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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wHereUs Mar 10. 2021

다시 시작할 이유

인정 욕구가 없는 사람은 없겠지만, 나는 다른 사람들이 내게 내리는 평가에 예민한 편이다. 잘하는 사람이라는 칭찬을 듣고 싶은 마음이 지금의 나를 이루는 여러 가지 요소, 그러니까 학벌이나, 직업 등에 도움이 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듯, 나를 끝없이 갈아 넣어 실체도 없는 다른 사람의 기대치를 채우려 했다. 너무나 당연하게도 이러 마음은 나의 마음을 병들게 하기도 했다. 용기를 내어 누군가에게 이런 고민을 털어놓으면, 돌아오는 말은, "신경 쓰지 마, 피곤해서 어떻게 사냐?"였고, 그런 날이면 나는 "그러게"라고 어색하게 웃으며 대답하고는 집에 와서 나는 왜 이렇게 예민하게 태어난 걸까 하며 자책하며 밤을 지새우곤 했다.


나이가 들면서, 아이가 생긴 이후, 몸과 마음이 바빠져 다른 사람들의 기대치를 채워줄 신체적, 정신적 에너지가 더 이상 남아있지 않음을 깨달았을 때야 비로소 그 예민함이 덜해졌다. 물론 이런 감정은 방심하고 있을 때 나를 불쑥불쑥 찾아오기도 했지만, 마음 챙김의 기본 원칙인 '있는 그대로 인정하기'를 연습한다 생각하고 이런 예민한 나를 안아주려고 애썼다. 감정이 강하게 솟구칠 때면, 지금 내 마음속에 떠오르는 시나리오가 정말 현실에 기반한 걸까?라는 물음을 던지며, 나중에 후회하지 않을, 반응이 아닌 대응을 하려고 애썼다. 감정이 폭풍처럼 지나간 후에, 블로그에 글을 써서 마무리를 하기도 했다. 글을 쓰면서 내가 경험한 사건을, 생각을, 감정을 다시 돌아보게 되고, '이럴 수도 있었겠구나' 하며 내가 하고 있었을지 모르는 인지왜곡을 알아차리기도 했다. 블로그 이웃들의 공감 어린 댓글을 보며 글을 쓰길 잘했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그렇게 글쓰기는 내 마음의 구김을 펴주는 다리미질 같은 느낌이었다.


글쓰기 모임에 가입한 후, 생각만 하고 있던 브런치에 작가 신청을 했다. 이전부터 관심은 있었지만 신청 후 거절이 두려워 이런저런 핑계를 대고 시도를 해볼 생각조차 못했는데, 책을 쓰려고 하는 초보 작가, 아니 작가 지망생이라면 브런치는 당연히 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말을 여러 군데서 들었다. 5년 넘게 고만고만한 이웃들만 보던 내 블로그 글쓰기에서 변화를 주고 싶기도 했다. 그렇게 설렘 반, 두려움 반을 갖고 첫 글을 쓰고 작가 신청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3일 만에 날아온 메일.

글쓰기 모임에서, 내 롤모델에게 글쓰기도 배우고, 내 글도 조언과 첨삭을 받고, 일명 '브런치 고시'도 한 번에 합격했으니, 이제 힘내서 글을 쓰기만 하면 되겠구나! 하며 마음이 들떴다. 내가 쓰고 싶은 책은 아직 구상 중이니, 내가 잘하는 기록의 글쓰기를 하면서 글 쓰는 연습을 해야지! 하며 글쓰기 모임에서 배운 것들도 하나하나 글로 남기기 시작했다.'매거진'이라는 거창한 이름을 달고서.

https://brunch.co.kr/magazine/essaywriting


세 개의 글을 올리고 난 후, 다음 모임에서 내 첫 번째 에세이를 읽었다. 평가도 생각보다 괜찮았다. 이제 들은 조언대로 퇴고만 하면 된다. 글쓰기 모임 단톡방에서 다들 주위 사람, 그러니까 남자 친구나 딸에게 글을 먼저 보여준다고 했다. 남편에게 글을 보여주기는 왠지 부끄러웠다. 농담 삼아 부르는 별명, 뇌가 0과 1로 이루어진 사이보그는 내 글을 이해하지 못할 것 같았다. 중학교 때부터 단짝인 친구와 카톡으로 대화를 하다가 혹시 보편적인 독자의 입장으로 글을 읽어줄 수 있냐고 물었다. 마침 첫 글에는 그 친구와 다녀온 첫 해외여행이 언급되어있기도 해서 글 쓰며 하는 고민인 TMI와 불친절한 글 사이의 경계선을 잘 말해줄 것 같았다. 친구는 글을 읽고는, 글을 쓰는 본인 오빠에게 보여줘도 되는지 물었다. 퇴고본 제출 전이라 한 번쯤 더 평가를 받는 건 좋은 일이니, 물론이라고 말했다. 친구가 오빠의 감상평을 전해주기 전,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했다. 그때까지는 정말로 마음의 준비가 되어있었다.


