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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제야 May 28. 2023

영혼 살인

영혼을 죽이는, 배우자의 부정행위



 지금은 이렇게 글로 써 내려갈 만큼 마음에 힘이 생겼지만, 얼마 전까지 나는 내 안의 슬픔과 분노를 감추는데 온 에너지를 쏟느라 기진맥진한 상태였다. 밖에서는 여전히 예전의 나처럼 행동하고 웃곤 했어도 그러한 ‘내 모습’을 유지하는 것이 나를 병들게 했다. 살은 계속 빠졌고 가끔 오한이 들기도 했으며, 좋아하는 음식을 먹어도 맛을 못 느꼈다. 벚꽃이 흐드러진 어느 날, 문득 거울을 보고 깜짝 놀랐다. 표정조차 사라진 생기 없는 나뭇가지가 거울 속에 있었다. 그 찬란한 봄에 나는 시들어갔고, '우리'라는 병든 나뭇가지에 곧 바스러질 겨울잎처럼 필사적으로 매달려있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나는 어떻게든 가정을 회복하고 싶었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랐다. 상황이 복잡하니 친구들에게도 말하는 것도 부담스러웠고, 부모님께는 더더욱 알릴 수가 없었다. 이 즈음 나는 이전에 우리가 부부상담을 받았던 상담 선생님을 다시 찾아갔다. 지난 상담을 통해 그와 나의 모든 이야기와 우리 가족의 구조를 객관적으로 파악하고 계신 분이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나는 그냥 이야기 할 사람이 필요했다. 나의 재방문에 그분은 안타까워하며 눈물, 콧물로 엉망이 된 내 이야기를 품어 대나무숲이 되어주었다. 솔직한 마음을 쏟아낼 곳이 생기니 조금은 살 것 같았다. 


 그러나 다음 상담일까지 남은 6일을 버티는 동안, 그가 부정행위를 처음 알게 되었다. 이 날의 충격을 온몸으로 기억한다. 나의 촉이 이끌어 과감히 열어버린 그 판도라 상자를 속속들이 누비는 동안 손이 덜덜 떨리고 심장이 관자놀이에서 뛰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분노나 배신감, 슬픔도 아닌 생전 처음 느껴보는 충격적인 감정에 공포심이 일었다. 그 후 며칠간 심장이 귀에서 쿵쿵 울려 잠은커녕, 나의 추측이 만들어낸 비디오가 머릿속에서 끝없이 상영되는 바람에 나는 당장에라도 죽을 것만 같았다.    



고해성사


 결국 나는 J를 소환했다. 나의 20년 지기 친구이자, 그 오랜 우정만큼 쌓여온 나의 부끄러운 온갖 삽질들을 다 알고 있는 그녀에게 조차도 이 이야기를 꺼내기가 힘들었다. J는 작년에 그가 시댁으로 가출했을 때에도 내 옆에 있어주었고, 이 결혼생활의 근본적 문제를 대부분 알고 있는 친구임에도 불구하고 어디서부터 어떻게 이야기해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았다. 네 소중한 친구가 그때보다 더 한 지옥에 떨어졌다는 사실을 알릴 염치도 없었다. 


 카페에는 우리 둘 뿐이었다. 어쩐지 카운터에 멍하니 앉아 있는 아르바이트생이 신경 쓰여 결국 제대로 들리지도 않을, 복화술에 가까운 모기 소리로 그의 범죄를 고백했다.


 J는 나의 성격을 너무나 잘 알고, 특히 그중에서 추진력과 성급함을 가끔 염려하기에 절대 나를 부추기는 말을 하지 않는다. 그녀는 나보다 더 격분했음에도 금세 이성을 차리고 조각난 내 마음을 이리저리 주우려 애를 썼다. 어떻게 위로해야할지 몰라 미안하다는 친구 앞에서 나는 눈물을 펑펑 쏟았다. 그동안 쌓인 마음의 돌덩이들이 와르르 무너지는 것은 한 순간이었다.


