이 여행 이후에 나와 S는 서로 연락하지 않았다. 나는 가끔 TV 예능프로그램에 나온 S를 보았다. 조금씩 자기 꿈에 가까이 가고 있는 듯했다. 그동안 여행을 적지 않게 했고, 적지 않은 여행 파트너가 있었지만, 최고의 여행 파트너를 꼽자면 S는 한동안 부동의 1위일 것 같다. 나를 가장 많이 변화시킨 여행 파트너이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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