충격이었다.

글 쓰기 공부한 적이 없냐는 물음으로 시작해서 '글렀다', '봐줄 것이 맞춤법이 안 틀린 것 밖에 없다.', '글을 쓴다는 행동의 기초부터 안 되어 있다.', ' 횡설수설이 이어진다.'는 표현이 등장했다. 중고등학교 국어책을 정독할 것을 당부하며, 내 글의 문제는 결국 한국 글쓰기 교육의 문제로 귀결됐다. 친절하게도 미국 대학 입학 시 쓰는 에세이를 보는 쪽이 더 간단하게 글을 쓰는 방법을 배울 수 있다는 조언으로 마무리되었다.


급하게  석사 전공과 출신학교, 미국에서 새로 대학원에서 공부했던 사실은 비밀에 부쳐달라고 친구에게 부탁했다. 이게 알려지면, 중고등학교 글쓰기 교육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과 미국, 양국 대학원 입시 비리의 문제로 확장될 지경이었다. 친구와도 웃으며 대화를 했다. 핵심을 던지고, 과감히 치고 나가는 글쓰기가   된다는  나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수업도 듣고, 평가도 받아보려고  거니까. 그런데 어쩐지  이후로 글을  수가 없었다. 마음이 아팠다.  따위가 무슨 책을 쓴다고, 하는 마음이 스멀스멀 기어올라오기 시작했다. 클럽하우스를 기웃거리며 작가 선배님들이 여는 방에 가서, 고민을 털어놓았다.  고민은 '악플에 어떻게 대처하는가'라는 주제의 대화로 이어졌다. 사람들에게 위로를 받을수록 마음  구석이 다시 불편해졌다. 친구 오빠는 글을 읽고 피드백을 주었을 뿐인데, 자신도 모르는 사이 악플러가 되었고, 다른 방에서는 꿈을 짓밟는 사람이 되어있었다. 클럽하우스에서  얘기를 듣고 어떤 분이  주신 '견모불욕'이라는 말은  닿는 말이었고, 당시 내게  필요한 위로의 말이었다. 그러나 나는 다음 순간 위로의 말을 겹겹이 돌돌 말아  마음을 꽁꽁  버린  자신을 발견했다. 이래서는 앞으로 나갈 수가 없다.


다음 글쓰기 모임에서, 강의를 마친 후 질문 시간이 주어져서 이렇게 물었다. 혹시라도, 내 글이 정말 별로인데, 상처 받을까 봐 돌려 말하는 건 아니었냐고. 솔직하게 말해달라고, 그런데 말하는 동안 자꾸만 눈물이 났다. 글쓰기 모임에서도 또 위로를 받았다. 아니, 어쩌면 위로해달라고 나도 모르게 온몸으로 말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정지우 작가는 객관적으로   글이라는  존재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리고는 일간지 칼럼 기고를 하며 겪은 데스크  극명한 온도 차이에 대한 자신의 경험을 들려주었다. 뒤이어 모임원 하나가 내게 물었다.  평을 해준 사람이, 내가 닮고 싶은 글을 쓰는 사람이냐고. 머리를 맞은 듯했다. 나는 친구 오빠가 글을 쓰는 사람이라고는 들었지만, 직업으로 글을 쓰고 있는 사람인지의 여부도, 어떤 장르의 글을 쓰는지도, 어디에 글을 내놓는지도 모른다.


그날 수업 이후  자신에게 되묻기로 했다. 글을  쓰고 싶었는지, 책은  내고 싶었는지, 지금  말에 포기할 만큼 얕은 꿈이었는지,  말이  그렇게 나를 힘들게 하는 건지,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짚어보기로 했다.


