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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제야 May 24. 2023

그것이 사랑이 아니면, 무엇인가요

The Gaslight effect, 가스라이팅

 나의 이혼 스토리를 풀어내기 전에 명확히 해야 할 것이 있다. 이 글은 어디까지나 나의 감정을 직면하고 나를 이해하는데 첫 번째 목적이 있다는 것.

 어느 누구나 자신의 관점과 이유가 있다. 그가 나를 더 이상 사랑하지 않음은 그의 자유이고, 그가 여러 가지 이유로 아무리 내가 싫어졌더라도, 그것이 내가 그런 하찮은 취급을 당할 이유는 되지 못한다. 나는 내 나름의 장점을 가진 어쩌면 좋은 사람이다. 그러니 이제 나는 나를 위해 본연의 내 모습과 스스로의 권리를 되찾아줘야만 한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 사무실에서 구구절절 나의 이혼 배경을 읊다 보니, 흔히 말하는 '현타'가 왔다. 나는 혼자 살아도 그만인 사회 경제적으로 자립한, 가방끈도 나름 길다면 긴 커리어우먼이다. 그런데 결혼 생활에서의 내 모습은 지질하고, 비참하고, 무능했으며 이루 말할 수 없이 엉망진창이었다. 한 마디로 '쪽팔렸다'.  

 그 변호사에게 내 이야기를 털어놓는 내내 낯이 뜨거웠고, 결과적으로 이 이혼을 결심하게 한 그의 부정행위 대목에서 나는 수치심에 거의 숨이 넘어갈 지경이었다. 내가 모든 사실을 알면서도 모른 척 참아왔으며, 아마도 남편이 이러이러해서 그랬을 것이라는 추측까지 두서없이 말하다 보니 마치 모든 게 다 내 잘못인 것 같았다.  


 그래서인지 마지막에는 변명이라도 하듯 말했다. "그렇다고 제가 바보는 아니고요, 멍청한 편도 아닌데요, 제가 나름 사회생활도 하고 어디 가서 당하고 살진 않거든요..." 변호사는 굉장히 담담하게 대답했다. "제게 찾아오시는 분들 중 능력 있는 독립적인 여성분들이 많아요. 그런데 그럴수록 최악의 상황에서 오세요. 왜냐하면 자립심이 높은 분들일수록 부부관계의 어떤 문제를 자신이 반드시 해결할 수 있는 부분이라고 믿기 때문에 끝없는 싸움을 하시거든요. 일종의 가스라이팅을 자처해서 경험하시는데, 결국 이혼을 결심하고서야 본인들이 얼마나 힘든 상태인지 자각하세요." 이혼만 600건 이상을 진행했다는 그의 빅데이터에서 나온 이 견해가 나를 관통했다.


 이 대화가 얼마나 인상적이었는지 나는 그의 견해를 나의 친구와 가족, 심리 상담가에게 여러 번 언급했다. 그 변호사의 말처럼 나는 정말 우리 문제의 어떠한 부분만 해결하면 다시 행복할 것이라 믿었고, 내가 참고 버티면 그걸 해낼 수 있다고 믿고 있었다. 이혼을 상담하러 간 그 자리에서도 혹시 내가 포기해서 관계의 희망을 저버리는 게 아닌지 의심할 정도였다. 

 내 이혼사유를 들은 주변인들은 펄쩍 뛰며 그걸 왜 참고 앉아있었냐며 분개했음에도, 나는 내가 이 고난을 이겨내면 해결할 수 있는 문제라고 믿어왔다. 심지어 그의 부정행위를 알면서도 그의 심리 상태를 파악하고 이해하려고 애썼다. 그의 잘못이 명백한데도 내가 왜 눈치를 보는지 알 수가 없었다.


 나의 피신처인 시골 도서관에서 처음 빌린 책은 '그것은 사랑이 아니다(로빈 스턴, 2018)'였다. 가스라이팅을 처음으로 규정한, 가장 친밀하고 깊은 관계에서 오는 정서적 학대에 대한 로빈 스턴 박사의 베스트셀러. 내게 생각의 여지를 던졌던 그 변호사가 생각났다.

