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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영 Jul 25. 2021

옷 사지 않는 삶

쇼핑 욕구 극복 일지 : 4일 차

심리학자 김태형 씨의 책 <풍요중독사회>에 따르면 사회는 네 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가난-불화, 가난-화목, 풍요-불화, 풍요-화목. 이 중 가장 좋은 사회는 딱 봐도 알 수 있는 풍요-화목이다. 그렇다면 두 번째는? 가난보다 풍요라고 생각하겠지만 풍요-불화보다 가난-화목이 더 살기 나은 사회이다. 예상했겠지만 현재 우리나라는 풍요-불화의 사회다. 경제적으로 풍요 로우나 공동체가 무너지고 불평등이 극심한 불화의 사회. 

이런 풍요-불화 사회의 특징은 사람의 가치를 평가하는 사회적 기준이 '돈'에 있다. 이런 사회의 사람들은 늘 불안한데, 남들의 평가에 대한 불안, 위계에 대한 불안, 관계에 대한 불안 때문에 늘 고통스럽다. 

고전적 계급은 사라졌지만 돈으로 매겨지는 위계는 기존의 것보다 더욱 공고하고, 본인만 잘하면 극복할 것 같지만 그로 인해 비슷한 위계의 사람들과도 경쟁을 해야 한다. 가령 귀족과 농노로 나뉘었을 땐 귀족의 위계에 불안함이 있었지만 농노 사이의 공동체는 평등했기 때문에 그래도 지금보다 덜 불안할 수 있었다. 때문에 가난-화목 사회가 풍요-불화 사회보다 더 살기 낫다는 이야기가 성립된다. 


이런 불안을 안고 사는 현대 한국인들은 불안 관련 장애에 시달린다. 우울증, 조울증, 충동조절장애 등이 그것이다. 김태형 심리학자는 "정신질환의 가장 큰 문제는 사람들에게 고통을 방어하기 위한 삶을 살도록 강요하는 데 있다."라고 말한다. 풍요-화목의 평등한 사회라면 쏟지 않아도 될 에너지-그러니까 남에게 우습게 보이지 않아야 하고 다른 사람들의 평가에 신경 써야 하는 등-를 과도하게 쓰느라 정신이 너덜너덜해지는 것이다. 


대한민국은 민주주의 사회로 매우 자유로운 것처럼 보이지만 이 자유는 '돈'과 연결되어 있다. 돈으로 자유를 사는 시대인 것이다. 돈이 있어야 자유롭게 살고 싶은 곳에 살 수 있고, 자유롭게 여행을 다닐 수 있다. 이 사회에서 돈은 자유를 보장하는 유일한 수단이 됐다. 


내가 왜 그렇게 옷에 집착했던 걸까? 같은 디자인의 옷을 컬러별로 사고, 마음에 드는 옷이 있으면 한 벌을 더 사서 쟁여 놓고, 당장 필요하지도 않은 옷인데 사지 않으면 큰일 날 듯한 감정에 사로잡혀 사거나, 판매원에게 우습게 보이기 싫어 마음에 들지 않는데도 계산을 하곤 했던 지난 날들. 나에게 어울리는 게 아니라 비싸기 때문에, 즐겨 입는 디자인이 아니라도 큰 폭으로 세일하는 명품이니까 무턱대고 옷을 사들였던 지난날.

옷을 사지 않겠다고 다짐하면서 나는 과거의 나를 자세히 들여다보고 있다. 도대체 왜 그랬는지를 알아야 앞으로 그러지 않을 수 있겠다는 생각에서다. 이런 와중에 읽은 <풍요중독사회>는 여러모로 의미 있었다. 


풍요-불화 사회에서는 과시욕구도 돈에 대한 욕망을 증폭시킨다고 한다. 과시 욕구는 크게 세 가지.

첫째, 자신의 열등감을 방어하려는 욕구 둘째, 더 나은 평가와 존중을 받으려는 욕구 셋째, 우월적 쾌감을 체험하려는 병적인 욕구.

안타깝게도 셋 다 나에게 넘쳐나던 욕구들이었다. 학벌에 대한 열등감, 직업에 대한 열등감을 채우기 명품을 사고 더 나은 평가와 존중을 받는 방법으로 겉치장을 이용했다. 그렇게 차려 입고 우월적 쾌감을 체험하며 어깨를 으쓱하고 다녔던 어리석은 나날들. 


책 속엔 세계적 공공보건학자 리처드 윌킨슨의 이야기가 나온다. "물질주의는 인간이 타고난 소유욕의 징후가 아니라 불평등으로 심화된 위계 경쟁에서 자극을 받아 타인에게 자신의 자존감을 알리는 아주 기이한 소통 형태"라고 했다. 김태형 심리학자는 이 말이 시사하듯 과도한 소유나 소비욕구 그리고 과시적 소비는 인간 본성과 무관한 풍요-불화 사회가 강요한 병적인 욕구이자 사회 현상일 뿐이라고 첨언했다.

 

사실 옷을 사지 않겠다는 프로젝트를 시작하면서 나의 본성에 대한 의심이 있었다. 쇼핑 욕구가 남다른 나의 기질이 결국은 걸림돌이 되지 않을까 걱정됐다. 그러나 그동안 나의 소비는 다분히 과시적이었고 그것은 본성과 무관하다는 걸 알았다. 풍요-불화 사회를 살면서 불안을 떠안고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친 흔적이었다는 걸. 


게다가 환경을 지키기 가장 좋지 않은 사회가 풍요-불화 사회라고 한다. 돈과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정신을 좀 차려서 풍요-화목 사회에 진입했으면 한다. 나의 불안이 종식돼야 이 프로젝트도 안정적으로 성공을 향해 갈 수 있을 텐데, 불가능하겠지. 지금껏 그래온대로 구조는 꿈쩍도 않으니 개인이 기를 쓰는 수밖에. 나 하나의 다짐이 세상에 어떤 흔적도 남기지 못하겠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스스로 편안함에 이르기 위해 애써 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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