 그녀는 내게 현실적으로 가장 필요한 조언을 해주었다. 이혼은 언제든 내가 원할 때 할 수 있는 것이니 우선 내가 괜찮아진 다음 생각할 것, 그리고 이게 처음일지 혹은 단 한 번 일지를 확실히 한 후에 결정할 것. 그러나 우선 증거부터 모을 것.

 내가 감정이 남아있는 상태에서, 혹은 준비되지 않은 이혼을 할 때 감당해야 할 후폭풍을 우려한 것이었다. 나의 고해성사 이후 J는 매일같이 나를 챙겼고, 그 후 계속된 그의 만행에 내가 몇 번이고 죽어갈 때마다 그 아픔을 같이 감당해 주었다.


 그에게 죄책감 따위는 없는 것 같았다. 내가 눈치챈 걸 아는지 모르는지 더 과감하게, 자주 업소를 갔다. 거의 중독자 수준이었고 나는 갈수록 그가 무서워졌다. 그는 더 이상 내가 알던 사람이 아니었고, 함께 업소에 드나든 그 친구 놈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의 문화에서 어쩌면 당연한, 누구나 다 하는 놀잇거리였고 결국엔 이 걸 모르던 내가 순진했던 건지 저놈들이 개잡놈들인 건지 판단조차 되질 않았다.

 확실한 건 결혼생활 중 일어난 그 어떤 심각한 싸움보다도, 그의 유흥업소 출입이 나를 단칼에 베어버린 비밀병기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를 미워하는 것조차 힘이 들어 더 이상 알고 싶지 않다고 생각해도, 내 촉은 날이 갈수록 뾰족하게 곤두섰고 끝없이 의심이 일었다.


 증거를 수집하는 것은 확인사살과 같다. 사람의 존엄성을 사는 것 치고는 너무 푼돈인 경우가 많아 놀라기도 했고, 유흥알선 사이트의 후기들을 몇 개 읽으며 경멸과 분노에 치를 떨었다. 방구석에 쪼그려 앉아 대한민국 유흥의 실태를 파악하며 내가 아는 그의 모든 습성을 토대로 숨겨진 단서를 찾아냈다. 뚜렷한 증거가 없던 모 안마방 출입 증거를 찾아낸 날엔 우습게도 뿌듯할 지경이었다. 육하원칙으로 누구와, 언제, 어디에서, 무엇을, 어떻게, 왜 했는지를 증빙해 줄 자료들이 '날짜_지역_업소명'으로 가지런히 정리되었다.

 문제는 이러한 방구석 수사가 큰 부작용을 가져왔다는 것인데, 알면 알수록 상세해지는 끔찍한 상상이 나를 두 번, 세 번 죽였다. 유흥 알선 사이트에 게시된 추잡한 장면들을 토대로 내 추측이 만들어낸 상상은 그 수위가 갈수록 높아졌고 더 자주 재생되었다. 힘들었다고 여러 번 말하지만 이때는 정말 정말 힘들었다.



주저 없이 도움을 요청하라


 비참한 심정으로 증거를 수집하면서도 이혼을 결심하기는 쉽지 않았다. 첫 번째 업소방문을 알았을 때는 그냥 모른 척 덮을까도 생각했었다. 친구랑 어울리다 보니 어쩌다 간 것이겠지 라며 스스로에게 변명을 하기도 했다. 두 번째도 그랬다. 본인의 충동조차 조절 못하는 이 비행청소년 같은 남편을 참아야 하나 끝없이 고민하면서도 그가 지금이라도 잘못됨을 깨닫고 가정으로 돌아오길 바랐다. 그의 성매매 사실이 확실해진 세 번째와 그 외 몇 건을 더 알아내면서도 바로 이혼할 결심이 서질 않았다.


 이 즈음 나는 또 다른 치유자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이전부터 우리 가족과 가깝던 신부님, 수녀님에게 인간이 통제할 수 없는 이 고통과 아픔에 대해, 산산조각 난 내 영혼에 대해 털어놓으며 내가 감당할 수 없는 부분을 내려놓는 방법을 배우기 시작했다. 보다 넓고 깊은, 다른 차원의 가치를 보는 사람들의 조언은 엄청난 힘이된다. 나는 언젠가 이 부분에 대해서도 글을 쓸 것이다.

