옹기종기 모여있는 낮은 집들과 근현대사 박물관에서 본 듯한 작은 슈퍼, 들꽃 가득한 흙 길에서 마주치는 고양이들과 가끔씩 마주치는 이웃들. 밤 낮 없이 울어재끼는 닭들을 제외하고는 이제야 입이 트인 내 아이가 떠드는 소리가 유일한 소음인 정적인 곳. 차로 5분 거리의 읍내에 커피와 식재료를 사러 나가는 것 말고는 동네를 어슬렁대며 강아지들과 소들을 구경하는 것이 하루 일과의 전부다. 햇볕이 뜨거운 한낮에는 그늘에서 책을 읽고, 아이가 잠든 밤에는 글을 쓴다.
이곳 생활의 가장 좋은 점은 복잡하고 머리 아픈 대화를 할 일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가끔 마주치는 동네 사람들은 순박한 미소로 인사를 나눌 뿐, 대충 내 사정을 아는 분들도 내가 불편할 말들을 일절 하지 않는다. 투박하고 정겨운 배려가 고맙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 호기심 어린 눈초리에 지레 겁먹었던 것이 생각났다. 혹시나 누가 여긴 어쩐 일로 왔냐고 물어보면 대답할 대사까지 만들어 놨었다. 나의 피해의식을 이곳까지 짊어지고 온 탓이다. 변명 아닌 변명으로 생각해 낸 그 대사를 내뱉을 일이 거의 없었다는 것이 이제야 우습게 느껴진다. 나의 사적인 경험이 이곳에서 처음 만난 사람들을 아무 이유 없이 두려워하게 만든 것이다.
피해 의식은 인간적인 경험을 제한하고 사회적 관계의 복잡성을 단조로운 단 하나의 세계관으로 이끈다. - Sykes <희생자들의 나라(A nation of victims)> 1992, 19
나는 확실히 내 상황이 다르게 해석되어 수치심을 느끼는 것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런 상황에 처할 때면 일종의 모욕감을 느끼고, 애써 변명이라도 해가며 나를 증명하려고 하는 것 같다. '모욕적이다, 모멸감을 느꼈다'는 말은 나의 이전 심리상담에서 수십 번 언급되었던 감정 단어이다. 프랑크 M. 슈템러의 '모멸감, 끝낸다고 끝이 아닌 관계에 대하여'(2022)는 내게 냉정하고 객관적인 판단을 제시했다. '모멸'이라는 단어에 홀려 집어든 이 책을 통해, 내 결혼생활을 지배하던 감정들과 아직까지도 나를 괴롭히는 피해의식을 면밀히 돌아볼 여지가 생겼다.
우리의 말싸움은 늘 꼬리의 꼬리를 물었고, 대부분 시댁 이야기로 끝이 났다. 내게 이혼의 결정타를 날린 건 그의 부정행위지만, 사실 내 이혼소장에는 결혼 생활 전반에 걸친 시댁과의 스토리가 훨씬 길게 쓰였다. 그리고 이는 그의 부정행위와 가출, 내게 대하던 태도에도 직결되어 마침표가 되었다. 그의 마지막 가출 행선지를 나는 몰랐지만, 시댁 식구들은 모두 알고 있었으니 이보다 더 확실한 끝맺음이 어디 있을까.
결혼식 직전부터 시작된 며느리로서의 도리 강요와 그들의 바람대로 지켜지지 않을 때 돌아오던 친정과 내 성품에 대한 비난. 처음에 남편은 그 당시 내 편이었고 시부모에 맞서 당신들과 우리 세대가 다름을 알렸다. 그러나 싸움이 지속되며 시댁과의 거리는 좁혀지지 않자 그는 자신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맞춰주지 않는 나를 탓했다. 시댁이라는 단어는 나의 '발작 버튼'이었고 결국 우리의 싸움은 마지막까지 '시'자로 끝났다.
돌이켜보면 이 부분은 내게도 잘못이 있다. 어쨌든 그의 집안과 대립각을 세웠고 내게 가해졌던 모든 것들에 폭발적으로 분노했으므로. 어떤 때는 순간 삐- 하는 이명이 들릴 만큼 화가 났다. 특히 내 부모가 내게 가르치지 못한 부분을 '너는 이제 우리 가족이니' 자신들이 가르쳐야 한다던 부분에 있어서는 온 에너지를 다해 화를 냈다. 처음에는 당황스러워 반응도 제대로 못했지만 싸움이 계속될수록 그 정도는 더 심해졌다.
