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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wHereUs Apr 21. 2021

마지막 수업을 앞두고

정지우 작가 <글쓰기 모임>의 기록

대학 졸업 후 지금까지 여러 경로의 일을 거쳤다. 전생에 죄를 지은 사람들이 간다는 대학원 생활도 한국과 미국에서 각각 경험했다. 연구원에서 잠시 연구 보조 일을 하기도 했고, 학부 전공을 살려 초등학교 교실에서 선생님으로 일 한 적도 있었다. 외국 정부기관에 파견되어 관광업 종사자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기도 했으나 나의 첫 직업이라고 말할 만한 것은 아마도 공공기관의 사무직이라고 해야할 것 같다. 10년을 못 채우고 미국으로 왔고, 대학 내 명상센터에서 몇 년간 일을 했다.


이런 저런 일들 사이에는 몇 달, 길게는 1년의 공백이 있었다. 처음엔 이 공백을 어떻게 메꿔야할지 막막했다. 돌이켜보면 일찍 일어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서 오는 기쁨은 두 달을 넘어 지속되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 기간이 넘어가면 나의 이름 앞에 붙는 소속기관이 없음에 불안해하며, 나의 하루를 ‘해야 할 일’들의 리스트로 채우기 위해 노력했던 것 같다. 빡빡하면 빡빡할 수록 나의 마음 속 공허함이 채워지는듯했다.

해야 하는 일들은 주로 무언가를 배우는 것이었고, 어딘가에 가서 수업을  듣는 것으로 내가 오늘 하루를 헛되이 날려보내지는 않았다는 것을 스스로에게 증명하곤 했다. 


작년 하반기쯤 ‘책을 쓰는 것’이 ‘언젠가는 나도 한 번’의 영역에서 ‘올해 하고 싶은 일’의 영역으로 넘어왔다. 여러 형태의 글을 끄적여봤지만 머릿속 생각이 글이 되어 나왔을 때, 좋은 평가를 받았던 기억이 거의 없었기에, 일단 글 쓰는 걸 연습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한국에 갈 일이 있었고 글쓰기, 책쓰기 안내서 몇 권과 필사를 위해 내가 좋아하는 정지우 작가의 책을 서점들을 돌며 보이는대로 집어왔다. 그의 글은 따뜻하지만 영혼 없는, 미사여구로만 가득찬 글과는 다르다. 사람들에게 전하는 메시지를 ‘불편하지 않지만 담담하게’ 풀어낸다. 누구나에게 있을 법한 삶의 장면들로 시작해 읽는 도중엔 내 마음을 사찰하고 썼나 싶을 정도로 사람들이 느낄 수 있는 감정과 생각을 짚어 준 다음, 우리에게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하는 질문을 던지거나, 내가 미처 이르지 못한 깊이의 사유와 성찰로 마무리된다. 

에세이를 쓰고 싶었으니 에세이 몇 권, 사람에 대한 이해를 할 수 있는 책 몇 권, 그리고 언니 책꽂이에서 가져가고 싶은 책들 몇 권, 다람쥐가 도토리를 모으듯 야금야금 모은 책들이 허리 높이로 쌓였다. 트렁크 7개에 옷과 음식와 함께 야무지게 채워서 미국으로 돌아왔다.


매일 선물 같은 글이 올라오던 정지우 작가의 페이스북에 글쓰기모임을 온라인으로 열 거라는 소식이 올라왔고, 하늘이 주신 기회인가 싶어 신청했다. 운 좋게 참여할 수 있었다.


약 3달 동안, 글을 잘 쓰고 싶어 모인 우리들은, 글쓰기의 스킬보다 글을 대하는 태도, 삶에 대한 자세를 배웠다. 하나라도 더 가르쳐 주고 싶은 마음을, 듣는 사람이 가장 잘 받아들일 수 있게 전달하는 건지 궁금했다. 글에서 보인 삶의 태도가 긴 시간동안 유지되는 걸 보며 감탄했다. 유명인, 특히 강연자의 무대 뒤 모습을 보고 실망한 적이 많은 나에게는 새로운 충격이었다. 신기한 건, 이런 진지한 모습 뒤에 소년 같은, 또 보통 사람같이 여러 고민을 안고 있는, 인간미가 녹아있었다는 것이다. 아이돌 팬덤 커뮤니티에서 언급되는 소위 ‘온도차’가 존재했고, 의도성이 1도 보이지 않는 ‘조련성’도 엿보였다. 여러모로 ‘치임포인트’가 있는 글 잘 쓰는, 나보다 나이어린 오빠를 잠시나마 가까이서 볼 수 있는 자리에 있을 수 있어서 좋았다.


물론, 글쓰기 수업의 본질에도 충실한 모임이었다. 내가 흠모하는 작가가 내가 쓴 글을 ‘지구상에서 가장 열심히’ 읽어준다, 그리고 나의 글을 더 좋은 글로 만들기 위해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걸 아낌없이 쏟아내려 한다. 글쓰기모임에 처음 참여해봐서 비교대상은 없지만, 모임에 참여하며 가졌던 나의 기대를 훌쩍 뛰어넘은, 나무와 숲을 번갈아가며 보는 경험을 할 수 있었던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지만 어학을 공부했던 나는 합평을 이번에 처음 해봤다. Peer review나 논문 크리틱에 익숙한 나는 너무 자세하고 꼼꼼히 읽고 논리 오류를 지적하거나, 초등생 일기 첨삭하듯 전달한 적도 꽤 많은 것 같다. 그런 나의 서툰 모습조차 진심으로 글을 읽는 사람의 마음으로 읽어주는 모임원들이 참 고마웠다. 내 글에서 미처 생각지 못한 부분을 짚어주고, 정지우 작가가 한 것처럼 글을 더 좋은 글로 만들기 위해 함께 고민하느라, 한 번 시작하면 4시간은 기본이었다. 나야 시차가 있으니 일찍 일어나 수업 듣고 하루를 시작하는 거였지만, 하루를 마무리해야 할 시간에 시작한 모임에 열정을 갖고 참여하는 모임원들이 대단해보였다. 솔직한 글을 나누며 우리는 조금씩 가까워졌고, 서로의 글을 독려하는 응원군이 되었다. 


이제 내 삶에 공백이 생기면 적어도 뭘로 메꿔야하나 고민 할 것 같지는 않다. 오히려 나의 일상을 쪼개서 하고 싶은 일을  찾은 것 같다. 시간을 쪼개서, 읽고, 쓰고, 나누며 살고 싶다. 이렇게 가슴 뛰게 만드는 일이 생겼다는게, 그걸 함께 나누고 싶은 사람들을 만났다는게 믿기지 않을만큼 벅차다. 석달동안, 차가운 현실에서는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 따뜻한 동화 속 이야기의 주인공이 된 기분이었다. ‘진짜 레알 최종 마지막’ 수업이 얼마 남지 않은 이 순간,  내게 이제 그만 꿈에서 깨어날 시간이 되었다고 알람이 울리는 듯하다. 스누즈 버튼을 누르고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며 달콤한 꿈 속에 조금 더 머무르고 싶다. 나는 아직 깨어날 준비가 안 됐다고, 하나 둘 씩 사라지는 꿈속의 사람들을 붙잡고 싶은 마음이다.


글쓰기 모임 마지막 수업을 앞두고 썼던 글. 수업이 끝난다는 아쉬움이 나를 진상으로 만들었나 싶다.

수업에서 배운 걸 하나하나 글로 남기고 싶었는데 생각보다 바빠서 언젠가 멈춰버린 기록. 짬을 내서 복습하듯 돌아보고 조금씩 써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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