 사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내가 가스라이팅을 당한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꽤나 논리적이고 주관이 확실한 사람이기(라고 믿어왔기) 때문이다. 연예인 김딱딱씨의 사례로 널리 알려진 그 교묘하고 파괴적인 심리 트릭을 내가 하면 했지 당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이 책의 자가진단표와 사례들을 읽다가 머리끝까지 소름이 끼쳤다. 그 이야기 속에 내가 있었다. 사례로 등장한 피해자들의 특성 중 어느 대목은 내 모습을 그대로 묘사해 놓은 것 같았다. 나는 가스라이팅을 완성하는 '공동 책임자'였다.


 저자에 따르면 가스라이팅의 본질은 가해자와 피해자가 함께 만든 비정상적인 관계에 있다. 압박을 가하는 가해자 혼자서만 만들어낸 현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특히나 '설명이라는 덫'은 이 역학 관계를 완성한 나의 근본적인 특성임을 알게 되었다. 문제를 해석하고, 상대의 행동에 의미를 부여하고 분석하며, 더 나아가 나 스스로와 주변인에게 상대의 상태를 이해시키려 노력하는 것 말이다. 그의 형편없는 태도를 이해함으로써 마치 내가 그의 행동을 변화시킬 방법을 찾을 수 있다는 자기 합리화적인 믿음, 그의 생각과 행동에 내가 개입하여 이 관계를 통제함으로써 내가 상처를 덜 입는다고 확신하는 것. 나는 내 에너지를 풀가동해 성실하게 가스라이티(gaslightee, 피해자)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화해가 되던 싸움이 시간이 지나며 항상 내가 사과하고 스스로의 잘못을 조목조목 나열하며 인정해야 끝이 났다. 이상하게 싸운 건 둘인데 사과는 나 혼자 했다. 내가 사죄하면(거의 빌었으므로) 그는 더 폭주하고 막말을 던져댔다. 그가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늘어놓으며 스스로가 옳다는 것을 내게 증명하려 할 때, 나는 그가 듣고 싶어 하는 답을 했다. 그래야 싸움이 끝나고 우리는 행복한 가족의 모습으로 돌아갈 테니까. 그렇게 나는 내 자아상을 뒤틀며 그에게 힘을 부여했고, 싸움이 지속될수록 그가 나를 막 대할 것을 미리 예상하다 못해 나중에는 그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이 모든 과정에서 나는 상대와 결코 이기지 못할 논쟁을 계속했던 것 같다. 그가 내 진심을 알아주길 바랐고, 그의 인정과 애정을 바랐다. 싸우고 난 뒤 몇 시간이 걸리던 냉전은 시간이 흐르며 며칠, 몇 주로 길어졌다. 그 과정에서 남의 편은 시댁으로 가출도 몇 번 했다. 임신 기간에도, 아이를 낳은 직후에도 그리고 마지막 싸움까지.


  저자는 "가스라이팅은 스트레스에 대한 반응이다. 사람들은 위협을 느낄 때 가해자가 되거나, 피해자가 된다 (p.289)"라고 말한다. 어쩌면 우리 둘 다 이미 속성을 알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우리의 수많은 싸움에서 서로가 건드려지는 부분이 무엇인지 은연중에 잘 알고 있었으니까. 그래서 어쩌면 그도 어떤 부분에서 자신이 가스라이팅의 피해자라고 느낄지도 모른다.


가스라이팅의 과정


 그는 우리 관계에 대해 내가 화를 낼 때 매우 불행해했다. 그러면서 그는 자신은 잘못이 없고 모든 것은 나의 잘못이며, 싸움의 끝에는 나를 떠나겠다고 협박했다. 나는 사실 이 부분이 가장 두려웠던 것 같다. 그는 정말 언제든지 나를 떠날 수 있는 사람임을 여러 번의 가출로 증명했으니까. 결과적으로 나는 화를 내다가도 금세 자신감이 떨어져 그에게 애정을 재 확인하려 했고, 그는 이것을 무기력하게 느끼며 나를 신랄하게 비난했다.