슈템러는, 모멸감은 정서적 문제이며 내게 전달된 상대의 감정을 어떤 의미로 받아들이냐에 따라 무의식적으로 발현된다고도 설명했다(p.123). 또한 '우연의 일치'를 근거로, 상호소통 과정에서 의도치 않게 연속적으로 벌어진 인과성이 모멸감의 원인이 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의도적으로 모욕을 가한 것이 아니라, 악의는 없었지만 예상치 못하게 그것이 반복됨으로써 오인되어 모욕을 주려던 행위로 인식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반드시 원인과 결과의 단편적 인과관계라 받아들이면 모멸감 또한 습관적으로 인식하게 될 수도 있다고 말한다.
이 측면에서 보자면 내가 매우 듣기 싫어하던 시어머니의 주요 대사가 있었는데, '아니 네가 시집을 왔으면~'과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 아닌데~'로 시작하는 구절이었다. 그녀의 말버릇 같던 이 말로 시작되는 모든 끝맺음은 다 내 탓이었고, 나만 잘하면 된다는 것으로 받아들여져서 반사적으로 반발심과 분노가 일어났다. 내 입장에서 그들의 요구는 바라는 바가 굉장히 방대하고 부정확했다. 이중언어를 사용하며 자신들의 마음과 감정을 맞춰주길 바랐지만 이미 감정이 상한 대로 상한 상태에서 그들의 언어를 해석하기에는 내 분노가 너무 컸다. 결국 시부모가 내게 기대하던 바람이 이루어지지 않았을 때, 다시 그들은 내가 당신들을 무시하기 때문이며 며느리 도리를 안 가르친, 못 배워먹은 가정교육 탓이라고 거세게 비난했다.
모멸감도 가하는 이와 받아들이는 이의 합작으로 이루어진다고 했던가. 이러한 비난에 대해 내가 알아차리기도 전에 튀어나간 분노는 상대에게 직격타가 되어 다른 방식으로 그들의 모멸감을 불러일으켰다. 대화의 끝에는 내 지식을 총 동원하여 당신들의 말이 얼마나 예의 없는 발언인지를 지적했고, 어느 때에는 눈에 경멸을 가득 담은 채 응시하며 무언의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우리는 서로를 반박하고 자신의 정당성을 주장하며 가해자와 피해자를 서로 자처했다.
특히 나는 시어머니와 심각하게 많이 싸웠다. 남편이 시댁으로 가출했을 때, 이 비합리적인 복수를 멈추기 위해 전화로 도움을 청했던 날 '내가 원래 이런 말 하는 사람이 아닌데~'로 시작하여 당신 이야기를 퍼부었다. 그녀의 말을 끝까지 들어보니 결국 내가 못된 애라 아무런 근심도 탈도 없는 자신들의 완벽한 가정에 분란이 생겼다는 주장이었다. 당신이 내게 서운했던 점만 2시간 내내 랩처럼 쏟아붓는 바람에 나는 귀에서 피가 날 지경이었다. 끝에는 '우리 아들이 너에게 세게 나가야 네가 나한테 잘한다'는 결론으로 장장 2시간에 걸친 통화가 마무리되었다. 이 날의 통화녹음 중 일부 심각한 막말은 소송 증거 자료로까지 쓰였으니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르겠다.
의도적으로 모욕을 가한 경우를 제외하고서는 대체로 악의 없고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그 의도가 오인되어 모멸감이 발생할 수 있다고 한다. 나와 시어머니도 그런 적이 많았다. 시어머니는 자신과 같지 않은 내 모습을 비판했지만 어쩌면 그녀는 내게 인정받고 싶었던 것 같다. 자신이 얼마나 헌신적인 며느리 었는지를 강조하며 동시에 시아버지를 무서워했다는 것, 아이들을 성공시키기 위해 자신의 모든 인생을 바쳐 여태껏 키웠다는 말은, 내가 그녀의 고된 인생을 이해하고 내가 그 길을 따름으로써 당신이 옳았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었던 것일 수도 있다.
