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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제야 May 23. 2023

이혼 소장을 던지고 도망쳤다

프롤로그_ 이혼의 시작, 도망친 곳에서 다시 마주 보기를 다짐하다

 변호사를 선임한 그날 아침부터 저녁까지, 이혼 소장을 작성하는데 꼬박 하루가 걸렸다. 겨우 하루. 우리의 이야기에서 좋았던 부분은 모두 빼고, 주고받은 상처들과 눈물로 얼룩진 이야기로 채워진 그 몇 장의 문서에 지난 몇 년이 압축된다는 것이 허탈했다. 마지막까지 긁어모은 증거자료를 첨부한 메일을 작성한 후, '보내기' 버튼 위에서 마우스 커서가 한참을 맴돌았다. 그 화살표는 더 이상 어느 곳으로의 방향이 아닌, 마치 모든 것의 마침표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소장을 접수하고 도망치듯 짐을 쌌다. 그에게는 나는 이제 이혼을 결심했고 마음을 정리하기 위해 '여행'을 가겠다고 통보했지만 사실은 '도망'에 가까웠다. 우리가 함께 살던 집에 더 이상 머무를 수가 없었다. 가장 익숙한 공간에서 버티지 못할 나 자신을 감당할 자신도 없었고, 한때 행복했던 흔적을 보면 결심이 흐려질까 두려웠다.




 사람 몇 없는 동네, '00면'으로 불리는 이곳에 아이를 데리고 피신한 지 2주. 마치 2달 그 이상의 시간이 흐른 듯 나의 내면에 너무 많은 생각과 변화가 오고 갔다. 과거와 현재의 나, 너, 우리가 끊임없이 반복되며 하루에도 몇 번씩 손바닥 뒤집듯 기분이 오르내렸다. 새소리와 바람소리 가득한 이 평화로운 곳에서 어울리지 않게 나 혼자 정체 모를 소용돌이 속에 버려진 기분이었다. 무엇보다도, 논리적으로 써 내려간 나의 이혼서류와는 달리 요동치는 감정에 어쩔 줄 모르고 질질 짜는 나 자신이 한심하기 짝이 없었다. 그렇게 시골 한 구석에 박힌 채 현실 도피가 시작되었다.


 이질감을 느낄 정도로 맑은 하늘과 느린 시골 사람들. 도시에서 나고 자란, 10년 이상의 사회생활에 단련된 나에게는 모든 것이 새롭고 어색했다. 닭 소리에 새벽잠을 설치고 깨어나면 여전히 가끔 눈물이 났다. 아이가 내 옆에 있음에도 나는 지독히 외로웠고, 다시 서울로 돌아가 일상을 살아낼 생각을 하면 숨이 막혔다. 궁상맞은 생각들을 벗어나기 위해 어슬렁 대며 산책을 하고, 불안함이 올라올 때면 밖으로 나가 발이 새카매지도록 돌아다녔다. 다행히 아이는 이곳 생활을 좋아했지만, 나는 잔뜩 신이 나있는 아이 옆에서도 어두운 그림자처럼 내려앉은 기분이었다. 시골 동네는 소문이 빠르다. 특히 외지인에 대한 관심(이라고 쓰고 흥미라고 부른다)은 어마무시하다. 어딜 가든 건네는 인사 속에는 육하원칙에 따라 내가 여기 나타난 이유를 설명해야만 하는 암묵적인 규칙이 존재했다. 어색한 웃음과 함께 자리를 뜨길 여러 번, 결국 나는 부스스한 머리에 일명 '아줌마 선캡'을 쓰고 최대한 눈에 띄지 않게 얼굴을 가린 채 닌자처럼 쏘다녔다.


 소장이 상대방에게 도달하기까지 그 며칠간 애써 불안을 외면하며 지냈다. 먼저 이혼을 요구한 건 그였더라도, 소장은 내가 내야만 하는 분명한 그의 '유책 사유'가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나는 불안했다. 소장 도달과 동시에 보정명령을 받고, '재판상 이혼 자녀양육안내 소감문' 작성을 위해 출력을 하러 동네 도서관에 갔다 (참고로 이 소감문은 무조건 자필로 써내야만 한다). 컴퓨터 이용 차례를 기다리며 어물쩍 신간 도서 코너를 기웃거렸다. 어지간해선 복잡한 근심도 없을 법한, 이토록 평화로운 시골 마을에 입고된 신간이 죄다 철학과 심리학이라니 아이러니했다. 나열된 책 제목들을 훑으며 나는 문득 알 수 없는 위안을 받았다. 힘들 때는 모든 노래 가사가 다 내 이야기 같듯, 하나의 문장도 채 되지 않는 책 제목들이 그렇게도 눈에 들어왔다. 그날 저녁 지역 도서관에 회원가입을 하고, 다음날 대출 카드를 발급했다. 그렇게 조용한 상담사와의 치유 과정이 시작되었다.

 

 이혼 필요 서류를 출력하러 간 그 도서관에서, 세상과 단절된 듯한 그 조용한 곳에서 나는 갑자기 용기가 생겼다. 그리고 이 근거 없는 자신감을 채우기 위해 심리학의 힘을 빌리기로 했다. 두서없이 떠오르는 생각과 감정이 더 이상 통제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심장과 뇌에 가득 찬 것들을 다 쏟아내어 차곡차곡 정리하고 싶었고, 이제는 냉철하게 현실을 바라보고 앞으로 아이와 헤쳐갈 삶을 계획하는데 이정표가 필요했다. 그리고 책은 몇 번이고 자문하고 해답을 얻을, 늘 같은 말을 해 줄 수 있는 뚝심 있는 상담사임이 분명했다.


 무작위로 제목만 보고 뽑아낸 책들이 나를 위로해 주었다. 그리고 내게 나의 이혼에 관한 글을 쓸 힘을 주었다. 나를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지난 시간을 복기해야만 한다. 슬픔으로 점철된 그 혼란스러운 시간 속에도 분명히 존재했던 행복과 감사를, 또한 부족했고 미숙했던 내 모습을 인정하며 나를 위로해야만 한다. 쏟아내듯 시작한 이 글의 시작은 이미 결말을 예견하고 있다. 나는 정말 괜찮아질 것이라고. 지금 여기, 내 앞에 놓인 이혼을 받아들이고 스스로에게 제대로 된 위로를 건넬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의 나의 글들은 헤어짐이라는 긴 터널을 지나 성숙한 미래로 향해가는 여정의 진실한 동반자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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