 어쨌든 나는 상담선생님과도 꾸준히 만났고, 친구에게는 거의 매일 마음을 털어놓았다. 나의 조력자들은 내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잘 알았다. 이들 중 어느 누구도 함부로 '이혼해'라고 나를 부추기거나 그들의 판단을 주입하지 않았고, 내가 충분히 고민하고 스스로 결정할 수 있도록 지지해 준 것은 매우 중요다. 결국 더 이상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였고, 그가 죽인 건 내 영혼이 아니라 내가 사랑한 그 스스로를 죽인 것이라 생각하며 이별을 결심했다.

 

 이제야 지난 시간을 하나씩 꺼내 살펴보다 보니, 내가 가장 잘한 것은 내 한계를 인정하고 의지할 사람들을 찾은 것이다. 요즘 읽고 있는 <상실과 치유의 심리학. 헤럴드 블룸필드. 권혁 옮김. 2006>에서 저자는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고 일어서는데 주저 없이 도움을 요청하라고 여러 번 권한다. 초반부의 나는 극도의 스트레스 상태에서도 나의 자존심과 권위를 지키려고 애써 태연한 척했고, 내 마음과 다른 이질적인 모습에 더욱 비참함을 느꼈다. 나는 전혀 괜찮지 않았다. 어떤 심리학자들이 말하듯이 내 감정을 분리하고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것은 그만한 마음의 힘을 갖춘 후에야 가능할 것이다.


 나를 사랑하고 지지하는 이들에게도 나를 솔직히 드러내기에는 용기가 필요하다. 털어놓고, 마음껏 위로받으며 현명한 안내자들을 찾고 도움을 청하면 나 혼자 더 이상 버틸 수 없을 때 그들이 내 등을 받쳐준다는 것을 체험했다. 나는 조금씩 내가 믿을만한 소수의 사람들로 언제든지 내 상태를 알리고 도움을 받을 구호팀을 만들었다. 가족, 친구들, 상담사 등 나를 아끼는 사람들로 이루어진 이 팀은 물심양면으로 내게 손을 내밀어주었다. 부정적이고 수치스러운 감정은 내가 그들에게 이야기할 때마다 문득 올라왔지만, 아픔을 나누는 과정에서 나는 조금씩 자유로워졌다. 나의 불안하고 약한 면을 믿을 수 있는 사람들에게 솔직하게 털어놓으며 내적 지지를 구하는 것이 내게 정말 필요한 일이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인과응보에 시차는 있어도 오차는 없다

 내게 이토록 좋은 사람들이 많았는데, 그 중 남편만 내 편이 아니었다는 것이 씁쓸하기도 했다. 가끔씩 그는 과연 자신의 치부를 다 드러내고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나를 다 드러내지 않은 상태의 반쪽짜리 진실은 왜곡된 조언이나 섣부른 공감만을 이끌어내기도 한다. 나보다도 수치심을 잘 느끼고, 자신의 잘못이 있을 때 불안한 어린아이 같은 얼굴이 되던 그는 과연 어땠을까. 앞으로의 그의 인생에서 단 한 명이라도 그에게 올바른 말을 해줄 사람이 있길 바랄 뿐이다.


 이제와 안타까운 것은, 함께 그런 곳에 갔던 그의 절친한 친구들 중 어느 누구도 이 행동의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는 것이다. 어느 누구도 잘못됨을 알지 못해 서로를 부추겼고, 서로의 가정의 죄를 지었다. 나는 그나마 이 모든 사실을 낱낱이 알게 된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아는 과정은 너무나 아팠지만, 만약 모른 채 살았더라면 나 몰래 살해된 내 가치와 영혼은 누가 구해준단 말인가. 사실 누군가가 '이건 아니야'라고 했어도 그는 그런 곳에 갔을 것이다. 이 모든 건 그의 선택일 뿐이다. 또한 그의 친구들도 앞으로도 깨닫지 못한 채, 그저 우리의 이혼을 바라보며 자신들은 걸리지 않았음에 안도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들의 아내들이 모른다 해서 이 죄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인과응보시차는 있어도 차는 없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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