나 역시 인정받고 싶었다. 당신 아들을 얻은 것은 행운이라는 그 말에, 내 노력으로 일궈낸 사회적 위치와 나의 독립적이고 진취적인 여성으로서의 가치를 주장했다. 나도 내 나름의 삶을 최선을 다해 살아왔고, 누군가의 사랑받는 딸이며, 당신의 우선순위와는 다를지언정 내게도 중요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다.
모멸감은 때로 공감이 결여될 때 느껴지도 하고, 이를 통해 발생하는 단절감은 유대를 거절하는 의사로 받아들여지기도 쉽다. 그래서 내가 그녀에게 반박할 때, 단순히 우리가 다른 사람이라는 설명이 아니라 그녀의 인생 자체를 내가 부정한 것으로 느꼈을지도 모른다. 결국 각자가 존중하던 가치가 대립됨으로써 서로에게 더욱 강한 방어와 공격이 일어났던 것일 수도 있다. 그리고 나 역시 그랬다. 나는 민감했고 결혼생활 말미에는 그녀의 목소리만 들어도 치가 떨릴 지경이었다.
모욕은 여러 부정적인 감정을 불러일으키며 고통을 가한다. 그 감정 리스트의 맨 윗자리를 차지하는 것은 바로 분노다. -Wiliam B. Irvine <알게 모르게, 모욕감(A Slap In the Face)> 2014, 134
모욕적이라는 생각이 들 때마다 제일 먼저 치고 올라오던 감정은 분노이지만, 동시에 나는 불안했다. 그들의 모욕이 곧 남편이 내게 가하는 더한 모욕이 되었으므로. 그가 사랑했던 나의 특성들이 비난의 대상이 되었고, 시댁 식구들이 나를 비판할 때 쓰던 특정 단어가 반복적으로 들렸다. 가정의 문화 속에 공존하는 언어들은 구성원의 공통감각이 될 수 있다. 나는 그래서 온 힘을 다해 맞섰던 것 같다. 내가 만약 아무런 대응도 하지 않으면 이 무대응이 사실처럼 받아들여지거나, 혹은 이런 말을 계속해도 좋다는 허락으로 받아들일까 봐.
시댁에 대해 생각할 때, 가끔씩 친절한 금자 씨처럼 "너나 잘하세요"라고 말해보지 못한 것을 못내 후회했다. 여전히 문득 올라오는 그때의 감정에 휩싸일 때가 있고, 고독하고 단절된 느낌의 잔상을 경험한다. 소중한 관계에서 내가 하찮아진다는 느낌, 나라는 인격체가 몇 마디 경솔하고 비난 섞인 말로 단정 지어지는 느낌은 내게 큰 상처가 되었고 그 끝에 잔상이 긴 상실감이 남았다.
그러나 이제는 '너나 잘하라'라고 하기보다는 '나나 잘해보려'한다. 나는 이제 모멸감을 다루는 방식을 배워야만 한다. 내 주관적 해석에 따라 감당할 수 없는 크기로 받아들인 '모멸감'이라는 감정이 결국 자아절제력과 내 자아상의 일부를 파괴하는 과정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결국 나 자신을 덜 민감하게 만들려면 '나'에 대한 프레임을 재구성해 볼 필요가 있다. 내가 어떤 부분에 쉽게 모욕을 느꼈는지를 자문해 보니 이들을 만나기 이전에 내가 겪어온 상처들과 일부 결부됨을 알 수 있었다. 내가 해결하지 못한 내면의 문제들이 가장 가까운 관계인 '가족' 내에서 새로운 형태로 다시 불거지고, 나는 그 미해결 된 과제에 대한 답답함을 모욕감으로 받아들였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들의 심한 언행들이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것은 아니다. 오죽하면 증거로 까지 제출을 했겠는가. 그러나 이제는 조금 다르게 생각해보려고 한다. 결국 어떤 말이든 받지 않으면 내뱉은 자에게 돌아간다는 명언처럼, 모든 것이 내게 상처 줄 수 있는 것은 아니며, 그렇기에 무조건적으로 스스로를 방어할 필요는 없다고. 이 인간적이고도 불안전한 감정은 내가 받아들여 고통의 씨앗이 되기도, 혹은 저 뒤로 치워둔 채 잊히게 둘 수도 있는 것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