 그럴수록 나는 심한 모욕감과 결핍을 느꼈고, 그는 더 통제할 수 없게 폭주하며 '나는 문제가 없다. 내가 이렇게 무기력할 리 없다. 그러니 너에게 문제가 있다'는 것을 내게 인정하게 만들려 애썼다. 서로 사랑하기 때문에 '너'를 참아낸다며 공격과 방어, 비난과 변명이 오가는 악순환을 반복했다.


 그가 내 옆에 없는 순간에도 나는 그의 영향력 아래 놓여있었다. 또한 사이가 좋을 때도 희망과 두려움, 안정감과 불안 같은 양가적 감정이 늘 공존했다. 갈수록 그는 나를 평가절하했고, 그가 나에 대해 장황히 설명하는 것을 들어보면 나는 장점이 하나도 없는, 가치 없고 이기적이었으며 사랑받을 가치가 없는 사람이었다. 싸움이 반복될수록 '나는 그렇지 않다'라고 반박했던 부분들을 더 이상 주장하지 않게 되었다. 내가 상처받은 부분을 이야기하거나 그에게 사과를 요구하면 더 큰 비판이 돌아왔고, 그는 온갖 방법으로 내가 그의 말을 듣지 않은 것에 대해 보복했기 때문이다. 화가 날 때면 대부분 나를 투명인간 취급하고 사춘기 아이처럼 방에 틀어박힌 채 티비와 핸드폰만 보며 투쟁을 벌였다. 숨 막히게 고독했지만 그는 내 감정에는 관심이 없었다.


 이토록 힘들었음에도 나는 이혼은 생각지도 못했었다. 어른들이 흔히 말하듯 '남편은 큰 아들이다'라는 식으로 애써 이 불쾌한 감정을 외면하며 나 자신을 설득했는지도 모른다. 또한 나의 모성애가 이 관계를 유지하는데 정당성을 부여하기도 했다. 아빠를 좋아하는 아이에게 상처 주는 것이 두려웠다. 나 역시 그를 잃을 상실감은 상상하는 것조차 힘들어, 사랑이라는 명목하에 내 마음을 내팽개쳤다.   


 나는 사실 싸움 그 자체보다 싸운 후의 그의 보복에 훨씬 상처받았다. 매우 비이성적이고 때론 유치하기도 한 방식의 보복이 가해질 때마다 나는 신경쇠약에 걸릴 것만 같았다. 그럼에도 관계를 유지하고 이를 이겨내는 것이 '맞춰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하며, 지금 이 힘든 시간이 어서 빨리 지나가고 싸우기 전의 다정했던 그로 돌아오길 바랐다. 아마도 다른 사람들 눈에 우리는 매우 이상적인 가족으로 비쳤을 것이다. 나는 주변 사람들에게 행복하고 사랑받는, 성공한 여성의 모습을 보여주었고 그 역시 그랬으니까. 그래서인지 우리 가정에 이토록 큰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인정할 수 없었던 것 같다.


 그러나 그의 마지막 가출에 대한 공방전 때, 나는 나는 결국 그 어떤 말과 행동으로도 나에 대한 그의 생각을 변화시킬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자신의 물리적, 심리적 고통을 호소하며 회사 근처에 독단적으로 집을 얻었고, 나는 이러한 분리를 처음부터 반대했었다. 거리가 멀어 힘들다면 그 근처로 함께 이사를 가자고도 제안했다. 그도 이 부분에 동의하여 부동산에 집을 내놓았지만, 그는 집이 나갈 때까지 자신은 나가있겠다는 비합리적인 통보를 했다. 그리고 자신은 가출이 아님을 증명이라도 하듯, 주말에는 자신이 내키는 시간에 집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 사이 열심히 유흥업소에 다녔더라). 이렇게 관계의 통제를 완전히 상실한 후에야, 더 이상 내가 그의 말을 따르는 것 만으로 관계의 변화가 오지 않을 것임을 인정했다.