글을 쓰고 싶었던 이유는 두 가지를 들 수 있을 것 같다. 첫째, 글 쓰는 과정에서 내가 얻은 것, 생각과 감정이 정리되는 경험이 쌓이는 것이고 두 번 째는 글을 잘 써야 할 것 같은 나의 배경에 걸맞은, 아니 적어도 못 미치지는 않는 글을 쓰는 실력을 가지고 싶어서다.


책은, 내가 다른 사람들의 글과 책을 읽으며  삶의 깨달음을 얻은 것처럼, 누군가에게  얘기가 작은 힘이 되길 바라는 마음이 들어서 쓰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마음챙김이 이슈가 되지 않았을 ,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어서였지만, 너도나도 마음챙김에 대해 말하는 요즘은 마음챙김에 대해 갖고 있는 선입견과 오해를 풀어주고 싶어서다.


그렇다면, 친구 오빠의 말은 왜 그렇게 나를 힘들게 한 걸까?


아마도 기본이 안되어있다는 그 말이, 내가 내 글에 대해 갖고 있는 본질적인 두려움, 내 글이 별로이면 어쩌지?라는 자신 없는 마음, 그 두려움이 현실이라고 말해주는 것 같아서다. 브런치나 기타 다른 플랫폼 등으로 인해 작가의 문턱이 낮아졌다는 요즘 세태에 대한 평가들이, 내가 그냥 고민도 노력도 별로 기울이지 않고, 겉멋만 들어 '작가' 타이틀만 내 이름 앞에 손쉽게 붙이고 싶어 하는 사람으로 비치는 건 아닐까 하는 걱정도 불러일으켰다.


그래도 이왕 해보겠다는 마음을 먹었으니, 후회가 남지 않을 만큼은 해보고 싶다. 내가 시간과 노력을 들여하고 있는 일이 나를 얼마만큼 성장시킬 수 있는지 궁금하다. 지금 포기하기에는 아직 충분히 써보지 못했다. 가지 않은 길에 대해 상상하며 후회로 점철되는 삶의 패턴을 이제는 바꾸고 싶다. 얼마 전 읽은 트레버 노아의 책, <태어난 게 범죄>에서 내 마음을 울렸던 구절을 떠올려본다.

나는 내 인생에서 내가 했던 그 어떤 일도, 내가 내린 그 어떤 선택도 후회하지 않는다. 다만 내가 하지 않았던 일, 내가 내리지 않았던 선택, 말하지 않았던 말에 대한 후회에 종종 사로잡히곤 한다.
 우리는 실패에 대한 두려움, 거절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너무 많은 시간을 허비한다. 하지만 다름 아닌 후회야말로 우리가 가장 두려워해야 할 대상이다.
실패는 답이다. 거절도 답이다. 하지만 후회는 결코 답할 수 없는 영원한 질문에 불과하다. 당신은 절대 그 답을 알 수 없다. 그리고 그 후회는 남은 평생 동안 당신을 따라다닐 것이다.

나는 트레버 노아처럼, 내가 했던 그 어떤 일이나 선택도 후회하지 않을 자신은 없다. 다만, 하지 않은 일에 대한 후회, '만약'이라는 단어로 시작할 그 생각이 내 마음을 다시 좀먹을 거라는 건 안다. 그리고 책을 몇 권 내 본 분들도 첫 책은 다 어렵고 힘들었다고 하더라. 클럽하우스에서 내 고민을 털어놨을 때, 몇 권의 책을 내고 방송에도 꽤 출연하셨던 분이 자신의 첫 책을 준비하며 주저하는 마음이 들 때 들었던 조언을 공유해 주셨다. "oo아, 첫 책은 원래 망해. 그냥 빨리 쓰고, 다음에 더 좋은 책을 쓰면 되는 거야."


나의 목표를 되짚어 본다. 내 작가로서의 목표는 베스트셀러 작가가 아니다. 다만, 내 책을 읽을 사람들이 작은 깨달음의 순간을 얻을 수 있다면 좋겠다.


 글을 쓰다가 문득 정지우 작가의 브런치에 들어가 보았다.


새 글이 올라왔다.

https://brunch.co.kr/@jiwoowriter/51

그가 그랬듯 나도 마음을 다해 쏟아내는 글쓰기를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서 해보고 싶다. 그의 글은 나를, 나만을 위해 쓴 것은 아니지만, 내가 글을 계속 써보고 싶어 하는 마음을 다잡게 해 주었다. 그 시작점은 멈췄던 글쓰기 모임의 기록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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