인정과 포기


  이혼 소장을 작성할 때 즈음 나의 상태가 어떠했냐면, 한마디로 유령에 가까웠다. 거의 두 달 동안 그의 부정행위 증거를 수집하느라 밤에는 잠을 잘 수가 없었고, 낮이면 아이를 돌보고 내 신세를 한탄하느라 살이 쭉쭉 빠졌다. 그 와중에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며 애써 담대하게 그에게 맞서느라 나는 거의 매일 죽을힘을 다해 버티고 있었다. 더 이상 몸과 마음이 버틸 수 없다고 생각했을 때, 이 관계가 끝났음을 받아들였다. 나 스스로를 잃는 것보다 이 관계를 끊어냄으로써 발생할 모든 손실을 감당하는 것이 더 나았다. 무엇보다도, 내가 이토록 괴로운 대우를 계속 묵인한다면 나는 내 아이를 제대로 가르칠 수 없을 것 같았다. 아닌 것은 아니라고, 너를 함부로 대하는 모든 것에 정당하게 저항하라고 가르치고 싶었다.   


 이제와 생각하면 이 '인정과 포기'가 내 상태를 자각하고 이혼을 결심하게 된 첫 시작점이 되었던 것 같다. 저자는 본문에서 관계를 포기할 각오가 되어 있을 때, 비로소 이 역학관계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설명한다. 또한 이러한 관계에서 주로 피해자의 역할을 담당했던 사람에게는 수치심이나 좌절감이 수반되지만 (내가 왜 이렇게 당하고 살았을까, 나는 왜 사람 보는 안목이 이 모양일까 등) 이 감정을 느끼고 제대로 마주하는 것이 매우 중요함을 강조한다. 이러한 것들이 결국 '벗어날 의지'를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물론 내 앞에 놓인, 우리 관계의 진실을 마주하는 것은 너무나 아팠다. 우리가 불행했음에도 헤어지는 것은 내 안이 텅 비어버리는 것 같았고, 나는 문자 그대로 '수도꼭지 틀어놓은 듯' 줄줄 울었다. 그러나 나는 이제 나 자신에게 단호해져야 했다. 우리는 끝이 났지만, 그렇다고 내 인생이 끝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 막다른 길에서 모퉁이를 돌아 다른 미래로 갈 기회를 스스로에게 쥐어주며, 지나온 길에 그림자처럼 머물 내 아픔을 애도해야 했다.

    

 책장을 덮으며, 결국 내가 통제하고 행동을 바꿀 수 있는 것은 나 자신뿐이라는 것을 되뇌었다. 상대방이 아닌 나 스스로를 설득하고 기준을 바로 잡을 때 비로소 그것이 관계의 변화를 이끄는 힘이 된다. 결국엔 이별을 하더라도, 적어도 누군가에게 내 마음을 지배받는 삶에서는 벗어날 수 있다. 그동안 관계의 유지를 위해 외면하고 버려두었던 내 마음에게 연민을 갖고, 우리의 생각이 서로 다를 수 있음을 받아들일 때, 내가 느끼는 부당함에 대해 '아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에너지가 생김을 이제는 안다. 앞으로는 내게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 나를 깎아내리고 진실을 왜곡하는 것을 용기 있게 차단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책의 제목은 '그것은 사랑이 아니다'이지만 나는 어쨌든 그것은 사랑이라고 말하고 싶다. 사랑했기에 이 관계가 소중했고, 그렇기에 그의 애정과 인정을 받고자 관계의 시소에 올라탄 것이므로. 그러나 나는 이제 기울어진 시소에서 내려왔다. 더 이상 무게중심을 맞추기 위해 바닥을 딛거나 발을 차 올리지 않기로 결심했다. 내가 이 시소에서 내려옴으로써 그에게는 어떻게든 충격이 가해질 것이다. 아마도 내게 그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이 관계를 끊어낼 수 있는 힘이 있다는 것을 몰랐을 테니. 그러나 그도 그동안 고통받았을 것이다. 어쨌든 우리 사이의 평형을 맞추려 무게를 실었던 것은 나 혼자만은 아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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